얼결에 물든 미국말

 (688) 와일드(wild)


야생초는 그 모양이 야생적이라야 볼 맛이 난다. 와일드한 맛이야 엉겅퀴나 방가지똥을 따를 것이 없지만

《황대권-야생초 편지》(도솔,2002) 157쪽


 와일드한 맛이야

→ 거친 맛이야

→ 투박한 맛이야

 …



  ‘wild’는 영어입니다. 그런데 한국사람이 참 흔히 쓰기도 합니다. 설마 싶어 한국말사전을 뒤적입니다. 뜻밖에 한국말사전에 ‘와일드’라는 낱말이 하나 실립니다. 한국말사전에 나오는 ‘와일드’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글을 썼다는 ‘오스카 와일드’라는 사람 이름입니다.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아일랜드에서 글을 쓴 사람을 한국말사전에 덩그러니 올릴 까닭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한국말사전을 더 뒤적이니 ‘박지원’이나 ‘이규보’ 같은 사람도 나옵니다. 고개를 다시금 갸우뚱합니다. 이런 분들이 훌륭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만, 한국말사전은 한국말을 다루는 책이지, 역사나 문학에서 이름을 날린 사람을 알려주는 책이 아닙니다.


  그나저나, 이 보기글을 살피면, ‘야생적’과 ‘와일드한’이 나란히 나옵니다. ‘와일드’를 이름씨 꼴로 두고 ‘-하다’를 붙여요.


  영어 ‘wild’는 으레 그림씨로 씁니다. 이름씨로는 잘 안 씁니다. 이 낱말을 이름씨로 쓸 적에는 “(1) (야생 상태의) 자연 (2) 미개척지”를 뜻한다고 합니다. 한국사람이 영어 ‘와일드’를 ‘와일드-하다’처럼 쓰려 한다면 ‘자연답다’라는 뜻이 되겠지요.


  이제 ‘야생적’을 생각합니다. 이 한자말은 “길들지 않은”을 가리킵니다. “들 기운을 담은”을 나타냅니다. ‘야생(野生)’이란 ‘들 + 살이’입니다. 들에서 살다, 곧 마을이 아닌 들과 숲에서 산다는 뜻을 한자말로 옮겨 ‘야생’으로 나타냅니다.


  사람 손길을 타지 않으니 ‘거칠다’고 할 만합니다. 사람이 다듬거나 매만지지 않았으니 ‘투박하다’고 할 만합니다. 이 보기글을 하나하나 뜯어서 고쳐쓰면 무슨 이야기가 될까요. “풀은 모양이 풀다워야 볼 맛이 난다. 풀다운 맛이야 엉겅퀴나 방가지똥을 따를 수 없지만.” 풀은 풀입니다. 풀다운 맛이란 들내음이나 숲내음을 고이 풍기는 맛이겠지요. 4347.10.12.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들풀은 모양이 들풀다울 때라야 볼 맛이 난다. 거칠거나 투박한 맛이야 엉겅퀴나 방가지똥을 따를 수 없지만


‘야생초(野生草)’는 ‘들풀’이나 ‘풀’로 다듬고, ‘야생적(野生的)이라야’는 ‘들풀다워야’나 ‘들풀다울 때라야’나 ‘거칠거나 투박해야’로 다듬습니다. “따를 것이 없지만”은 “따를 수 없지만”으로 손봅니다.



​wild

1. 야생의, 자생의

2. 자연 그대로의, 사람이 손대지 않은

3. 제멋대로 구는, 사나운

4. 격렬한, 마구 흥분한, 몹시 화를 내는

5. 무모한, 터무니없는

6. (비격식) 아주 좋은[신나는]

7. (비격식) 열광하는, 사족을 못 쓰는

8. 광풍[폭풍]이 휘몰아치는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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