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영화를 예전만큼 보지 않는다. 이 영화는 내가 가입되어 있는 TV에서 볼 수 있는 영화다. 그것도 무려 무료로. 하지만 난 오랫동안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요즘 내가 속한 온라인 독서 모임에 이달과 다음 달까지 정병준의 <김규

식과 그의 시대> 전권을 읽기로 했는데, 1권 말미에 중국의 신해혁명에 대해서 나온다.그러자 마음이 동했다. 혁명에 대한 설명 보단 1900년 초 우리가 알만한 독립운동 지사들이 중국에 망명한 건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러면서 그들 대부분이 중국의 신해혁명을 가담했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보고 알았다. 


그런데 이 영화 안 밨으면 큰 일 날 뻔했다. 무슨 영화가 혁명을 다루었음에도 이렇게 장엄하고 우아한지! 청조 시대를 막을 내리고 새로운 총통을 세우기 위한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당시 우리나라도 임시정부를 꾸려가며 무능했던 이씨 조선을 마감하고 대통령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있었기에 그 어느 때보다 이 혁명이 성공하게 되길 바랐을 것이다. 그러면서 거기서 뭐라도 배울 요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영화는 그저 맛보기 정도일뿐이고, 보고났더니 오히려 머리속만 더 산란해졌다. 무엇보다 영화는 쑨원이 민주적인 방식으로 초대 총통이 됐지만 그것을 과감히 거부한 것으로 나온다. 그것은 역사적으로도 맞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민주적인 방식으로 총통을 세웠다면 성공한 거 아닌가? 하지만 실패했다고 한다. 게다가 나래이션과 자막엔 쑨원의 정신을 중국 공산당이 이어 갔다나 뭐라나. 아무리 나의 나라라지만 어떻게 중국이 쑨원의 이 민주적인 정신을 이어 갔다고 할 수 있을까?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이 영화는 지난 2012년에 성룡의 100번째 영화고, 장리와 공동으로 연출을 했다고 한다. 그것도 300억을 들여. 그동안 성룡은 무협 영화 전문 배우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고 출연할 생각을 했는지 그동안 영화 짬밥 그냥 먹은 게 아니구나 했다. 여기선 쑨원의 친구 황싱으로 나온다. 중국 영화는 별로 아는 게 없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공리나 유덕화, 주윤발 기타 등등의 배우는 정확히 중국인지, 대만인지, 홍콩인지 잘 구분이 안 간다. 그냥 뭉뚱그려 중국 배우라고 해도 되는건지도 모르겠고. 영화가 언뜻보면 영국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모르긴 해도 감독이 영국 유학파는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참, 여기에 청조시대 마지막 태후와 그녀의 철부지 어린 아들이 나오는데 그가 마지막 황제 푸이임을 짐작케 한다. 그러니까 오래 전에 보았던 <마지막 황제>가 생각나는 건 덤이다.  

이 방면의 책들 몇권 소개하고 가련다.

저 두번째 펄벅 여사의 책은 어떨지 모르겠다. 무슨 어린이 책 같기도 하고. 그냥 유명해서 한 번 끼워넣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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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6-02-28 21: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수박 겉 핥아보신 적 있나요.
우리가 중고등학교때 세계사에서 배운 신해혁명, 손문(쑨원)이 마치 그런 모습입니다.
중국 건국의 아버지, 삼민주의로 포장된 쑨원은 우리가 생각하는 중국의 백범 김구선생
쯤으로 자애로운, 위대한 인물로 생각하기 쉬운데 한마디로 아니올씨다 입니다.

쑨원과 신해혁명이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것은
뜻밖에도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투쟁 역량이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던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일제 만주점령 전, 간도에 있었던 독립군의정서나 청산리전투, 봉오동전투와 같은
대규모 집단투쟁의 역량이 멸실되어
불가피하게 약산 김원봉의 의열단처럼 요인 암살 같은 투쟁으로 전환되게 됩니다.
조선, 중국 공동의 적이 된 일본군과 싸우는 것이
조선독립을 위한 해방 전쟁으로 받아 들여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신해혁명에 참여하고
나중에는 조선의용대로 대일본전투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본 쑨원과 신해혁명은 우리 독립운동가들 관련 책을 읽다가
역으로 조감된 모습입니다.
생각나는대로 몇권 추천해드리니 혹시 시간 나시거든 한번 읽어보세요.

