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2014년 5-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우리 시골도서관에서 누리는 삶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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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도서관 풀내음

― 시골에서 흙을 읽으며 살기



  전남 고흥 도화면 동백마을에서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를 꾸립니다. 2011년부터 고흥에서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살아갑니다. 네 식구가 함께 살아갈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시골을 살피며 고흥으로 왔습니다. 이곳에 아는 이웃은 없습니다. 마구잡이로 파헤치거나 때려짓는 문화와 문명이 아닌, 풀내음과 나무꽃과 숲바람과 냇물을 먹고 싶은 마음으로 삶터를 옮겼습니다.


  5톤 짐차로 넉 대에 그득 책과 책꽂이를 싣고 서둘렀습니다. 서두른 탓에 땅과 흙을 깊이 살피지 못했습니다. 낡은 시멘트집을 허문 뒤 시멘트 쓰레기를 어떻게 치워야 하는가를 다스리지 못했고, 빈집을 고칠 적에 중천장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즐겁게 살아가기를 바라면 즐겁게 차근차근 일을 할 때에 노래가 샘솟는데, 처음 자리를 틀 적에 여러 대목을 크게 놓쳤습니다.


  마을 옆에 문을 닫은 초등학교가 있어 이곳에 책과 책꽂이를 두었습니다. 이장님이 다리를 놓아 학교 건물 반쪽을 도서관으로 씁니다. 문을 닫은 초등학교는 먼저 빌린 사람이 있어 이곳에 도서관을 꾸미면서도 아무런 간판을 세우지 못하고, 풀숲으로 우거진 어귀를 건드리지도 못합니다.


  열 달쯤 책꾸러미를 풀고 갈무리하니 도서관 티가 났어요. 어설픈 집살림과 책살림 때문에 곁님한테서 늘 꾸지람을 듣습니다. 아이들은 시골집에서 거리낌없이 노래하고 뛰놉니다. 집안에서건 마당에서건 고샅에서건 도서관에서건, 목청껏 노래하고 이마에 땀이 흐르도록 달립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 어른도 이렇게 신나게 일하고 어울려 놀 수 있을 때에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웁겠다고 느낍니다. 술을 먹어야 잔치가 아니고, 즐겁게 노래해야 잔치입니다.


  이웃 일본에서는 ‘기적의 사과’를 맺은 기무라 아키노리 님이 있습니다. 맛있으면서 싱그럽고 좋은 능금 한 알을 얻는 길은 비료도 농약도 아닌 ‘사랑스러운 손길로 풀을 보듬어 흙을 가꾸는’ 데에 있는 줄 몸으로 느껴 여러 가지 책을 썼고, 《자연재배》와 《기적의 사과》 같은 책이 한국말로 나왔습니다. 미국에서 오래도록 생물학을 살핀 조지프 코캐너 님은 1950년에 《잡초의 재발견(Weeds: Guardians of the Soil)》이라는 책을 썼고, 이 책은 2003년과 2013년에 한국말로 나옵니다. 생물학 교수가 쓴 책을 읽으면 ‘풀(잡초)’을 함부로 베거나 뽑거나 밀어서 없애면 흙이 제 기운을 잃어 못 쓴다고 합니다. 논이든 밭이든 숲이든 풀(잡초)이 스스로 씨앗을 퍼뜨려 자랄 수 있을 때에 흙이 기운을 북돋울 뿐 아니라, 사람들이 심어서 키우는 남새도 한결 알이 굵고 좋다고 과학으로 밝힙니다.


  시골에서 지내며 이웃을 바라봅니다. 우리 식구한테는 아직 땅이 없어 우리가 일구는 논이나 밭은 없습니다. 우리 식구는 집 둘레에서 저절로 돋는 풀을 뜯어서 먹습니다. 십이월부터 이월까지 유채잎을 뜯어서 먹고, 이월부터 갈퀴덩굴을 뜯어서 먹으며, 삼월부터 봄까지꽃·코딱지나물·별꽃나물·갓잎을 뜯으며, 사월부터 민들레·꽃마리·돌나물·정구지·쑥·제비꽃·쇠별꽃·돌미나리·소리쟁이를 뜯습니다. 요즈음에는 살갈퀴도 뜯습니다. 모두 맛나며 싱그러운 풀입니다. 지난해에는 여름부터 십일월 끝물까지 고들빼기잎과 까마중잎이랑 까마중알을 실컷 먹었어요.


