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오늘 하루를 되새기려 하는데, 어느새 밤 열두 시가 지난다. 이제 이월로 접어들며 끝날 듯한 ‘서울시 공문서 손질’하는 일은
마지막이 되리라. 지난해 십이월부터 이 일을 하느라 품을 많이 들였더니 골과 눈이 몹시 아프다. 그만큼 배운 대목이 많기도 하다만, 짧은 동안
수백 건에 이르는 공문서를 한꺼번에 들여다보자니 참으로 고단하다. 더구나, 오늘은 여러 곳에서 전화가 오고, 먼 손님과 가까운 손님이 잇달아
찾아온다. 이래저래 손님을 맞이하고 전화를 받으며 밀린 일을 하느라 부산을 떨다 보니, 아이들 먹을 밥을 제때 못 차렸다. 감을 썰고 배를 깎아
주는 한편, 다른 먹을거리를 주었지만, 막상 밥은 저녁 다섯 시나 되어서야 겨우 차렸다. 너무 바쁘게 살지 말자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더할 나위
없이 고단하고 바빴다. 작은아이도 큰아이도 낮잠을 못 재웠고, 졸음에 겨운 아이들을 저녁에 가까스로 재웠다. 한숨을 돌리면서 ‘서울 공문서
손질’을 더 하다가 팔뚝과 손목과 어깨가 결려 이제 그만하고 아이들 곁에 누울 생각이다. 설을 쇠고 나서 몸을 추스르느라 여러 날 걸리기도
했지만, 이월은 참 바쁘네. 삼월이 되면 어쩌려나. 삼월에는 내가 하고 싶은 ‘한국말사전 새로 만들기’에 온힘을 쏟을 겨를이 날까. 그러고
보니, 오늘 그토록 바쁜 틈에도 손빨래를 꽤 했고, 우리 집에 눌러앉으려는 떠돌이 개한테 밥을 두 차례 챙겨 주었네. 눈알이 핑핑 도는 하루가
지나갔는데, 뒷간에서 똥을 누면서 그 짧은 틈에 시집 한 권 다 읽기도 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느긋할 겨를이 없다 보니 아주 살짝 난 틈(혼자
뒷간에 앉는)에 엄청나게 마음을 가다듬어 시집을 다 읽어내는구나. 달과 별 모두 포근한 밤이다. 4347.2.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