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는 자리
‘글을 쓰는 터’, 곧 ‘작업실’이라는 데를 이태쯤 누린 적 있다. 아직 혼인을 안 했고 아이도 없던 홀몸으로 서울에서 살아가던 때였는데, 보증금 천만 원에 깃들 수 있는 되게 재미난 골목집 2층을 얻어 달삯 20만 원 내면서 지내 보았다. 2001∼2002년 무렵이다. 일제강점기 적산가옥이던 나무집이었는데, 나무로 지은 계단을 밟고 2층으로 올라가면 삐이꺽삐이꺽 소리가 났다. 벽도 천장도 나무요, 2층 골마루도 마땅히 나무이다. 2층 난간 또한 나무이다. 온통 나무이니, 천장 안쪽에서 집쥐 달리기하는 소리를 듣고, 따로 뒷간이 없던 집이라, 집임자가 여러 셋방이 함께 쓰는 뒷간을 손수 만들어 주기도 했다. 겨울이 되면 물을 틀어도 개수대가 꽁꽁 얼어붙어 집에서 밥을 해 먹을 수 없던 그곳에, 어느 날 족제비 한 마리 찾아와 내 방을 기웃거리다가 홱 사라지기도 했다. 온통 책으로 둘러싸인 나무집에서 내 몸 하나 누일 자리만 있던 보금자리는 처음으로 누린 내 ‘글방’이었다고 할까.
옆지기랑 두 아이하고 살아가는 오늘을 돌아본다. 아이들 재우고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놀리고 하느라 부산하다. 네 식구 살아가며 내 글을 쓸 틈은 깊은 밤과 새벽 빼고는 없다. 모처럼 혼자 바깥일 보러 나오면, 너무 홀가분한 몸을 어쩌지 못하기 일쑤이다. 이러다가 문득 깨닫는다. 아하, 우리 아이들이 아버지더러 느긋하게 글 좀 써 보라고 이렇게 나를 풀어 주었나? 눈을 살그마니 감고 생각을 기울인다. 그래, 그러면 내 삶을 찬찬히 수첩에 적어 볼까? 둘레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건, 곁에서 누가 큰 목소리로 떠들든, 옆에서 누가 손전화기 꺼내어 영화를 보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시외버스를 탔건, 군내버스를 탔건, 하나도 대수롭지 않다. 나는 내 마음을 기울여서 내 사랑을 글 하나로 갈무리한다. 퍽 시끌벅적한 술집에서조차 시를 쓴다. 그래, 시는 이렇게 태어나는구나. 어디에 내 몸을 깃들이더라도, 내가 시골숲 누리는 사랑을 떠올릴 수 있어야 비로소 시 한 자락 태어나는구나.
수첩에 깨작깨작 적바림한 시 한 자락을 정갈한 종이 하나 꺼내어 차근차근 정갈한 손글씨로 옮겨적는다. 그러고는 내가 좋아하는 이웃한테 살며시 내민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기쁘며 즐거운 선물인, 시쓰기이다. 4346.1.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