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5월 18일 보림 창작 그림책
서진선 글.그림 / 보림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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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69

 


평화를 부르는 ‘낫·호미·쟁기’
― 오늘은 5월 18일
 서진선 글·그림
 보림 펴냄,2013.5.2./10800원

 


  군인이 있는 나라에는 민주주의가 없습니다. 군인이 많은 나라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군인이 권력을 거머쥐거나 누리는 나라에는 평등도 통일도 없습니다.


  군인이 있는 한국에 민주주의가 얼마나 있는가 궁금합니다. 군인이 있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어떤 평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군인이 권력을 거머쥐거나 누리면서 지프나 헬리콥터를 타고 돌아다니는 나라에 어떤 평등도 통일이 감도는지 궁금합니다.


  한국과 이웃한 일본을 보면, 정치권력 거머쥐는 이들이 군대를 키우려고 애씁니다. 이러면서 이른바 ‘넋나간 말’ 또는 ‘얼빠진 말’을 일삼습니다. 정치권력과 군대권력이 한동아리 되면서 스스로 바보가 됩니다. 지난날 일본 제국주의도 오늘날 일본 군국주의도 모두 군대가 한복판에 있습니다.


  유럽에 있던 십자군도, 유엔에서 꾸리는 평화유지군도, 모두 군대입니다. 이들 군대로는 어떤 평화도 즐거움도 사랑도 피워내지 못합니다. 꽃은 총부리에서 피지 못해요. 꽃은 흙에서 피어요. 꽃은 군화발에서 피지 않아요. 꽃은 맨손으로 흙을 보듬고 맨발로 흙을 밟는 시골 흙일꾼 둘레에서 피어요.


.. 군인 아저씨들이 우리 동네에 왔다. 나는 진짜 총을 처음 봤다. 진짜 총을 보니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나는 총이 정말 갖고 싶다. 군인 아저씨들을 따라가고 싶었는데 누나가 빨리 집으로 가자고 했다 ..  (9쪽)

 

 


  군인이 있는 나라는 군인한테 쓸 돈을 세금으로 어마어마하게 거둡니다. 미국도 이스라엘도 한국도 국방비라는 이름 붙여 아주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거두어들여서 쏟아붓습니다. 남녘땅 나라도 북녘땅 나라도 국방비로 지나치게 많은 돈을 퍼붓습니다. 그러면, 남녘땅이나 북녘땅에 평화가 있는가요. 남녘땅이나 북녘땅에 민주주의가 있는가요. 남녘땅이나 북녘땅에 차별과 불평등 사라지는가요. 이 나라 어느 곳에 따사로운 손길과 너그러운 마음결 있는가요.


  군인은 농사를 짓지 않습니다. 군인은 실을 뽑지도 물레를 잣지도 베틀을 밟지도 않습니다. 군인은 집을 짓지 않습니다. 군인은 아이를 낳아 보살피지 않습니다. 군인은 밥·옷·집을 세금으로 빼앗습니다. 군인은 아이를 낳아 보살피는 삶하고 등질 뿐 아니라, 군인은 사람 죽이는 짓을 날마다 새로 익힙니다. 군인이 총을 들고 배우는 것이란, 오직 사람을 더 빨리 더 많이 죽이는 짓입니다.


  군인이 총에 칼을 꽂고 무엇을 배울까요. 군인이 훈련을 뛰며 구슬땀 흘리며 무엇을 하나요. 모두 사람을 더 빨리 더 많이 죽이는 솜씨를 키웁니다. 장교나 하사관은 무슨 일을 하나요. 장교와 하사관은 이 나라를 따사롭게 북돋우는 일 얼마나 생각하는가요. 중앙정부는 왜 군대를 두고, 왜 군인을 먹여살리려 할까요. 남녘도 북녘도, 일본도 중국도, 미국도 러시아도, 왜 군대를 그토록 키우면서 이녁 나라 ‘사람들 삶 사랑스레 북돋우는 길’하고는 자꾸 멀어지려 할까요. 무엇보다, 이 바보스러운 군대 얼거리를 ‘여느 사람’들은 왜 올바로 깨닫지 못한 채 스스로 죽음구덩이를 팔까요.


.. 아빠는 누나에게 집 밖으로 절대 나가지 말라고 했다. 나는 누나 방으로 가서 엄마가 우니까 나가지 말라고 했다. 누나는 꼭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나가야 한다고 했다. 누나는 나를 꼭 안아 줬다. 누나 냄새는 정말 좋다 ..  (15쪽)


  탱크도 군함도 전투기도 평화를 부르지 않습니다. 평화는 낫과 호미와 쟁기가 부릅니다. 탱크도 군함도 전투기도 씨앗 한 톨 심지 못합니다. 푸성귀를 뜯지 못하고, 가을걷이를 하지 못하는 총부리요 칼날입니다. 오직 낫과 호미와 쟁기가 사람들을 먹여살립니다. 오로지 낫과 호미와 쟁기로 밥을 짓고 옷을 지으며 집을 짓습니다.


