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야기 찔레꽃 울타리
질 바클렘 지음, 이연향 옮김 / 마루벌 / 1994년 10월
평점 :
절판


 


 사람이 살아갈 보금자리는 숲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10] 질 바클렘, 《찔레꽃울타리, 봄 이야기》(마루벌,1994)

 


  시골집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아가면 온통 들과 메와 못입니다. 해창만을 메워 들로 만들기 앞서 이곳은 바다였을 테니, 예전 사람들은 이 마을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아가는 길에 너른 바다를 누렸으리라 생각합니다.


  고흥 읍내로 가 보면, 이곳에도 아파트가 조금 있습니다. 가게가 제법 있고 사람도 퍽 있습니다. 면소재지에 가 보면, 조그마한 아파트가 있거나 아파트 비슷한 작은 빌라가 있습니다.


  도시를 생각해 봅니다. 도시에서는 어디를 가나 아파트이고, 아파트 없는 데에는 빌라입니다. 도시에서 단독주택을 만나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달동네라면 모를까, 또는 마당 딸린 부잣집 있는 동네라면 모를까, 도시사람은 이웃을 발밑에 두거나 머리 위에 두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촘촘히 모인 도시에서는 땅뙈기 한 평 장만해서 살아가기란 몹시 힘겹습니다. 도시사람은 누구나 ‘내 집 장만’을 꿈꾼다 하지만, 막상 도시에서는 ‘내 집’이라 할 만한 데는 거의 없다고 느껴요. 하늘에 붕 뜬 시멘트덩어리가 ‘내 집’이 될 수 없거든요. 오늘은 그곳에서 숨을 쉰다 하더라도 모레나 글피에는 이 시멘트덩어리가 허물어질 수 있어요. 아니, 하늘에 붕 뜬 시멘트덩어리는 쉰 해조차 버티지 못해요. 백 해나 이백 해를 내다보며 짓는 아파트는 하나도 없어요.


  돌이켜보면, 도시에서 짓는 모든 집과 건물은 백 해는커녕 쉰 해조차 버티지 못합니다. 무척 튼튼하거나 우람하다 싶게 이것저것 짓거나 세운다 하더라도 고작 쉰 해만 지나더라도 부질없는 먼지덩어리라고 느껴요. 땅을 밟지 않는 집이라면, 흙을 디딜 수 없는 건물이라면, 숲과 어우러지지 못하는 문명이라면, 모두 얼마 안 지나 한 줌 잿더미로 바뀌리라 느껴요. 나무 한 그루 심을 수 없을 때에는 집일 수 없다고 느껴요. 내 나무를 심고, 아이들 나무가 자라며, 마을나무가 곱게 설 때라야 비로소 사랑스러운 보금자리가 되리라 느껴요.


  그런데, 요즈음 사람들은 ‘사람 목숨이 기껏 백 살’이라고 여겨요. 기껏 백 살을 살아가는데 ‘땅 밟고 흙 디디는 집’이 무어 대수로운가 하고 여기는구나 싶어요. 고작 백 살쯤 살다가 죽을 생각을 하기에, 시멘트덩어리로 짓는 집이라 하든, 나무 한 그루 못 심는 집이든, 하늘에 붕 뜬 집이든,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는구나 싶어요. 더 빨리 돈을 벌거나 더 많이 돈을 버는 데에만 마음을 기울이고 말아요.


.. 마타리 부부는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떡갈나무 성에서 살아요. 겉에서 보기엔 평범한 떡갈나무 같지만 텅 빈 기둥 안이, 아주 아름다운 방들로 꽉 찬 훌륭한 성이랍니다 ..  (12쪽)

 


  시골마을 어르신들이 나락을 거두고 마늘을 심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이웃마을에서는 바닷물고기를 낚고, 김과 미역과 매생이를 돌봅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우리 마을이나 이웃한 마을에서 지내는 분들 스스로 먹고 누릴 만한 먹을거리를 헤아린다면, 땅은 아주 조금만 부쳐도 되고, 바닷일 또한 아주 조금만 해도 돼요. 내다 팔아서 돈을 만들고, 돈을 만들어 살림을 북돋운다고 여기기에 땅을 더 넓게 부치고, 바닷일은 더 많이 꾀해요.


  그런데, 시골에서도 돈은 얼마나 많이 벌어야 시골살이를 이룰까요. 시골사람은 시골에서 땅과 바다와 뻘을 얼마나 삭삭 훑거나 긁어야 밥벌이를 할 만할까요.


  도시가 있기에 시골사람은 곡식과 물고기와 갯것을 내다 팔 수 있습니다. 도시사람은 스스로 흙을 일구지 않으니까, 곡식도 물고기도 갯것도 푸성귀도 모두 사다 먹습니다. 화학비료를 친 곡식이나 푸성귀이든, 똥오줌 거름으로 지은 곡식이나 푸성귀이든, 도시사람으로서는 돈을 주고 사다 먹을밖에 없습니다. 어느 모로 보면, 도시가 없으면 시골사람도 ‘밥벌이를 못한다’ 할 만해요.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살찌우는 살림살이일까 궁금해요. 도시사람은 흙 한 줌 만질 일 없고 땅 한 뙈기 밟을 일 없이 돈만 벌어서 사다 먹기만 해도 될까 궁금해요. 시골사람은 흙을 늘 만지고 땅을 언제나 밟는다지만, 도시사람 먹을거리를 대주느라 등허리가 휘도록 일에 시달려야 할까 궁금해요.


