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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리뷰오브북스 18호
최현진 외 지음,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부 엮음 / 서울리뷰오브북스 / 2025년 6월
평점 :
생각해 봤더니, 0호를 읽은 후 처음으로 읽는 것 같다. 0호가 지난 2021년도에 나왔으니 햇수로만도 5년이 됐다. 독자들에게 잡지 한 번 읽히기가 그렇게 어렵다던데 그래도 지난 5년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잘 나와줬구나 새삼 대견하다 싶다. 잡지 읽을 기회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단 내 손에 들어온 잡지는 읽고 보관해 두는 편이다. 잡지는 왠지 모셔두면 귀한 자료가 될 것 같아서. 잡지는 시대의 표상으로 그 시대를 잘 반영해 주기 때문에 훗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창간호에 대한 집착이 있어 서리북 0호를 아직도 갖고 있다.
책은 워낙에 광범위한 물건이라 읽으면 읽을수록 편중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다 읽을 수 없는 무능력에 빠지게 만든다. 그럴 때 균형을 잡아주고, 독서의 맥을 잡아주는 게 서평 전문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좋긴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상당히 고급지다. 거의 논문 수준 아닌가? 리뷰가 이렇게 고급 져도 되는 걸까, 불만 아닌 불만도 가져보는데 또 이 정도는 돼야 읽을만하지 않을까 이중의 감정도 갖게 된다.
이 번호 제일 먼저 눈여겨보게 됐던 건, <김구용 연구 회고록>(연암서가, 2021)를 읽고 쓴 옥창준 교수의 글이다. 김구용 교수는 국제 정치학 교수로 이용희 교수와 함께 척박했던 우리나라 국제 정치학계를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가 국제 정세를 볼 때 아무래도 서양의 시각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데, 김구용 교수의 노력으로 우리나라 독자적 시각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너무 독자적이어서도 안 되겠지만 적어도 그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오늘날과 같이 불안한 세계정세를 보면서 과연 국제 정세를 논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고 나면 바뀌어 있는 세계의 흐름을 보면서 김구용 교수의 노력이 과연 얼마나 가치가 있는 걸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귀한 사람은 아니었을까 싶다. 올해 타계하셨다고 하는데 고인의 명복을 빈다.
또한 창비에서 나온 <이븐 바투타 여행기 1, 2>에 관해 쓴 최소영 씨의 글도 눈에 띄었다. 이븐 바투타, 이름이 생소하다. (이렇게 긴 이름을 쓰는 사람이 실제로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원래 풀네임이 거의 세 줄에 가까운데 편의상 맨 마지막에 쓰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쓴다고 한다.) 그는 무려 700년 전의 이슬람 사람으로 몽골을 여행하고 쓴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이 나의 관심을 유난히 많이 끌었던 건, 초등학교 때 본 애니메이션 '신드바드의 모험'만큼이나 신비스럽고 예스러운 이국적 이미지 때문일까? 아니면 북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공부하고 유학생 신분으로 타국을 거쳐 남한에 왔다, 90년대 그 엄혹했던 국가보안법을 통과하지 못하고 감옥에서 한 땀, 한 땀 옷을 짜듯 느린 번역했다던 정수일 번역가 때문일까? 아무튼 꽤나 읽고 싶게 만들었다.
또한 '가부장제에 대한 도전으로서의 책의 해체'란 글을 쓴 전가경 씨의 글도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한 10년 전인가? 어느 작가가 책에도 암컷과 수컷이 있다고 해서 제목 한 번 앙큼하다 싶었는데 (난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이이의 글은 출판사에 존재하는 남녀 차별의 문제를 다소 도발적으로 다루었다. 나는 이 글을 읽을 때까지 비교적 출판계는 그런 게 적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약간은 충격적이었다. 또한 전가경 씨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사진작가 저스틴 컬랜드를 소개했고, 컬랜드는 <SCUM Manifesto(1967)>란 책을 제작했는데, 그건 같은 해 밸러리 솔라나스를 오마주 한 것이라고 한다. 밸러리가 누구냐면 당대 미국 미술계를 평정했던 앤디 워홀에게 총상을 입힌 여성 작가라고 한다. 흥미로워서 <SCUM Manifesto(1967)>를 검색해 봤더니 검색이 되지 않는다. 대신 밸러리의 인생을 다룬 전기 소설은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다고 한다. 관심 있는 사람은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그 밖에도 이 번호는 시국이 시국인 만큼 '국가'를 생각해 보는 기획으로 꾸민듯하다.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와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등은 요즘처럼 나라가 어수선할 때 읽어 볼 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라를 안정시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수장을 비롯한 지도자들을 뽑아 줬던만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서로 분열하다 못해 아예 위험한 지경으로 몰아가고 있다. 과연 우리가 이 사람들을 믿어도 되는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결국 나라의 운명을 어느 한 집단에게 맡겨둬도 될까 의문스럽기도 하다. 아는 것이 힘이라 했다. 그러려면 읽어야 하고 그래야 남는다. 더불어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도 겸해서 읽는 것도 좋겠다 싶다. 이 책은 정부의 관료주의 시스템을 고발하고 있다.
김만수 교수의 '뱃사람 신드바드와 짐꾼 신드바드'는 가장 나의 취향을 저격한 글 같다. 그가 교수를 정년 퇴임하면서 그 많은 책들을 분류하고 후배나 제자들에게 나눠주면서 생각하는 바들을 담담하게 에세이로 썼는데 뭔가 뭉클한 느낌마저 갖게 했다. 아직 이런 생각 할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이 앞날을 모르니, 나는 유일하게 가진 게 책밖에 없는데 아직도 책 산다고 구박받는 처지라 그런가? 이젠 책을 좀 덜 사고, 언제 죽더라도 내가 모은 책들은 내가 처리하고 죽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가족들에게 이것을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는 건 너무 미안한 일 아닌가. 내 책들도 좀 불쌍하고. 그래서 더 공감하면서 읽었다.
더워서 그런지 아직 못다 읽은 꼭지가 몇 있다. 이제 8월. 여름을 보내려면 아직 지나 온 시간만큼이나 앞으로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 안에 나머지 글을 읽어 보련다. 또 그렇게 읽다 보면 볼만한 어느새 여름은 저만치 가 있고 '서리북 가을호'가 나와있겠지. 꽤 괜찮은 잡지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