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엣과 물감 상자 미래그림책 48
카를로스 펠리세르 로페스 글.그림, 김상희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10

 


아름다운 그림
― 줄리엣과 물감 상자
 카를로스 펠리세르 로페스 글·그림
 김상희 옮김
 미래M&B 펴냄, 2006.9.20.

 


  아이들은 누구나 연필이나 크레파스를 쥐면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이 글씨를 쓸 적에도, 이 글씨는 꼭 그림을 닮습니다. 아니, 그림이지요. 아이들한테 글을 가르쳐 보셔요. 또박또박 그리는 글씨가 얼마나 고운지 모릅니다. 글을 배우지 못한 늙은 할매한테 글을 가르쳐 보셔요. 할매들 처음 익혀 쓰는 글이 얼마나 아름다운 그림인지 모릅니다.


.. 물감 상자를 선물로 받은 날, 줄리엣은 앞으로 어떤 신나는 일이 일어나게 될지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  (5쪽)


  글은 작가만 쓰지 않습니다. 글은 모든 사람이 씁니다. 그림은 작가만 그리지 않습니다. 그림은 모든 사람이 그립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지구별에서는 작가 아니라면 글도 그림도 못 하는 줄 잘못 여깁니다. 학교가, 사회가, 문화가, 제도가, 정치가, 경제가, 글이나 그림을 하는 사람을 따로 ‘작가·예술가’로 몰아넣습니다. 이리하여,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이들이 삶하고 동떨어진 채 ‘글 만들기·그림 만들기’가 되고 말아요.


  그리 오래지 않은 지난날까지, 모든 사람이 저마다 작가이면서 예술가였고 살림꾼이었습니다. 짚 한 오라기로 엮는 예술품이었습니다. 나무토막 하나로 깎는 예술품이었어요. 겨를 벗기려고 하는 절구질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행위예술’인가요. 도리깨를 들고 콩을 터는 어깻짓이란 얼마나 아리따운 ‘행위예술’인지요. 겨를 벗긴 쌀을 키로 까부르며 잔 부스러기를 날립니다. 쌀을 물로 헹구면서 조리로 돌을 입니다. 솥에 쌀을 안치면서 장작을 때어 불을 지핍니다. 밥물을 맞추어 고들고들 보들보들 고소고소한 새 밥을 짓습니다. 밥짓기란 날마다 이루어지는 멋진 ‘창작’이요 ‘창조’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창작과 창조가 어느 때부터 모조리 사라졌어요. 가게에서 쌀을 사지요. 겨를 벗길 일이 없고, 돌을 일 까닭이 없습니다. 키를 까부르는 사람조차 없지만, 키가 무언지조차 몰라요. 조리가 뭔지 아려나요. 한 해 끝물에 사고파는 복조리는 알아도, 조리가 언제 어떻게 쓰는 살림살이인 줄 깨닫는 사람이 없어요. 더구나, 조리가 되든 복조리가 되든, 누구나 손수 짚으로 엮어서 썼지, 돈을 주고 사다 쓰지 않았어요.

 

 


.. 줄리엣은 물감 상자를 가지고 노는 게 점점 좋아졌어요. 이제 물감 상자만 있으면 도화지 위에서 무엇이든 볼 수 있다고 믿었지요 ..  (13쪽)


  살아가는 하루가 모두 그림입니다. 살아가는 나날이 언제나 글입니다. 프랑스인지 어느 유럽인지, 또 네덜란드인지 어느 유럽인지, 밀레가 고흐가, 들녘 들사람 이야기를 들빛 묻어나도록 들숨 담아 들노래로 그렸습니다. 밀레는 한겨울에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다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밀레네 식구들도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살았습니다. 고흐네 형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 그림값이 얼마나 되었든 말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밀레도 고흐도 어디 먼 나라에서 똑 떨어진 그림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살아가는 사람을 그렸고, 살아서 숨쉬는 싱그러운 시골사람 시골빛을 그림으로 되살렸습니다.


  이제 시골에서 살아가는 화가도 작가도 거의 없다 할 테지만, 그림이나 글은 화가와 작가만 이루지 않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 모습을 그리고 쓰면 됩니다.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자장노래 부르는 어버이 모습을 그리고 쓰면 됩니다. 자전거를 타든 자가용을 몰든, 여느 삶을 즐거이 누리면서 그리고 쓰면 됩니다.


  언제나 스스로 즐기면서 아름답게 태어나는 삶입니다. 늘 스스로 가꾸면서 환하게 빛나는 하루입니다. 내 아이가 없으면 이웃 아이를 그려요. 모두 우리 아이들입니다. 내 동무가 없으면 이웃 동무를 그려요. 모두 우리 동무요 이웃입니다.


  나무를 그리고 풀을 그리며 꽃을 그려요. 마음속에 곱게 빛나는 숨결 자라도록,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고 이웃 삶을 사랑하며 옆지기와 아이들 삶을 사랑하는 넋으로 그림을 그려요.

 


.. 줄리엣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물감 상자를 꺼냈어요. 그리고 아침에 들었던 새들의 노랫소리를 상상해 보았어요. 그래, 새들의 노랫소리는 바로 이런 색깔이야 ..  (21쪽)


  카를로스 펠리세르 로페스 님이 빚은 그림책 《줄리엣과 물감 상자》(미래M&B,2006)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줄리엣이라는 아이는 물감 상자를 받고서 언제나 즐겁게 그림을 그립니다. 누가 시켜서 그리는 그림이 아닙니다. 예술품 되라며 그리는 그림이 아닙니다.


  마음을 그립니다. 꿈을 그립니다. 사랑을 그립니다. 생각을 그립니다.


  우리 아이들은 작가나 화가나 사진가 되어야 하지 않아요. 우리 아이들은 회사원이나 공무원 되어야 하지 않아요. 우리 아이들은 가수나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되어야 하지 않아요. 우리 아이들은 그예 아이들로 자라서 ‘사람’이 되면 되어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며, 아이들과 어깨동무하는 예쁜 ‘어른’이 되면 되어요.


  즐겁게 그릴 그림은 바로 모든 사람들 마음속에서 다 다르면서 다 같은 빛으로 곱게 자랍니다. 4346.11.1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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