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63) 하나의 13 : 하나의 도시
요지는 처음 본 그 아파트 단지가 하나의 도시처럼 여겨졌다. 아니, 어쩌면 이곳은 하나의 나라가 아닐까 생각했다
《이시다 이라/김윤수 옮김-날아라 로켓파크》(양철북,2013) 5쪽
보기글 첫째 글월 끝은 “도시처럼 여겨졌다”로 끝맺고, 둘째 글월 끝은 “아닐까 생각했다”로 끝맺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대목이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첫째 글월은 입음꼴입니다. 둘째 글월은 여느 꼴이에요. 첫째 글월도 둘째 글월과 같이 “도시처럼 생각했다”라든지 “도시처럼 느꼈다”로 손질해야 알맞으면서 잘 어울리겠다고 봅니다.
하나의 도시처럼 여겨졌다
→ 도시와 같다고 여겼다
→ 마치 도시 같다고 여겼다
…
영어로 치면 ‘a(an)’이라 하는 관사가 있습니다. 한국말에는 이런 관사가 없습니다. 그러나, 서양말을 한국말로 옮기며 얼결에 ‘한’이라는 한국말 관사가 넌지시 생깁니다. 한국 말법에 없는 말투이지만, 번역하는 분들이 으레 이 말투를 쓰고, 이제는 여느 작가 또한 이 말투를 씁니다.
이 보기글에서라면 “한 도시처럼 여겨졌다” 꼴로 쓰는 셈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이런 엉뚱한 관사 말고도 ‘하나의’ 꼴을 넣는 일이 곧잘 있습니다. 한국말에 없는 말투요, 한국말하고 어울릴 수 없는 말투이지만, 영어를 어설피 가르치면서 한국사람 한국말이 흔들리는 셈입니다. 여기에, 번역하는 이들이 한국말을 깊고 넓게 제대로 익히지 않으면서, 얄궂은 말투가 거듭 나타나는 셈이라 할 만합니다.
책이 많은 곳에 가면, “와, 여기는 도서관 같네.” 하고 말합니다. “와, 여기는 한 도서관 같네.”라든지 “와, 여기는 하나의 도서관 같네.” 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마당에 온갖 꽃 어여삐 돌보는 이웃집에 마실을 가면, “이야, 여기는 꽃밭이네.” 하고 말합니다. “이야, 여기는 한 꽃밭이네.”라든지 “이야, 여기는 하나의 꽃밭이네.” 하고 말하지 않아요.
하나의 나라가 아닐까
→ 나라가 아닐까
→ 나라와 같지 않을까
→ 나라와 같다고 할 만하리라
…
숲처럼 돌본 마당이라면 “숲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한 숲이 아닐까”라든지 “하나의 숲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책을 읽을” 뿐, “한 책을 읽”거나 “하나의 책을 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삶을 꾸립”니다. “한 삶을 꾸리”거나 “하나의 삶을 꾸리”지 않아요.
말을 어떻게 해야 알맞을까 하고 살필 수 있기를 빕니다. 내가 하는 말이 얼마나 알맞고 바르며 아름다울까 하고 돌아볼 수 있기를 빕니다. 4346.3.4.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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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는 처음 본 그 아파트 마을이 마치 도시 같다고 여겼다. 아니, 어쩌면 이곳은 나라가 아닐까 생각했다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