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956) 것 52 : 사라진 것을

 

다음 날 여자가 사라진 것을 알았다
《문혜진-검은 표범 여인》(민음사,2007) 85쪽

 

  어느 날 옆지기가 나한테 물었습니다. “여보, 왜 ‘남자’와 ‘여자’라고 써야 해요?” 옆지기는 ‘남자(男子)·여자(女子)’가 한자말이기 안 써야 한다는 생각에서 묻지 않았습니다. 옛날부터 우리 겨레가 가리키던 이름이 있을 텐데, 그 말이 무엇이냐 하고 물었습니다.


  ‘사내·계집’이라는 오래된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나라 사람들은 스스로 한국말 ‘계집’을 깎아내리는 말투나 낮춤말인 듯 여깁니다. 제 나라 말을 스스로 갉아먹습니다. 이 낱말을 아무리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뜻으로 쓴다 하더라도, 이 나라 여느 사람들은 온통 철없는 생각에 젖었습니다. 아이들은 이런 철없는 생각에 안 젖지만, 아이들을 낳아 돌보는 어른들한테 철이 없으면, 아이들도 이 말을 물려받지 못합니다.


  우리 집 네 식구 전라도 깊은 시골마을에 보금자리 얻어 살아가는 어느 날, 옆지기가 다시 한 마디 합니다. “여보, ‘가시내’라는 말이 있네요.” 시골 어르신들은 ‘남자·여자’라는 낱말보다 ‘머스마·가스나’라든지 ‘머시매·가시내’라는 낱말을 훨씬 자주 씁니다. 아니,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장님이 마을방송을 하는 자리에서나 ‘남자·여자’라 할 뿐, 할매 할배 복닥거리며 어울리는 들일 자리라든지 잔치 자리에서 보면 모두들 ‘머스마·가스나’라든지 ‘머시매·가시내’라 말씀합니다.


  그래, 서울에서 살며 서울말 쓴다면 ‘남자·여자’라 쓰는 틀에서 홀가분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우리 식구들은 시골에서 살아가니까 시골말로 ‘머스마·가스나’라든지 ‘머시매·가시내’라 말하면 되겠다고 느낍니다.

 

 여자가 사라진 것을
→ 여자가 사라진 줄
→ 가시내가 사라진 줄
 …

 

  ‘시골’이란 “도시가 아닌 곳”이 아닙니다. ‘시골’이란 “숲을 이룬 마을에서 흙을 만지는 터전”을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시골말이란, 숲을 이룬 마을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들이 쓰는 말입니다. 우리들이 즐겁게 쓸 말이란 삶을 살찌우는 말입니다. 삶을 살리고, 삶을 빛내며, 삶을 사랑하는 말을 쓸 적에 즐겁습니다. 삶을 나누고, 삶을 가꾸며, 삶을 노래하는 말을 쓰는 사람은 누구나 아름답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스스로 말빛을 헤아리지 않는 탓에 ‘줄’이라 적어야 할 자리에 ‘것’을 집어넣기 일쑤입니다. 올바르게 안 쓰고 ‘것’을 척척 집어넣으면서 ‘현대 말법’이라도 되는 듯 여기기도 합니다. 어쩌면, 오늘날에는 올바르지 않게 써야 ‘현대 말법’이 되는지 모릅니다. 생각은 마음껏 펼치되, 말은 바르게 할 때에, 더없이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다운 빛이 흐르리라 느낍니다. 4346.9.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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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여자가 사라진 줄 알았다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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