  대통령이 있어야 한다면, 대통령도 텃밭을 두어 이녁 밥을 이녁 스스로 얻어야 합니다. 국회의원도, 대학교수도, 과학자도, 공장 노동자도, 버스 일꾼도, 건물 청소부도, 저마다 텃밭 한 뙈기 있어 스스로 이녁 밥을 손수 흙을 만지며 얻어야 합니다.


  총과 탱크를 녹여 낫을 만들 노릇입니다. 칼과 군함을 녹여, 아니 처음부터 칼도 군함도 만들지 않으면서, 숲을 가꾸고 들을 보듬을 노릇입니다. 전투기도 군화도 모두 버리고, 아니 처음부터 전투기도 군화도 만들지 않으면서, 바다와 갯벌과 멧자락 사랑하면서, 나무를 아끼고 꽃을 어루만질 노릇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길은 숲에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어깨동무할 길은 시골에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랑할 길은 따순 손길로 쓰다듬는 풀과 나무와 꽃에 있습니다.

 

 


.. 친구들이 우리 누나가 왔다고 외쳤다. 정말로 우리 누나가 트럭을 타고 왔다. 엄마 아빠는 울면서 누나 손을 잡고 집으로 가자고 했다. 나도 누나에게 집에 가자고 하자, 누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형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민주주의를 지키자고 외쳤다. 동네 아줌마들이 주먹밥이랑 물과 음료수를 트럭 위에 실었다 ..  (21쪽)


  서진선 님이 빚은 그림책 《오늘은 5월 18일》(보림,2013)을 읽습니다. 1980년 5월 전라도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보드랍고 수수한 손길로 엮어서 일군 그림책입니다. 할매와 어머니 아버지와 누나와 나 사이에 어떤 생각과 사랑과 꿈이 오가는가를 가만히 보여주는 그림책입니다.


  5월 18일, 어떤 날인가요. 5월 28일, 어떤 날일까요. 5월 그맘때는 들딸기와 멧딸기 붉게 익어 달콤하고 맛나게 누리는 날입니다. 어른도 아이도 숲과 들과 멧골에서 들딸기랑 멧딸기 실컷 즐기면서 나누는 날입니다.


  오월이 붉은 까닭은 붉은 들열매 누구나 스스럼없이 나누면서 마음과 몸을 살찌우기 때문입니다. 오월이 붉으면서 사랑스러운 까닭은 맑은 숲바람 마시면서 이마에 흐르는 구슬땀을 무논 개구리 노랫소리가 식혀 주기 때문입니다.

 


.. 친구들이 총 놀이를 하자고 불렀다. 나는 총 놀이를 하고 싶지 않았다. 누나가 만들어 준 비행기들만 남기고 총은 쓰레기통에 버렸다 ..  (27쪽)


  평화를 부르는 소리를 찾을 때에 평화를 누립니다. 평화가 이루어지는 사랑을 생각할 때에 평화를 짓습니다. 기념관 건물은 평화를 부르지 않습니다. 추모비와 추모탑은 평화를 데려오지 않습니다.


  고속도로를 갈아엎어 숲으로 돌려놓을 때에 평화를 누립니다. 공장과 발전소 문을 닫고 들판과 멧자락으로 돌려놓을 때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댐과 수도물과 4대강사업 아닌 냇물과 시냇물과 도랑물 졸졸 흐르며 물고기 예쁘게 노닐 때에 평화가 피어납니다.


  5월 18일, 시골마을 어디나 바쁜 일철입니다. 5월 28일, 시골자락 어디나 두레와 품앗이 이루면서 마을잔치 벌어집니다. 오월은 푸른 숲과 들에 사람들 사랑 심는 달입니다.


  모두들 삶을 찾고 삶을 일구며 삶을 사랑할 수 있기를 빕니다. 모두들 서로 어깨동무하고 함께 손을 맞잡으며 나란히 일놀이 즐길 수 있기를 빕니다. 푸른 숲에서 푸른 바람 마시면서 푸른 숨결로 푸른 생각 빛낼 수 있기를 빕니다. 4346.6.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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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02 10:02   좋아요 0 | URL
저도 이 그림책, 참 좋게 읽었어요.
함께살기님의 아름다운 리뷰로, 다시 생각하며 읽으니
더욱 마음에 와 닿습니다..

숲노래 2013-06-02 14:06   좋아요 0 | URL
즐겁게 장만해서 잘 읽었어요.
책 앞뒤 속지에 넣은 '총 그림'은
참 깊은 은유를 이야기해 주더군요.

hnine 2013-06-02 10:20   좋아요 0 | URL
요즘 어린이를 위한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책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을 봅니다. 세월이 많이 변했어요. 저 대학다닐 때는 어른들 사이에서도 맘대로 얘기하지 못하던 걸 생각하면요.
읽어보진 않았지만 아마 작가가 몇배 더 수고하여 썼으리라 짐작되어요.

숲노래 2013-06-02 14:07   좋아요 0 | URL
네, 세상 참 많이 달라졌지요.
그런데, 달라진 세상이기는 하지만,
아직 '좋아진' 세상은 아니로구나 싶어요.

이제부터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를 넘어서
'무엇을 말할까'를 생각하는
이야기책도 나오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