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긴글
어제 면소재지 고등학교에 가서 두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다. 두 시간 이야기를 하려고 보름쯤 미리 이야깃거리를 생각하고 마련했다. 두 시간에 걸쳐 여러 이야기를 간추려서 들려주는데, 이야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기운이 없다. 이튿날이 되어도 낮까지 기운을 되찾지 못한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는 교사가 되어 일하는 이들은 하루 내내 말을 하고 들을 텐데, 날마다 어떤 기운을 끌어내야 할까 헤아려 본다. 날마다 온힘을 다해 말을 하고 듣는다면, 하루 일을 마친 뒤에 그야말로 파김치가 되겠구나 싶다. 알맞게 힘을 가누어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교사와 같은 일을 할 수 없겠구나 싶다. ‘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이 기운을 쏟아야 할까.
‘글쓰는 일’도 말하는 일과 같으니, 참으로 온힘을 기울여서 글을 하나 내놓는다. 그냥 쓰는 글이란 없고, 쉽게 보여주는 글이란 없다. 이웃과 나눌 글을 한 꼭지 쓸 적을 헤아려 본다. 짧든 길든 똑같이 기운을 쏟는다. 짧게 쓰는 글이라서 쉽게 쓰지 않는다. 아주 마땅한 노릇 아닌가. 짧은 글이든 긴 글이든 모두 똑같은 글이다. 짧게 썼든 길게 썼든 모두 내 넋을 기울여 힘을 쏟는다.
짧게 쓰는 글은 모든 이야기를 짧게 갈무리해서 들려준다. 길게 쓰는 글은 모든 이야기를 낱낱이 풀어서 들려준다. 갈무리해서 들려주든 풀어서 들려주든 기운이 들기는 똑같다. 짧게 쓸 때와 길게 쓸 때가 다르다면, 손목에 드는 힘이 좀 다를 뿐이다. 길게 쓰는 글은 손목이 살짝 아픈 대목이 다르다. 원고지 서른 장 길이를 십 분 만에 쓸 때가 있는데, 원고지 한 장 길이를 삼십 분에 걸쳐서 쓰거나 사흘이나 석 달 만에 쓸 때가 있다.
글을 읽는 사람은 ‘길이’를 읽으면 안 된다. 글에 깃든 숨결을 읽어야 한다. 글을 읽는 사람은 ‘갯수’를 읽으면 안 된다. 글에 흐르는 노래를 읽어야 한다. 4347.10.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