  무엇을 하려고 돈을 벌어야 할까요. 자가용을 굴리려고? 아파트를 사려고? 손전화 기계를 쓰려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영화를 보려고? 나라밖 여행을 다녀오려고? 책을 사서 읽으려고? 이름난 맛집에 가려고? 이름있는 옷을 입으려고?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야 하고, 아이들이 대학교에 가야 하니까, 이래저래 돈을 벌어야 하나요? 아이들을 회사원이나 공무원으로 만들려고 돈을 벌어야 하나요?


  오늘날 대학등록금이 한 해 천만 원이라 하는데, 유치원 보내는 삯도 한 해에 오백만 원 가볍게 들어요. 아이 하나마다 어릴 적부터 한 해에 오백만 원이나 천만 원쯤 우습게 쓴다는 한국 사회가 되었어요. 그러니까, 참말 왜 아이 하나에 해마다 거의 천만 원이나 들여 학교에 보내거나 학원에 보내거나 해야 하나요? 어버이들은 왜 이런 돈을 벌려고 고되게 등허리가 휘어야 할까요.


  대학등록금 천만 원을 벌어서 아이들을 대학교에 보내야 할까 궁금해요. 아이들을 대학교에 안 보내고 등록금 천만 원을 안 벌면 되지 않을까 궁금해요. 등록금 벌려고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으로 지내기보다, 시골집에서 ‘내 먹을거리’를 손수 일구면 한 해 삶이 온통 웃음과 즐거움이 되지 않을까 궁금해요. 써야 할 돈을 버느라 삶을 흘릴 노릇이 아니고, 누려야 할 삶을 누리려고 하루를 빛낼 노릇이지 싶어요.


.. 드디어 먼 숲 뒤로 해가 기울고, 쌀쌀한 바람이 들판 위로 불어 옵니다. 집에 갈 시간이 된 것입니다. 그날 밤, 달님이 높이 떠올랐을 때 찔레꽃울타리 마을은 고요하고 평화로웠습니다. 들쥐들은 이제 깊은 잠에 빠져듭니다 ..  (32쪽)

 


  질 바클렘 님이 빚은 그림책 《찔레꽃울타리, 봄 이야기》(마루벌,1994)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사람이 살아갈 보금자리는 숲이라고 느낍니다. 사람이 보금자리로 삼을 곳은 아파트가 될 수 없고, 사람이 사람다이 지낼 터로는 도시가 될 수 없다고 느낍니다. 흙 한 줌이 풀포기를 키우고 꽃송이를 낳는 아름다움을 누리지 못하는 아파트와 도시는 어느 누구한테도 보금자리가 될 만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누워서 잠을 잘 수 있는 데가 보금자리이지 않아요. 공부할 방이 있다든지 마루에 텔레비전이 놓인다든지 하는 데가 집이지 않아요. 폭신한 걸상을 놓고 널찍한 침대를 놓으며 커다란 옷장이 있는 데가 집일까 알쏭달쏭해요.


  집이란, 삶을 이루는 곳이요, 보금자리란, 삶을 누리는 곳이라고 느껴요. 마을이란, 나와 이웃이 예쁘게 어우러지는 즐거운 터전이라고 느껴요. ‘나라’라고 한다면, 경제성장율이라든지 무슨무슨 숫자와 통계로 따지는 쳇바퀴나 톱니바퀴가 아니라, 보금자리가 모여 마을을 이루도록 이끄는 조그마한 ‘꽃울타리’쯤 되는 그림이라고 느껴요.


  경찰도 군대도 공무원도 법관도 부질없어요. 국회의원도 시장도 군수도 덧없어요. 병원도 보건소도 진료소도 쓸모없어요. 공장도 발전소도 놀이공원도 쓸데없어요. 사람이 살아갈 때에 곁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봐요. 이른바 ‘외딴섬에서 살아간다’고 헤아려 보셔요. 외딴섬에서 우리는 어떤 연장을 갖고 어떤 일을 하며 어떤 삶을 누릴 때에 즐거울까 하고 떠올려 보셔요.


  시골마을 논밭에는 고속도로도 국도도 건널목도 신호등도 있을 까닭이 없어요. 교통순경도 경찰도 형사도 있을 까닭이 없어요. 법이 있어야 농사를 짓는 사람은 없어요. 법을 몰라도 즐거이 나락을 일구고 바닷물고기를 낚어요. 대학교 졸업장으로 감을 따는 사람은 없어요. 토익점수를 내밀며 냉이를 캐는 사람은 없어요. 김을 매고 마늘을 심는데 군인이 총을 들 까닭이 없어요. 스스로 흙을 일구는 삶이라면 군대도 정치도 경제도 있을 까닭이 없어요. 있어야 한다면 두레일꾼이 있어야겠지요. 있어야 한다면, 너른 들판을 뛰놀 아이들이 있어야겠지요.


  숲에서는 숲만 있으면 돼요. 숲에 깃드는 사람한테는 사랑 하나 있으면 돼요. 사랑스레 나무를 어루만지고, 사랑스레 풀을 뜯으며, 사랑스레 집을 짓고 살아요. 자동차도 비행기도 기차도 쓸 일이 없어요. 두 다리로 숲을 거닐면 넉넉해요. 온몸으로 바람을 누려요. 온마음으로 숲내음을 맡아요.


  가을날 아침에 나무줄기에 볼을 가만히 대 보셔요. 가을볕 받는 나무마다 따사로운 숨결을 나한테 나누어 줘요. 멧새가 노래하고, 바닷물결이 춤추며, 구름이 하늘을 예쁘게 그려요. (4345.11.15.나무.ㅎㄲㅅㄱ)

 


― 찔레꽃울타리, 봄 이야기 (질 바클렘 글·그림,이연향 옮김,마루벌 펴냄,1994.10.1/1만 원)

 

(최종규 . 2012 - 그림책 읽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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