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063) 생生- 2-1 : 생고생
왜 편한 자동차를 두고 생고생일까 생각하는 사람들이니, 단박에 자전거를 타라고 전도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김세환-김세환의 행복한 자전거》(헤르메스미디어,2007) 53쪽
‘편(便)한’은 ‘좋은’으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전도(傳道)하는’은 ‘퍼뜨리는’이나 ‘알리는’이나 ‘이끄는’이나 ‘끌어들이는’으로 손봅니다. ‘생고생(生苦生)’은 한 낱말로 국어사전에 실리고, 말뜻은 “하지 않아도 좋을 공연한 고생”이라고 합니다. “애먼 고생”이나 “덧없는 고생”이나 “쓸데없는 고생”쯤 되겠지요.
외마디 한자말 ‘생(生)-’은 여섯 가지 쓰임새가 있다고 합니다. “(1) ‘익지 아니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2) ‘물기가 아직 마르지 아니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3) ‘가공하지 아니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4) ‘직접적인 혈연관계인’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5) ‘억지스러운’ 또는 ‘공연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6) ‘지독한’ 또는 ‘혹독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라고 해요. 그런데, 국어사전 말풀이는 왜 “-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처럼 나올까요. “-를 뜻하는 접두사”나 “- 같은 뜻을 더하는 접두사”처럼 적어야 올바를 텐데요.
생김치 / 생나물 / 생쌀 → 날김치 / 날나물 / 날쌀
생가지 / 생나무 → 날가지(젖은 가지) / 날나무(축축 나무)
생가죽 / 생맥주 → 날가죽 / 날맥주(싱싱 맥주)
생부모 / 생어머니 → 내 부모 / 우리 어머니
생고생 / 생과부 / 생죽음 → 억지 고생 / 억지 과부 / 억지 죽음
생급살 / 생지옥 → 모진 급살 / 모진 지옥
여섯 가지 ‘生-’ 쓰임새를 살피면 낱말마다 조금씩 다르게 풀어낼 수 있습니다. 아니, 풀어낸다기보다 예부터 쓰던 말투가 있어요. ‘날쌀·날나무·날가죽’이 있지요. “젖은 가지”나 “축축 나무”처럼 새롭게 써도 되고요. 나를 몸소 낳은 부모라면 “내 부모”라 하면 되고, 나를 낳은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나 “내 어머니”라 하면 됩니다. 굳이 ‘生-’이라는 외마디 한자말을 끌어들여야 하지 않습니다. 다만, ‘생맥주’도 ‘날맥주’로 쓸 만한지 잘 모르겠어요. 쓰려고 하면 얼마든지 쓰겠는데, 사람들이 이러한 말틀을 얼마나 헤아릴 만한지 아리송합니다. 차라리 “싱싱 맥주”라든지 “시원 맥주”처럼 새롭게 말을 지을 때에는 잘 어울리리라 봅니다.
생고생일까 생각하는
→ 날고생일까 생각하는
→ 그 고생일까 생각하는
→ 사서 고생일까 생각하는
→ 그리 힘들게 사나 생각하는
→ 스스로 힘들게 사나 생각하는
…
고단한 일을 구태여 사서 할 까닭이 없다고 한다면, 덧없는 외마디 한자말은 구태여 끌어들이지 않아도 된다고 느낍니다. 아름답게 쓸 말을 쓸 때에 아름답습니다. 사랑스럽게 주고받을 말을 주고받을 때에 사랑스럽습니다. 한자말 ‘고생’을 그대로 쓰고 싶다면, ‘똥고생’이나 ‘개고생’ 같은 새 낱말 떠올려도 돼요. 또는, “괜한 고생”이나 “사서 고생”으로 적어도 괜찮습니다. “굳이 힘들게 사네”나 “구태여 쉬운 길 마다 하네”처럼 적어도 어울립니다. 4341.3.15.흙./4346.6.1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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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좋은 자동차를 두고 힘들게 사느냐 생각하는 사람들이니, 단박에 자전거를 타라고 이끄는 일이 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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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05) 생生 2-2 : 생고구마
방 안에 오도카니 앉아서 / 생고구마 깎는 소리 / 가랑가랑 기침하는 소리
《안도현-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실천문학사,2007) 98쪽
어른들이 ‘생고구마’나 ‘생감자’ 같은 낱말을 쓰면, 아이들도 이러한 낱말을 익히 들으면서 배웁니다. 어른들이 ‘날고구마’나 ‘날감자’ 같은 낱말을 쓰면, 아이들도 이러한 낱말을 늘 들으면서 배워요. 아이들이 쓸 낱말은 어른들이 물려줍니다. 아이들이 살찌우거나 북돋울 한국말은 어른들이 먼저 살찌우거나 북돋웁니다.
생고구마 깎는 소리
→ 날고구마 깎는 소리
이렇게 써야 옳거나 저렇게 쓰면 그르다 하고 가를 수 없습니다. 이렇게 쓸 때에는 아이들이 이렇게 말하면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렇게 쓸 적에는 아이들이 저렇게 말하면서 저렇게 생각해요. 시골마을에서 숲을 누리는 아이들은 시골말과 숲말을 누립니다. 도시에서 자동차 소리에 갇힌 채 영어학원 맴도는 아이들은 자동차 소리 같은 말이랑 영어학원에서 배우는 영어로 말삶 가꿉니다. 어느 쪽이 옳거나 그르지 않습니다. 그저 삶이 다를 뿐입니다. 4346.6.1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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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 오도카니 앉아서 / 날고구마 깎는 소리 / 가랑가랑 기침하는 소리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