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찾아온 멧새
[고흥살이 9] 흙을 밟고 누리는 삶 (12.03-18)

 


  엊저녁 빨래한 옷가지를 아침에 마당에 내다 넙니다. 어제는 맑았으나 오늘은 비가 뿌릴는지 모른다고 생각해, 비가 듣는다면 그때까지라도 밖에서 말라 주기를 바랍니다. 처마 밑에 둔 빨래대에 하나하나 널고 집으로 들어옵니다. 이때 마당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봅니다. 멧새 한 마리, 마당가 동백나무 앞에서 무언가 콕콕 쫍니다. 어떤 새일까. 무얼 쫄까. 궁금하니까 살며시 다가서고 싶지만, 궁금하다며 한두 걸음 멧새 쪽으로 다가선다면 금세 알아채고는 포르르 날아갈 테지요.


  마루문을 연 채로 둡니다. 발소리를 죽여 방으로 들어갑니다. 고개만 빼꼼 내놓은 채 바라봅니다. 몸을 낮춰 대청마루에 엎드린 채 멧새가 무얼 하는지 찬찬히 살펴봅니다.


  아직 피어나지 않은 동백꽃 송이 하나 떨구어 쪼나. 어떤 열매 하나를 쪼나.


  열매 하나를 놓고 한참 쪼더니 마당가 꽃밭으로 올라서고, 돌담으로 올라선 다음, 다시 마당으로 내려와 열매를 다시 쫍니다. 멧새는 산초나무 가느다란 가지에 가뿐하게 올라앉고, 이리저리 가볍게 통통 튀듯 마당을 걷습니다. 봄이라 하더라도 새벽이나 이른아침에는 좀 쌀쌀합니다. 멧자락이나 들판에서 살아가는 새들은 깃털을 잔뜩 부풀려 몸을 따스하게 지키겠지요. 겉보기로는 좀 토실해 보이는 새라 하더라도 막상 이 새를 잡아 손에 쥐고 보면 몸피가 아주 작아요.


  멧새가 이리 뛰고 저리 걷는 마당은 시멘트로 발라졌습니다. 이 시멘트 마당은 아이들이 뛰노는 터가 되기도 하고, 돗자리 깔아 해바라기하는 곳이 되기도 합니다. 시멘트로 발리기 앞서는 그저 흙땅이었습니다. 시멘트가 없던 옛날에는 아주 마땅히 흙마당으로 두었을 테고, 그무렵에는 집을 흙집으로 지었을 테며, 어느 길이든 흙길이었어요. 흙길은 시멘트길이나 아스팔트길보다 덜 단단하다 할 텐데, 흙길을 걷고 흙집에서 살던 무렵에는 크고작은 자동차가 오갈 일이 없으니 흙길로 넉넉합니다. 사람도 짐승도 수레도 모두 흙길로 즐거이 다녔어요.


  흙마당에서는 아이들이 넘어져도 무릎이 깨지지 않습니다. 흙마당에서는 아이들이 기거나 뒹굴어도 흙먼지를 툭툭 털면 그만입니다. 흙마당에서는 이런저런 풀도 돋고 이런저런 벌레도 깁니다.


  우리 집 마당으로 찾아온 멧새는 이곳으로 내려앉아 열매를 쪼지 않았더라면 시멘트바닥에 제 발바닥을 댈 일이 없겠지요. 시골에도 전봇대는 많아, 전깃줄이나 시멘트 전봇대에 내려앉기도 할 테지만, 멧새나 들새는 으레 나뭇가지에 앉고 풀섶에 앉습니다. 나뭇가지로 엮은 둥지에서 자고, 나뭇잎 깔린 흙땅에서 몸을 쉽니다.


  모든 목숨은 햇살을 머금고 바람이랑 물을 마시는 흙에서 비롯한다지요. 흙에서 비롯한 목숨은 흙으로 돌아간다지요. 멧새도 들짐승도 사람도 모두 흙에서 비롯하고 흙에서 먹이를 얻으며 흙에서 쉴 터를 누려요. 씨앗은 흙이 품어야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요. 시멘트나 아스팔트 덩이는 씨앗을 품지 않고 뿌리내릴 틈을 내주지 않아요.


  나날이 사람들은 길바닥을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덮습니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덮고는 시멘트와 쇠붙이와 플라스틱을 써서 집을 짓습니다. 흙을 멀리하거나 잊으며 집안에 흙을 들이지 않을 뿐더러 흙을 손으로 만지거나 살갗으로 느끼지 않습니다. 밥도 옷도 집도, 물도 바람도 햇살도, 도시에서는 흙하고 동떨어집니다. 자그마한 연장이나 책걸상 둘레 어디에도 흙먼지가 묻는 일이 없습니다.


  한참 마당을 내다 보다가 문을 닫습니다. 마루문을 닫아도 멧새는 그 자리에서 놉니다. 이제 아침빨래를 하며 새 하루를 열 즈음입니다. 오늘은 바람이 얼마나 불는지 생각하고, 오늘은 식구들과 어떤 이야기를 누리면 좋을는지 헤아립니다. 다섯 살을 맞이한 첫째 아이는 유치원에 가지 않습니다.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 동생하고 함께 놀며 지냅니다. 해가 높이 걸리고 햇살이 맑게 드리우는 한낮, 마을길을 거닐며 이웃집 돌담에 흐드러지는 매화나무 흰 꽃송이를 올려다봅니다. 막 터진 봉우리가 있고 곧 터지려는 봉우리가 있습니다. 살짝 쓰다듬습니다. 코를 대며 냄새를 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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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3-19 05:17   좋아요 0 | URL
파란대문, 그 앞에는 사름벼리가 들고 놀던 파란공, 옆에는 동백나무...집 마당에 동백나무라니, 저 어릴 때엔 도시에 살더라도 집 마당에 꽃나무 있는 것이 예사였는데 이제는 이렇게 드문 일이 되었네요.
이 작은 땅덩이 나라에서도 조금 위쪽 지방과 아래 쪽 지방이 이렇게 다르군요 꽃 핀걸 보니...

숲노래 2012-03-19 08:56   좋아요 0 | URL
이웃집을 보면
꽃이 훨씬 많이
아주 예쁘게 피었어요 ㅠ.ㅜ

우리 집은 볕이 적게 드는
좀 추운 데인가 보더라구요. 이궁~

2012-03-19 05: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2-03-19 08:56   좋아요 0 | URL
다 사람 그림이에요~
아주 멋진 그림이랍니다~
잘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

하늘바람 2012-03-19 20:19   좋아요 0 | URL
서울에는 꽃집에나 가야 꽃을 보는데
참 이쁘네요 멧새도 이쁘구요

숲노래 2012-03-20 06:12   좋아요 0 | URL
서울에서도 골목골목 가만히 살펴보면
예쁜 들꽃이 곳곳에 있으리라 믿어요~

카스피 2012-03-20 22:50   좋아요 0 | URL
사진이 선명하지 않아서 그런데 멧새라고 한다면 참새와 비슷한 종류의 새인가요? 요즘 서울은 참새보기도 참 힘들어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