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582) 물론

 

당신 딸들은 이 동네 암탉들 중에서 제일 알을 많이 낳는다고요. 물론 나보다야 못하지만요
《이억배·이호백-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재미마주,1997) 24쪽

 

  “암탉들 중(中)에서”는 “암탉들 가운데”나 “암탉들 사이에서”로 다듬고, ‘제일(第一)’은 ‘가장’이나 ‘누구보다’로 다듬습니다.


  한자말 ‘물론(勿論)’은 “말할 것도 없음”을 뜻합니다. 국어사전을 보면, “상용이는 물론이고, 갑례도 영칠이도”나 “박 의사는 재산과 명성을 물론 원했었다” 같은 보기글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 같은 보기글은 “상용이는 말할 것도 없고”나 “상용이를 비롯해서”로 손질하면 되고, “돈과 이름을 말할 것도 없이 바랐다”나 “돈과 이름을 마땅히 바랐다”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나보다야 못하지만요
→ 다만 나보다야 못하지만요
→ 그러나 나보다야 못하지만요
→ 그래도 나보다야 못하지만요
→ 그렇더라도 나보다야 못하지만요
→ 뭐, 나보다야 못하지만요
→ 말할 것도 없이 나보다야 못하지만요
 …

 

  ‘물론’은 이름씨와 어찌씨 두 가지로 쓴다 합니다. 그러나, ‘물론’을 어찌씨 가운데 이음씨(접속부사)로 쓴다는 뜻풀이나 쓰임새는 국어사전에 없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물론’을 이음씨로 퍽 자주 씁니다.


  한국사람이 ‘물론’을 언제부터 썼을까 궁금합니다. 예전 사람들은 이런 한자말을 썼을까요. 1800년대나 1600년대를 살던 옛사람이 이런 한자말을 썼을까요. 한글로 글을 안 쓰고 중국글로 글을 쓰던 학자와 지식인이 쓰다가 퍼진 말투는 아닐까요. 일제강점기에 확 번진 일본 한자말 가운데 하나는 아닐까요.


  요즈음 사람들은 ‘물론’ 같은 낱말을 안 쓰자 한다면 말문이 막힐 수 있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을 기울이면 말문을 한껏 환하게 열 수 있습니다. 이음씨 구실을 하는 한국말은 참 많아요. 때와 곳을 살펴 알맞게 넣을 이음씨가 퍽 많아요.


  이 자리에서는 “그야 나보다야 못하지만요”나 “그렇다 한들 나보다야 못하지만요”나 “그렇지만 나보다야 못하지만요”처럼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이밖에도 사람마다 다 다르게 쓰는 말투를 살리며 여러 가지로 쓸 만해요. 말뜻을 제대로 알면 이음씨를 제대로 넣고, 말흐름을 슬기롭게 살피면 이음씨를 비롯해서 여러 낱말을 슬기롭게 엮습니다. 4346.6.1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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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딸들은 이 동네 암탉들 가운데 알을 가장 많이 낳는다고요. 다만 나보다야 못하지만요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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