*아이링, 칭링, 메이링-장융(까치)
*조선에서 온 붉은 승려-정찬주(김영사)
*운암 김성숙-김삼웅(도서출판 선인)
*아리랑-님 웨일즈, 김산(동녁)
*중국인이야기 전10권-김명호(한길사)

추가)
댓글로 오류라고 지적해주셔서 첨언합니다.
˝일제 만주점령 전, 간도에 있었던 독립군의정서나 청산리전투, 봉오동전투와 같은
대규모 집단투쟁의 역량이 멸실되어˝라고 적고 있습니다.
니르바나가 이야기하려고 한 것은 위에 적었듯이 추천서의 독립운동가 김성숙이나 김산이 왜 뜬금없이 남의 나라인 중국의 신해혁명에 참가했는가를 역으로 조감해서 신해혁명을 살펴본 것입니다.
오해없으시기 바랍니다.


stella.K 2026-02-27 11:53   좋아요 1 | URL
니르바나님은 분명 책을 많이 읽으셔서 눈의 노화가 일찍 온 것 같습니다. 저 소개해 주신 책 니르바나님은 다 읽으신 것 아닙니까? 이제 쉬엄쉬엄 읽으라고 신호 보내는 겁니다. 젊었을 때 많이 읽으셨니. ㅎㅎ 역시 독립은 한 나라의 일에만 국한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다 국제관계에 얽혀 있겠죠? 한 인물을 보는 시각도 다 다르겠죠. 우린 안중근을 영웅으로 보지만 일본은 원수처럼 보겠죠. 제가 수박을 겉핥고 있습니다. 가르침 좀 더 주십시오! 아리랑은 오래 전에 사 놨는데 내친김에 읽어봐야겠습니다. 목록 감사합니다.^^

카스피 2026-02-27 19: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의 글에 약간 오류가 있으셔서 글을 올립니다.니르바나님은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투쟁 역량이 일본의 만주점령 후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던 것과 관련..만주점령후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신해혁명에 참여하고 적으셨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만주 점령은 1931년부터 시작되었고 손문의 신해혁명은 1911년에 일어났으니 시간상 성립되기 어렵지요.물론 실제 신해혁명에 한국의 독립지사들이 참여한 것은 사실입니다.당시 독립운동가들은 중국의 혁명이 성공해야 조선의 독립도 가능하다는 생각(당시 청 조정은 친일적 성격이 있다고 판단함)으로 신규식 선생은 직접 한구 전투에 참여했으며 김규식 조소앙 같은 지사들도 신해혁명을 지원했습니다.그결과 신규식 선생은 손문,황홍,진기마등 중국 혁명 지도부와 의형제를 맺을 정도였고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국민당 지도부의 많은 도움을 받게 됩니다.
혹시 스텔라님이 한국인의 신해혁명과 연관된 내용을 더 알고 싶으시다면 아래와 같은 책들을 권해 드립니다.
-신규식: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춧돌
-예관 신규식 평전
--박은식 신규식:한국통사 한국의 혼
-신해혁명:흔들리는 중국
-한국 독립운동사의 재조명

stella.K 2026-02-27 19:55   좋아요 0 | URL
오, 그렇군요. 영화가 워낙 인상적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우리나라 독립지사들이 참여해서 그런지 신해혁명에 대해 알고 싶어지더라고요. 알려주신 목록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yamoo 2026-02-27 1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해혁명에 관한 영화라....
꼭 찾아서 보겠습니다. 리뷰를 보니 꼭 봐야할듯해요. 근대사에 관한 영화는 보는 의미가 있읍죠^^

stella.K 2026-02-27 20:06   좋아요 0 | URL
네. 영상이 좋더라고요. 야무님도 보시면 만족하실 겁니다.
근데 역사적으로 보시지 마시고 영화적으로 보셔야합니다. ㅋ
혹시 <마지막 황제> 안 보셨으면 그것도 한번 보시고요.^^
 

        


처음 이 드라마 봤을 때 안 봤으면 후회할 뻔했다고 생각했다. 프랑스 드라마 'La Mante'이 원작이라는데 여러모로 화제성이 있어 보이긴 한다. 무엇보다 변영주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오래 전부터 영화 감독이 tv 드라마 연출을 하는 경우가 종종있기는한데 변영주 감독도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될 거라곤 생각 못했다. 게다가 고현정이 주인공 정이신 역을 맡았다. 다른 주요 배역도 그렇긴 하지만 고현정이 정이신의 23년 전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왔다갔다 한다. 뭐 AI 덕분(?)으로 23년 전 모습과 현재의 모습의 완벽하게 구사하게 가능하게 된 모양이다, 어쨌든 난 고현정이 카메라 앞에서 당당하게 늙은 모습을 연기해 주는 것이 좋았다. 

