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먹고 읽으며 산다
쌀밥은 쌀로 지은 밥입니다. 쌀은 벼가 맺은 열매를 말려서 껍질인 겨를 벗긴 알맹이입니다. 벼는 벼알 맺는 풀이고, 벼알은 벼꽃인 이삭이 패고 나서 여뭅니다. 벼이삭이 나기까지 늦봄부터 한여름까지 햇볕을 따끈따끈 받습니다. 볏잎은 햇볕을 머금고 벼뿌리는 빗물과 냇물 흐르는 무논에서 논흙을 단단히 움켜쥐면서 흙내음 맡습니다. 해와 비와 바람이 있기에, 여기에 흙과 벌레와 새가 있기에, 그리고 시골 흙지기 손길과 사랑과 꿈이 있기에, 벼 한 포기 자라 볍씨를 내놓습니다.
밥 한 그릇 먹는다고 할 적에는 해와 비와 바람을 먹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밥 한 그릇 먹는 사람은 흙과 벌레와 새를 함께 먹는 셈입니다. 밥 한 그릇 먹는 사람은 시골 흙지기 손길과 사랑과 꿈을 고스란히 먹습니다.
우리들이 읽는 책은 우리들이 저마다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밥을 먹고 숨을 쉬며 몸을 물빛으로 그득 채우는 삶을 이야기 하나로 갈무리해서 책이 태어납니다. 너도 나도 밥을 먹습니다. 너도 나도 햇볕을 먹습니다. 너도 나도 바람을 먹고, 빗물을 먹으며 흙을 먹습니다. 깨끗한 밥을 먹으면서 깨끗한 넋이 됩니다. 정갈한 바람을 먹으면서 정갈한 얼이 됩니다. 고운 빗물 먹으면서 고운 사랑 됩니다. 고소한 흙내음 먹으면서 고소한 꿈 됩니다.
도시에는 흙이 없고 시멘트와 아스팔트만 있다지만, 도시라는 곳은 둘레에 시골이 없으면 하루아침에 무너집니다. 시골이 없으면 어디에서 밥을 사오겠어요. 시골이 없으면 어디에서 물을 끌어오겠어요. 시골이 없으면 어디에서 나무를 베어 종이를 얻어 책을 빚겠어요. 시골이 있기에 도시에 자동차 넘치며 배기가스 그득하더라도 시골숲 나무와 풀이 맑게 걸러 줍니다. 시골이 있기에 도시에 공장 가득하며 매연 내뿜더라도 시골숲 나무와 풀이 밝게 씻어 줍니다. 시골이 있기에 도시사람 내다 버리는 쓰레기와 똥오줌이 냇물 따라 바다로 흘러가더라도 갯벌에서 갯흙이 차근차근 다독이며 다스려 줍니다.
빛이 있어 삶이 있습니다. 빛이 있어 눈을 뜨고, 빛이 있어 서로를 마주보며, 빛이 있어 눈을 밝혀 글을 쓰고 책을 읽습니다. 빛이 있어 일을 합니다. 빛이 있어 문학도 문화도 정치도 사회도 경제도 교육도 있어요. 빛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어요. 빛이 없는 곳에서 사람들이 무얼 할 수 있을까요. 빛이 없으면 그예 죽기만 할 테지요.
마음속에 담을 한 가지는 오직 사랑인데, 사랑은 사랑빛이라는 빛줄기로 가다듬어 고이 품습니다. 눈빛에서 사랑빛이 밝고, 손빛에서 사랑빛이 씩씩하며, 마음빛에서 사랑빛이 착하게 흐릅니다.
사진을 말하는 자리에서만 흔히 ‘빛을 읽는다’고 하지만, 사진뿐 아니라 그림과 글도 ‘빛을 읽는다’고 해야 맞습니다. 노래와 춤도 ‘빛을 읽는다’고 해야 맞습니다. 밥 한 그릇에서도, 물 한 동이에서도, 바람 한 숨에서도, 말 한 마디에서도, 우리는 늘 빛을 읽습니다. 빛을 읽으며 삽니다. 4346.11.2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