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 창호종이문 바르기
부엌 창호종이문을 드디어 바른다. 바르고 보면 뚝딱 하고 해치울 만한데 나는 이 일을 여태 미루었다. 부엌 나무문에 붙은 헌 창호종이를 뗀 지 스물닷새쯤 되었으나, 이런저런 일을 치른다는 핑계를 스스로 붙여 이제껏 안 바르며 지냈다.
찌뿌둥한 몸으로 드러누워야 하나 생각하다가, 한 시간 품을 팔자고 다짐한다. 마당가 헛간에서 풀을 꺼내 작은 대야에 담는다. 물을 조금 담아 왼손으로 비빈다. 햇살 드는 대청마루에 몇 분 둔 다음 하얀 천에 풀을 석석 발라 먼저 나무문살에 붙인다. 문고리 자리는 가위로 알맞게 잘라 예쁘게 댄다. 몇 분 기다리고 나서 창호종이를 바른다. 창호종이는 한 장 반 든다.
예전에는 창호종이만 발랐다는데, 이제는 하얀 천을 먼저 바르고 이렇게 창호종이를 붙인단다. 하얀 천은 어떤 천일까. 무슨 천인지는 모르고, 면내 천집에서 ‘창호종이 바를 때에 속에 대는 천’이라고 여쭈어 사 왔다. 마을 어르신들 모두 이렇게 하신다기에 우리도 이리 해 보았다.
속에 천을 한 겹 붙이고 창호종이를 붙이니, 창호종이에 구멍 날 일이 없다. 아이는 부러 구멍내기 놀이를 하지만, 따로 놀이를 않더라도 문을 여닫다가 그만 구멍이 나곤 한다. 천으로 한 겹 대니 어쩌다 손가락이 문살 사이로 쏙 들어가 톡톡 치더라도 구멍이 나지 않는다.
하룻밤 잘 자면 곱게 마르겠지. 이웃집 할머니는 잘 말린 나뭇잎 한두 장을 함께 붙이면 한결 그윽하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러자면 가을날 문을 발랐어야지. 한겨울에 무슨 나뭇잎을 잘 말려 함께 붙이나. 남녘땅 고흥이 안 춥대서 이래저래 미적미적 일을 미룬 셈인가. 낮잠 한 시간을 못 자고 창호종이를 바른 탓에 이듬날은 아침 여덟 시가 넘어서야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그러나, 좋다. 하루쯤 몸을 더 부리거나 굴려도 좋다. 밀린 일 하나 씻어 아주 기쁘고 홀가분하다. (4345.1.5.나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