난 영화 <양들의 침묵>을 보지 못했지만 드라마의 흐름은 얼핏 그 영화를 연상하게 한다. 수위 조절은 어느 정도 해서 실제로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또 그런만큼 연상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모처럼 몰입감이 좋아 보긴 한다. 장르는 연쇄 살인 사건 미스터리 수사물이 되시겠다. 마지막까지 누가 범인인지 또한 사건의 원인 제공자가 누군지 모르는 의외성도 나름 나쁘지 않다. 그런데 마지막회를 보자 그 좋던 느낌이 싹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고, 우리나라 드라마도 끝까지 봐야 그 진가를 알 수가 있다. 

8부작이라고 해서 여느 드라마에 비하면 너무 짧다 싶었다. 아무래도 영화 감독이 만든 작품이니까 관례를 벗어나도 괜찮지 싶었다. 그런데 웬걸, 원작은 6부작이다. 그걸 8부작으로 늘려 놓았다. 근데 마지막회를 보니 쓸데없이 늘려 놓은 거구나 싶다. 원작처럼 그냥 6부작으로 하지 싶다. 무엇보다, 모르긴 해도 원작에는 없을 것 같은 내용이 있다. 근데 그 내용이 유쾌하지 않다. 최근 몇 편의 드라마가 기독교를 조롱하고 폄하하는 내용을 해서 교회로부터 눈총을 샀던 것으로 안다.이 작품 역시 그렇다. 정말 마지막회를 보면 다된 죽에 코를 빠뜨렸다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 드라마 다시 복기해 보면 단순히 기독교를 조롱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탄 숭배적이다. 게다가 이 드라마의 엔딩은 시즌 2로 돌아 올 것을 예견하게 하고 끝나는데 얼핏 보기엔 연쇄 살인마 정이신이 본격적으로 활동할 것을 예감하지만 그녀가 마치 정의를 실현할 것처럼 한다는 것이다. 사탄이 정의를 실현할 수 있나? 성경에 보면 사탄은 속이고, 죽이고, 빼앗는 영으로 나와있다. 아무리 드라마고 모든 상상력은 가능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런 식으로 분별력을 호도시키는 건 별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다시 말하면 드라마의 수위가 여기까지 왔다. 정이신은 그저 악마에 사로잡힌 영혼일뿐이다. 

얼마 전, AI가 만든 단편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누가 만들었는지 기억조차도 나지 않지만 그 내용은 좀 황당하기 그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도깨비 이야기를 끄집어내서 마치 그 도깨비가 우리나라 일제를 청산하고 역사를 지켰던 것으로 묘사를 하는데 어이가 없었다. 뭐 그만큼 우리의 것은 좋은 것이란 일종의 국뽕을 강조하려고 하는 의도로 보이는데 우리나라를 지킨 건 그런 허탄한 도깨비 신화가 아니다. 기독교다. 그런 역사 의식도 없이 재미만을 위해 단편영화를 만들겠다고? 그래놓고 K-드러마, K- 무비에 묻어 가겠다고? 정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현깃증이 난다. 그렇게 따지면 볼 드라마나 영화가 없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안일한 생각 가지고 보다 신선 놀음에 도끼자루 썪는 줄 모르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분별력은 가질 필요가 있고, 제작측도 좀 책임감을 가지고 드라마를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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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2-24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거 보다 말았습니다. 좀 뭐랄까 기분이 나쁘달까..
어쨌거나 처음에는 좀 볼만했는데 회자가 지날수록 흥미도가 급격히 떨어지더라구요...
같은 시기에 넷플에 드라마와 영화가 동시에 같은 제목으로 올라와서 헷갈렸습니다. 영화도 사마귀 재미없더라구요...ㅎㅎ

그나저나 왤케 뜸하십니까?!!

stella.K 2026-02-24 15:33   좋아요 0 | URL
ㅎㅎㅎ 역시 저를 기다려 주시는 분은 야무님 밖에 없으시군요! 흐흑~ 재미는 있는데 그 속에 숨겨있는 사상이 참 가관이더군요. 이런 걸 가려서 볼 줄 알아야 하는데 참 걱정입니다. 재미만 있으면됐지 뭣이 중헌디 하면 답이 없구요. 맞아요. 영화도 있더라구요. 같은 내용인지 다른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별로 볼 생각이 없네요. 잘 지내시죠?^^

니르바나 2026-02-25 1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일에 인사드릴 때만 해도 없던 글이 갑자기 짠하고 나타났네요.
스텔라님이 드라마나 영화를 언급해주시면 급 땡기게 됩니다.
평상시 드라마를 보지 않고 사는 니르바나도 한번 찾아봐야겠구나 하구요.