  지난해 겪은 일을 돌아봅니다. 지난여름에 우리 마을에서 ‘항공방제’를 한다면서 조그마한 무인헬리콥터로 논마다 ‘친환경농약’을 뿌렸습니다. 무인헬리콥터는 마을 한복판 논에도 농약을 뿌리면서 우리 집 대문 위로 넘어왔고,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다가 농약을 뒤집어썼습니다. 마당에 넌 이불과 옷이 모두 농약을 맞았습니다. 농협 일꾼은 ‘사람이 맞아도 유해하지 않다’고 말할 뿐이었지만, 항공방제를 하는 날이면 ‘창문을 모두 닫고 장독 뚜껑을 닫으며 벌통을 치우라’고 알립니다. 사람 몸에 나쁘지 않다면 이렇게 할 까닭은 없겠지요.


  항공방제를 하기 앞서는 개구리 노랫소리가 온 마을에 가득하고, 제비들이 집집마다 처마 밑에서 멋진 춤사위를 선보였습니다. 항공방제를 하고 난 뒤 온 마을은 죽은듯이 고요합니다. 개구리가 거의 모두 죽고, 제비까지 죽어서 사라집니다. 우리 집 제비 네 마리는 항공방제 뒤로 자취를 감추었고, 이웃집 제비조차 다시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사진책도서관을 도시 아닌 시골에서 하면 손님이 얼마나 오겠느냐고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시골 할매와 할배는 ‘사진책’을 읽는다거나 ‘그림책’을 살핀다거나 ‘어린이책’을 들여다보기 어려울 만합니다. 텔레비전 연속극이 반가우실 수 있고 술추렴과 같은 마을잔치가 즐거우실 수 있어요. 시골에서 살겠다고 도시를 떠난 이웃이 있고, 고향을 찾아 도시에서 돌아온 이웃이 있습니다. 저마다 씩씩하고 야무지게 살림을 꾸립니다. 이분들한테도 책읽기는 그리 쉽지 않으리라 느끼곤 해요. 유기농이든 자연농이든 농업으로 살림을 꾸리자면 다들 바쁘기 마련입니다. 농약을 쓰는 이웃도 농약을 안 쓰는 이웃도 책을 못 읽습니다. 무엇보다, 농약을 쓰거나 안 쓰거나 흙이 어떤 빛깔이거나 냄새인지 깨닫지 않습니다.


  우리 집과 맞닿은 고구마밭을 일구는 이웃 할배는 ‘몸이 덜 힘들 적에 비료를 뿌려’ 고구마를 거두었을 적에는 이녁 고구마인데에도 맛이 없다 말씀합니다. 몸이 너무 힘들어 비료도 거름도 못하고 거두는 고구마는 참 맛이 있다 말씀합니다. 이분들 고구마밭 흙빛은 다른 이웃 밭흙 빛깔하고 다릅니다. 살짝 거무스름해요. 숲흙과 같은 빛은 아니지만 허여멀겋거나 시뻘겋지 않습니다. 풀뽑기를 거의 못하시다 보니 ‘풀이 흙을 살립’니다.


  모과꽃을 바라보고, 쑥무침구이를 하며, 평상에서 널놀이 즐기는 아이를 지켜보면서 생각합니다. 마당에 이불을 널어 해바라기 시키다가 생각합니다. 자전거에 두 아이 태워 마실을 다니며 생각합니다. 시골은 어떤 곳일까요. 시골빛은 어떠한가요. 시골에서 읽는 책은 우리 삶을 어떻게 가꾸어 줄까요. 4347.4.1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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