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명석의 유쾌한 일본만화 편력기
이명석 지음 / 홍디자인 / 1999년 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238
만화책을 어떻게 읽는가
― 이명석의 유쾌한 일본 만화 편력기
이명석 글
홍디자인 펴냄,1999.2.8./8500원
만화책은 즐겁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한 권 집어들어 즐겁게 한 장 두 장 읽고 보면 어느새 한 권을 덮습니다. 만화를 그리는 이들은 낱권책 하나 그리기까지 퍽 기나긴 나날 보내는데, 만화책 읽는 사람은 그야말로 훌러덩 읽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따지면 글 한 줄 써서 책 한 권 꾸리기까지 퍽 오래 걸리지만, 글책 읽는 사람도 책 한 권 쉽게 훌러덩 읽어요. 제아무리 두툼한 책이라 하더라도 며칠 들이면 다 읽을 수 있으나, 얇은 책이든 두툼한 책이든 한 권 부피 될 글을 쓰자면, 몇 해나 열 몇 해 또는 스물 몇 해를 들이곤 해요.
만화책은 한 번 읽고 덮지 않습니다. 훌러덩 한 권 읽어내지만, 다시 한 번 읽고 또 한 번 읽습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만화책을 한 번 손에 쥐면 적어도 대여섯 번은 그 자리에서 되읽고, 하루 동안 열 차례 남짓 되읽었습니다. 만화책은 되읽으면 되읽을수록 새롭게 읽힙니다. 앞서 읽을 적에는 못 본 그림을 다음에 알아봅니다. 두세 차례 읽으며 못 깨달은 대목을 너덧 차례 읽으며 시나브로 깨닫습니다.
사진책을 읽을 때에도 이와 같다고 느껴요. 사진은 후루룩 넘기면 한 권 쉽게 읽는다 하겠지요. 그렇지만 제대로 살피거나 훑거나 돌아본다고 할 수 없어요. 사진책도 만화책도 열 번 스무 번 잇달아 읽으면서 찬찬히 곰삭힙니다.
시를 읽을 때에도 산문을 읽을 때에도 소설을 읽을 때에도 이와 같겠지요. 노래를 부를 때에도 이와 같을 테지요. 한 번 해서 끝맺는 놀이(책읽기)는 없어요. 고무줄놀이가 되든 땅금놀이가 되든 열 번 백 번 천 번 되풀이하면서 새롭게 즐깁니다.
.. 《메종일각》은 바로 우리 이웃에 살고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 같다. 그곳에는 화려한 그림도, 번쩍이는 환상도 없다. 그저 구질구질한 우리들의 방에서 조금은 별스럽지만 재미있는 사람들이 웃고 떠들고 있을 뿐이다. 사는 것은 힘들지만, 그래도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서기 2천 년을 눈앞에 둔 첨단 국가 일본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들, 오직 과거만이 그릴 수 있는 아름다움이 이 작품 속에 있다. 다카하시 루미코도 이런 작품을 다시 그리지는 못할 것이다 .. (31쪽)
이명석 님이 쓴 만화비평 《이명석의 유쾌한 일본 만화 편력기》(홍디자인,1999)를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명석 님은 만화비평으로 내놓은 책에 붙인 이름부터 ‘즐거움(유쾌)’을 말합니다. 이명석 님 스스로 즐겁게 읽은 만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다른 사람 눈치껏 이런 명작 저런 걸작 소개하는 만화비평 아닌, 이명석 님 스스로 즐겁게 읽은 만화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명석 님으로서는 즐겁게 읽은 만화책 이야기를, 만화비평이라 하는 느낌글을 쓸 적에는 썩 즐겁게 글을 썼다고는 느끼기 어렵습니다. 숱한 문화비평이나 예술비평을 생각한다면 퍽 쉽게 쓴 듯 여길 만하지만, 이명석 님 스스로 ‘즐겁게 읽었다’는 느낌이 살풋 묻어나지는 못하는구나 싶어요.
즐거움이란 느낌입니다. 즐거움이란 생각이 아닙니다. 만화를 읽는 즐거움이란, 만화책 한 권에서 나한테 감겨드는 즐거운 느낌이자 마음이자 사랑입니다. 이 만화는 이렇고 저 만화는 저렇다 하고 금을 긋거나 가를 때에는 느낌 아닌 생각이 됩니다.
생각을 쓰는 일은 잘못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생각을 쓸 수 있어요. 그런데, 생각을 섣불리 밝힌다면 따분합니다. 만화를 그린 이들마다 이녁 느낌과 마음과 사랑을 즐겁게 담으려고 땀을 흘리는데, 정작 만화를 읽는 사람은 즐거운 느낌이나 마음이나 사랑이 아닌, ‘비평을 하려는 생각’이 되면, 만화책을 꾸밈없이 누리거나 맛보는 쪽하고 멀어져요.
《도레미하우스》라는 이름으로도 나오고, 다른 이름으로도 해적판이 나온 적 있는 《메종일각》이라는 다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책이 ‘오직 과거만이 그릴 수 있는 아름다움’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게다가 다카하시 루미코 님이 이 같은 작품을 ‘다시 그리지는 못’하리라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즐겁게 읽었으면 즐겁게 느낌글을 써야지요. 섣부른 비평을 쓸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메종일각》이든 《도레미하우스》이든 또 다른 해적판이든, 이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조금도 ‘삶이 힘들’지 않습니다. 가난하게 살든 말든 스스로 삶을 즐깁니다. 곧, 만화를 그리는 다카하시 루미코 님은 이녁 삶을 이녁 스스로 즐겨요. 만화를 그리는 즐거움 그대로 만화 주인공 삶이 태어납니다. 다카하시 루미코 님 단편만화이든 《란마 1/2》이든, 요즈음 꾸준히 그리는 《경계의 린네》이든, 또 《이누야샤》이든, 모두 즐거움이 밑바탕이라고 느낍니다. 즐겁게 울고, 즐겁게 놀며, 즐겁게 어우러지는 삶을 노래해요.
