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언젠가 옆지기가 ‘아이들한테 속 깊은 이야기를 슬기롭게 물을’ 수 있으면, 아이들은 꾸밈없이 환한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말했다. 나는 아직 아이들한테 속 깊은 이야기를 슬기롭게 묻지 못한다고 느낀다. 어쩌면, 이런 대목은 생각조차 안 하며 살아오지 않았을까.
저녁 아홉 시가 넘어가고 열 시에 이르면서 몸이 고단해 먼저 잠자리에 드러눕는다. 아이 둘 모두 잠들 낌새가 안 보인다. 아니, 두 아이 모두 졸려 하기는 하지만 자려고 않는다. 큰아이는 잠자리에 공을 들고 와서 주고받기 놀이를 하잖다. 나는 누운 채 공을 받아서 되던지며 함께 논다. 이러다가 아이랑 뒹굴며 슬쩍 물어 본다. “하늘에는 뭐가 있어?” “타요.” “쳇.” 다섯 살 큰아이가 ‘타요’라는 만화영화 보여 달라는 뜻으로 엉뚱한 말을 한다. 그러나, 언젠가 큰아이가 본 만화영화에서 ‘타요’가 하늘을 날았을는지 모른다. 다시 아이한테 묻는다. “하늘에는 뭐가 있을까?” “구름. 하늘에는 구름 있어.” “그러면 구름 속에는 뭐가 있어?” “씨.” “씨? 왜 씨가 있을까? 그러면 씨 속에는 뭐가 있어?” “씨. 씨 속에는 작은 씨가 있지.” 큰아이는 ‘뼈’라는 낱말을 아직 안 쓴다. 물고기를 먹을 적에 나오는 가시 또는 뼈를 ‘씨’라고 가리킨다. 어찌 보면 아예 틀린 생각은 아니다. 왜냐하면, 열매를 먹을 때 속에 나오는 것이 ‘씨’이듯, 물고기 속에 있는 뼈도 ‘씨’라 할 만하다. 아이가 ‘씨’라는 말을 할 적마다, 난 이 낱말 ‘씨’에 더 깊고 너른 느낌과 이야기가 있다고 새삼스레 느낀다. “벼리 마음속에는 뭐가 있어?” “씨.” “쳇. 씨는 벼리 몸속에 있잖아.” “음, 벼리 마음속에는 하느님 있어.” “하느님은 어떤 사람이야?” “공부하는 사람. 연필로 ‘사·름·벼·리’라고 써.” 하느님이 공부하는 사람인가 하고 헤아려 본다. 그럴 수 있으리라. 슬쩍 “아버지 마음속에는 뭐가 있어?” 하고 묻는데, 아이는 “몰라.” 하고만 말한다. 그런가. 그러려나. 내 마음속에는 아직 아무것 없나. “흥. 아버지 마음속에는 꿈이 있어.” 하고 말하고는 큰아이를 옆에 누이고 한참 노래를 부르며 논다. 이러다가, 옆방에서 칭얼거리기만 하는 작은아이를 안아 기저귀를 채운 다음 내 옆에 누이며 노래부르기를 잇는다. 노래를 대여섯 가락쯤 부를 무렵 작은아이는 새근새근 잠들고, 큰아이는 스무 가락 남짓 노래를 부르자 코코 잠든다. 큰아이 잠드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나도 비로소 마음을 폭 놓고 느긋하게 잠든다. 4345.12.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