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내버스 책읽기
읍내마실을 아주 오랜만에 혼자 다녀왔다. 으레 네 식구 함께 다녀오고, 적어도 첫째 아이랑 함께 다녀오는데, 그제는 나 혼자 가방을 꾸려 버스 때에 맞추어 헐레벌떡 달려나갔다.
혼자 다녀오는 길이라 책 한 권 가방에 넣는다. 버스삯 1500원을 치르고 자리에 앉는다. 장날이 아닌 여느 날 한낮에 군내버스를 타면 자리가 널널하다. 한쪽에 느긋하게 앉아 책을 꺼낸다. 구비구비 시골길을 도는 버스 움직임에 맞추어 창가에 기댄다. 덜덜 흔들리지만 책을 읽는다. 깊이 마음을 기울여 읽을 책이 아닌 훌훌 훑을 책이라 어렵잖이 끝까지 읽어낸다. 20분 버스길에 200쪽쯤 읽었나.
모든 책을 똑같이 읽을 수 없다. 어느 책은 스무 쪽을 읽을 때에 20분이 걸릴 테지만, 참말 어느 책은 200쪽을 읽는 데에 20분조차 남아돈다.
20분 만에 200쪽을 읽어치우자니 머리가 좀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린다. 아무리 훑어읽기라 하더라도 ‘훑자고 마음을 기울이’며 읽으니까 힘들기 마련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군내버스에는 아이들이 꽤 많이 탄다. 낮에서 저녁으로 바뀔 무렵, 읍내 중·고등학교 공부를 마친 아이들이 저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니, 모두들 이 버스를 놓치면 집에 못 간다. 그러니, 아이들 학교 마치는 때에는 자리에 앉을 수 없다. 서서 간다.
먹을거리를 장만해서 가득 담은 무거운 가방을 메고 손잡이를 잡으며 생각한다. 이 군내버스를 타고 집과 학교 사이를 오가는 아이들 가운데 책을 펼치는 아이가 있을까. 굳이 종이책을 펼쳐야 책읽기는 아닐 테니까, 버스 창문 바깥으로 펼쳐지는 들판과 멧자락과 바다를 바라보며 삶읽기를 하기도 할 테지. 이 시골 아이들은 집에서 시골마을 아이답게 흙을 만지거나 밟거나 보살피며 살아갈까. 이 아이들 어버이는 시골마을 어른답게 흙을 돌보거나 다루거나 아끼며 살아갈까.
숲 사이를 달리는 버스일 때에는 종이책을 펼치지 못한다. 바닷가를 달리는 버스일 때에는 종이책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파란 빛깔 눈부신 하늘을 느끼는 버스일 때에는 종이책을 살피지 못한다. 푸른 들판과 누런 들판 아리따운 사이를 달리는 버스일 때에는 종이책을 꺼내지 못한다.
도시에서 살아가자면 종이책을 안 읽을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종이로 빚은 책에 서린 나무 내음을 맡는다. 종이로 엮은 책에 담긴 나무들 뿌리내리던 흙 내음을 헤아린다. 종이로 이룬 책에 깃든 나뭇줄기 곱게 받던 햇살조각 꿈꾼다. (4345.2.8.물.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