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41) 야생의 2 : 야생의 땅

 

25명쯤 되는 우리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의 어느 강가에 있는 야생의 땅에 모였다
《아르네 네스와 네 사람/이한중 옮김-산처럼 생각하라》(소동,2012) 171쪽

 

  “뉴사우스웨일스 주의 어느 강가에 있는”은 “뉴사우스웨일스 주 어느 강가에 있는”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이 보기글에서는 “뉴사우스웨일스 주의 어느 강가의”처럼 적었을는지 모릅니다. 곧, 앞과 뒤 모두 토씨 ‘-의’를 적었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뒤에는 토씨 ‘-의’를 안 넣었어요. 이 흐름을 잘 살피면, 보기글 앞쪽에도 토씨 ‘-의’ 없이 말끔하게 적을 수 있어요.


  차근차근 생각하면 ‘강가’나 ‘냇가’나 ‘물가’나 ‘바닷가’처럼 적을 수 있어요. 차근차근 생각하지 않으면 ‘강변(江邊)’이나 ‘천변(川邊)’이나 ‘해변(海邊)’처럼 적을 테고요.

 

 야생의 땅에 모였다
→ 들판에 모였다
→ 들녘에 모였다
→ 들에 모였다
 …

 

  글쓴이는 “야생지(-地)”나 “야생의 지(地)”라고 써서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다고 여겼기에 “야생의 땅”이라 적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가만히 보면, “야생의 소년”이나 “야생의 사상”처럼 으레 ‘-의’를 붙인 ‘야생 + 의’ 꼴을 쓰는구나 싶어요. ‘야생’이 “들에서 자라는”을 뜻하기에 ‘들’을 가리키는 앞가지 구실을 하는 줄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야생의 땅”을 한국말로 적자면 ‘들땅’이 되는데, 들을 가리켜 ‘들땅’이라 하거나, 산을 가리켜 ‘산땅’이라 하지는 않아요. 그냥 ‘들’이라 하고 ‘산’이라 해요. 곧, 이 보기글에서는 “들에 모였다”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느낌과 뜻을 살피면서 ‘들판’이라 적을 수 있고, ‘들녘’이라 적어도 됩니다. ‘숲’이나 ‘풀숲’이라 적을 수 있겠지요. 어떤 들인가를 생각해 보면, “너른 들”이나 “조용한 들”이나 “예쁜 들”이라 적어도 잘 어울려요.


  생각을 할 때에 비로소 말이 말답습니다. (4345.8.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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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사람쯤 되는 우리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 어느 냇가에 있는 들에 모였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869) 야생의 1 : 야생의 말

 

진정한 용사만이 야생의 말을 탈 수 있다는 건 알고 있겠지? 용기가 없다면 모두 돌아가도 좋아
《류은-바람드리의 라무》(바람의아이들,2009) 107쪽

 

  ‘진정(眞正)한’은 ‘참된’으로 다듬습니다. “탈 수 있다는 건”은 “탈 수 있는 줄은”으로 손봅니다. “용기(勇氣)가 없다면”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씩씩하지 않다면”으로 손질해 보아도 됩니다. “알고 있겠지”는 “알겠지”로 손질합니다.


  ‘야생(野生)’은 “산이나 들에서 저절로 나서 자람”을 뜻한다고 해요. 국어사전에는 “야생 약초”나 “그는 야생의 짐승처럼 성질이 거칠었다” 같은 보기글이 실립니다. 그러니까, “야생 약초”는 “들약풀”이나 “들풀”이라는 소리이고, “야생의 짐승”은 “들짐승”이라는 소리예요.

 

 야생의 말을
→ 야생마를
→ 들말을
→ 들판에서 뛰노는 말을
→ 들에서 자라는 말을
 …

 

  여러 해 앞서 《야생초 편지》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무척 사랑받으며 앞으로도 널리 사랑받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이 책은 이름이 알맞지 않게 붙었구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퍽 드뭅니다. “야생에서 자라는 초”라 하여 ‘야생초’라 했을 텐데, 스스로 여느 사회 바깥에서 조용히 지내고자 하는 매무새라 한다면 ‘들풀’이라고 해야 올바르다고 느낍니다. “야생에서 자라는 초”가 아니라 “들에서 자라는 풀”일 테니까요.


  이와 비슷하게 ‘야생화’이니 ‘야생의 꽃’이니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또한 올바르지 않은 말마디입니다. 들에서 자라는 꽃은 ‘들꽃’입니다. 우리가 일본사람처럼 “野生の花”라고 이야기할 까닭은 없습니다. 그러나 ‘야생’이나 ‘야생의’를 붙이는 말투는 나날이 늘기만 할 뿐, 줄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알맞고 올바르게 가다듬으려 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이 엉터리가 되든 뒤죽박죽이 되든 마음을 쏟으려 하지 않습니다.

 

 야생 약초 → 들에서 캔 약풀
 야생의 짐승 → 들짐승

 

  보기글에 나오는 “야생의 말” 같은 말마디는 더없이 얄궂고 안쓰럽습니다. 차라리 ‘야생마’라고 해 주기라도 하지, ‘馬’가 아닌 ‘말’을 써 준다면서 “야생의 말”이라고 하니 그지없이 안 어울립니다. 아니면 ‘야생말’이라 하든지요.


  곰곰이 살폈다면 ‘야생말’이라 하지 않고 ‘들말’이나 ‘들에서 사는 말’이라 했으리라 봅니다. 사람들이 도시처럼 얽매인 곳에서 살지 않고 들판이나 산골처럼 홀가분하게 노닐거나 일하는 곳에서 산다 할 때에는 ‘들사람’이라 하면 되고요.

 

 들꽃 / 들장미 / 들국화 / 들풀 / 들나물 / 들고양이 / 들개 / 들사람

 

  우리 말 앞가지 ‘들-’을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우리 삶을 우리 나름대로 생각하고 되새기면서 나타내며 나눌 말과 글을 예쁘게 헤아려 봅니다. 내 모습을 내 깜냥껏 내 이야기로 풀어낼 빛나는 길을 곱씹어 봅니다. 내가 누리고 아이들이 누릴 기쁜 삶자락을 어떤 손으로 어떻게 일구어 사랑스러운 삶터로 북돋우면 즐거울까 하고 찬찬히 짚어 봅니다.


  집오리가 있고 들오리가 있습니다. 집거위가 있고 들거위가 있습니다. 집고양이와 함께 들고양이가 있으며, 집짐승과 맞물려 들짐승이 있습니다. (4342.11.11.물./4345.8.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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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힘을 쓰는 사람만이 들말을 탈 수 있는 줄 알겠지? 참힘이 없다면 모두 돌아가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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