.. 마루꼬짱이 국내에 제대로 번역되어 나오기 전에, 복고 바람을 탄 몇몇 만화들이 한국에서도 나왔다. 그 중에는 모방 시비를 불러일으킬 만큼 마루꼬짱 스타일과 대단히 흡사한 작품들도 있었다. 그림 스타일과 상황 설정이야 ‘마루꼬짱’ 역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니, 오리지널이니 표절이니 하는 이야기를 중언부언하고 싶지는 않다. 아이디어를 빌려오더라도 한국인들의 정서와 체험의 공감대는 한국 작가가 더 잘 표현할 수도 있으니 그 만화가 훨씬 나으리라고도 생각된다. 그러나 마루꼬짱만큼 공감할 수 있는 만화를 구경하기는 힘들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과거를 그린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시절이 지닌 솔직 담백함을 표현할 수 있는 작가의 꾸밈없는 서정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 (61쪽)
《꼬마 마루꼬짱》을 말하는 자리에서도 이명석 님은 “아이디어를 빌려오더라도 한국인들의 정서와 체험의 공감대는 한국 작가가 더 잘 표현할 수도 있으니 그 만화가 훨씬 나으리라고도 생각된다” 하고 말하다가는, 이내 “그러나 마루꼬짱만큼 공감할 수 있는 만화를 구경하기는 힘들다” 하고 덧붙여요. 스스로 생각을 함부로 밝히려 하면서 스스로 어긋납니다. 이런 말은 참 말이 안 되어요.
빅토르 위고를 생각해 봐요. 빅토르 위고가 프랑스사람이라 우리 가슴을 찡하고 못 울릴까요. 빅토르 위고 작품이 프랑스 삶터를 그리니, 한국 삶터하고 동떨어진 이야기로 여길 만할까요. 한국 작가 누군가 빅토르 위고 작품을 흉내내거나 배워서 새로운 소설을 쓰면, 이렇게 흉내내거나 배워서 쓴 소설이 ‘한국사람 마음에 더 잘 와닿을 작품’이 될까요.
한국사람 마음을 한국사람이 더 잘 나타낼 수 있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한국사람이면서 정작 한국사람 마음을 하나도 모르는 작가들이 퍽 많아요. 한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사람이지만 한국말을 슬기롭게 배우지 않고, 한국말을 올바르게 쓰지 않는 사람 매우 많아요. 한국에서 지내는 한국사람이지만, 이웃 한국사람 넋을 따사롭게 보듬지 못하는 사람 무척 많아요.
《꼬마 마루꼬짱》이 일본사람 마음만 건드린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나는 이 만화책을 ‘일본말 모르면서 일본책으로 헌책방에서 만나서 읽을 적’에도 따스함 느끼면서 눈물이 핑 돌곤 했어요.
《금색의 갓슈》나 《동물의 왕국》을 그린 라이쿠 마코토 님 만화책도, 《이치고다 씨 이야기》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나 《은빛 숟가락》을 그린 오자와 마리 님 만화책도, 《머나먼 갑자원》이나 《도토리의 집》을 그린 야마모토 오사무 님 만화책도, 《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나 《푸른 하늘 클리닉》을 그린 카루베 준코 님 만화책도, 《나츠코의 술》이나 《우리 마을 이야기》를 그린 오제 아키라 님 만화책도, 모두 ‘일본에서 일본사람이 그린 일본 이야기’이지만, 한국에서 한국사람으로서 읽어도 가슴을 찡하게 적시면서 아름다운 꿈과 사랑을 헤아리도록 북돋운다고 느낍니다.
한국사람이니까 한국 작가 만화책이 더 애틋하거나 사랑스러우리라 느끼지 않아요. 아름다운 만화라면 어느 나라 사람이 그렸든 아름답습니다. 《캄펑의 개구쟁이》는 말레이지아사람이 그렸지요. 《아버지와 아들》은 독일사람이 그렸어요. 대수로울 대목 하나 없어요.
이명석 님은 “일본 만화 편력기”라고 책이름에서 밝히는데, 이명석 님이 즐긴 만화가 일본 만화이든 서양 만화이든 대수롭지 않아요. 이명석 님은 그저 이명석 님 스스로 좋아하거나 사랑하고픈 아름다운 만화를 즐겼을 뿐이에요. 그 만화책들이 모두 일본책이었다 해서 굳이 “일본 만화”라 할 까닭 없고, 이 책들이 모두 만화라서 애써 “만화 편력”이라 할 까닭 없어요. 이명석 님 마음에 따사롭게 스며든 ‘아름다운 책’을 읽은 삶 아니겠어요? 이명석 님 가슴에 포근하게 감기는 ‘아름다운 삶’ 일구는 사람들 만난 이야기 아니겠어요?
책은 어떻게 읽을까요. 만화책은 어떻게 읽을까요. 네, 책이든 만화책이든 가슴으로 읽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사귈까요. 한솥밥 먹는 살붙이하고 어떻게 살아가나요. 네, 누구하고나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랑을 나누고 사랑을 읽으며 사랑을 말하는 삶입니다. 4346.5.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