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를 쓰기
‘객관’이란 ‘여러 사람 눈길’로 바라보는 이야기요, ‘제3자’란 ‘다른 사람 눈길’로 바라보는 이야기라고 느낀다. 어떤 이는 객관이나 제3자라는 자리에 서며 글을 쓰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객관이나 제3자라는 자리가 있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어떤 사람이라 하더라도 ‘내 삶자리’에서 헤아리거나 바라볼 뿐, ‘다른 삶자리’나 ‘여러 사람 삶자리’에서 바라볼 수는 없지 않나. 나를 잊거나 지우면서 다른 사람 마음이 되어 본다지만, ‘다른 사람 마음이 되려’고 할 뿐이지, ‘다른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스스로 살아내는 만큼 헤아리거나 바라보기 때문에, 누구라도 이녁 삶자리에 맞추어 헤아리거나 바라본다고 느낀다.
그러니까, ‘객관’이나 ‘제3자’ 마음이 되어 글을 쓴다는 말은 함부로 할 수 없다. 남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옮긴다면 객관이나 제3자가 되었다고 할는지 모를 텐데, 내 느낌과 생각과 마음을 담지 않고 토씨 하나조차 똑같이 붙이며 읊는 말이나 글이란 조금도 아름다울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글을 쓴다고 할 때에는 내 이야기를 쓴다는 소리이다. 남 이야기를 쓴다면 글쓰기가 될 수 없다. 이른바 ‘채록’을 하거나 ‘증언’을 받는다면, 남 이야기를 토씨 하나조차 안 건드리며 그대로 살려야지. 객관이나 제3자라는 자리를 떠나, 남 이야기를 내 손을 빌어 적바림할 적에는 토씨 하나라 하더라도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 따옴표를 붙여서 적는 다른 사람 말은 내 멋대로 고치거나 손질해서는 안 된다.
글쓰기란 언제나 내가 살아내는 하루를 적바림하는 일이다. 내 마음을 적바림하고, 내 꿈을 적바림하며, 내 사랑을 적바림할 때에 글쓰기가 된다. 내 이야기는 나 혼자서 쓸 수 있다. 내 이야기는 바로 내가 쓸 수 있다. 아이들과 복닥이는 삶은 나 스스로 쓴다. 나무를 쓰다듬고 풀꽃을 들여다보는 기쁨은 나 스스로 쓴다. 겨울바람과 봄바람 누리는 즐거움은 나 스스로 쓴다. 스스로 내 삶을 어떻게 빛내면서 활짝 웃는가 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에 글을 쓴다. 4346.2.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