영화 <양들의 침묵>은 재미있게 봤어요.
안소니 홉킨스, 조디 포스터가 연기하는 영화 좋아하거든요.
스텔라님, 이 영화 안보셨다니 한번 찾아보세요.

stella.K 2026-02-25 20:05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안소니 홉킨스를 좋아해서 한때 알려진 영화는 부지런히 본 것 같은데
이 영화만 못 봤어요. 제가 공포나 호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보려면 볼 수도 있는데. 조디 포스터도 좋아하는데. 함 보겠습니다.^^
 
결국 옳았던 그들의 황당한 주장 - 과학사를 바꾼 위대한 이단아들의 이야기
이경민 지음 / 닥터지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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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창 시절부터 과포자다. 지금도 과학 얘기만 나오면 뇌가 뻣뻣해짐을 느낀다. 언제부턴가 과학 대중서가 심심찮게 나와도 거들떠 볼 생각도 안 한다. 나 좋아하는 분야(문학)의 책만 봐도 못 다 읽을 판에 새삼 무슨 과학인가 싶은 것이다. 무슨 책을 골라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한마디로 과학사에 관한 책이다. 우리가 익히 들어 본 학설이 어떻게 탄생했으며, 학설로 인정받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겪었고, 누구에게 전수되어 인류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평이한 문체로 썼다. 


제목부터 확 끌린다. 뭔가 모순어법이다. 지금은 당연하다 못해 진리처럼 받아들여진 학설들이 처음 나왔을 때는 하나같이 황당하다며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을 흥미롭게 펼쳐간다. 가장 흥미롭고도 마음이 찡했던 건, 지금은 의사들 누구나 수술 전 손을 깨끗하게 씻어야 한다는 것은 습관처럼 굳어진 거지만 19세기만 하더라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의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애썼던 사람은 헝가리 산부인과 의사 이그나츠 제멜바이스라는 사람이었다. 당시 산모들이 건강하게 아이를 출산해도 며칠 내로 산욕열로 죽는 사례가 빈번했다. 그런데 어느 산과 병동은 그 비율이 낮았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뭘까를 추적하다 의사들이 손을 씻지 않고 수술을 하고 있었고 거기서 발생하는 균들이 산모들에게 전염된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그렇다면 원인을 알았으니 손을 씻으면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 아닌가? 하지만 의외로 의사들은 제멜바이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황당하게도 말이다. 하지만 당시엔 제멜바이스가 황당한 주장을 한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그렇다면 그렇게 싸우는 사이 산모들은 계속 죽어 나갔다는 말 아닌가? 더 놀라운 건 이 간단한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제멜바이스는 점점 고립되어 갔고 급기야 가족에 의해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까지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건, 그곳 병원 직원들과 제압 당하는 과정에서 손과 팔 등에 상처를 입고 그로부터 2주 후 상처가 감염되어 패혈증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뭔가 상징적이란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당시의 의사들이 제멜바이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태만으로 일관했던 건 그 상대가 산모 즉 여자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만약 남자가 그렇게 죽어 나갔다고 생각해 보라. 당장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그래도 분명 남자들도 의사의 불결한 손 때문에 죽은 사람도 있었을 텐데 어쨌든 사람의 인식 하나를 변화시키는데 이런 희생을 치러야 하다니 황당하긴 하다. 그런데 오늘날도 손을 안 씻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걸 상기하여 볼 때 제멜바이스의 주장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본다. 손 씻기를 생활화합시다!      


그런데 이 책의 표지 그림이 인상적이다. 인상적이다 못해 기괴해 보이기까지 한다. 원숭이 몸에 다윈의 얼굴을 합성시키다니. 하지만 또 자세히 보면 원숭이도 아닌다. 사람의 몸을 원숭이화한 것이고 오직 긴 꼬리만 원숭이 것임을 볼 수가 있다. 결코 웃자고 그려진 그린 그림 같지가 않다. 다윈 하면 진화론 아닌가? 이 그림은 당시 다윈의 주장이 하도 황당하여 그렇다면 인간이 원숭이 후손이냐며 언론이 풍자만화로 조롱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즉 인간이 원숭이의 후손이란 건 애초에 다윈이 주장한 것이 아니라 그의 주장을 깎아내리기 위해 반문했던 것이 와전되어 인간의 조상은 원숭이라 카더라로 변질 굳어진 모양새. 하지만 다윈은 결코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그리고 다윈의 진화론을 황당한 주장으로 몰아갔던 건 기독교의 창조론이었다. 창조론과 진화론이 얼마나 첨예하게 대립했는지 재미있는 건, 1860년 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와 옥스퍼드의 주교 새뮤얼 윌버포스가 이 문제를 가지고 치열하게 싸웠다. 이를테면, 윌버포스가 "당신의 조상이 원숭이라면 할아버지 쪽이 원숭이인가, 아니면 할머니 쪽인가?" 그러자 토머스 헉슬리는 이렇게 맞받아친다. "나는 진리를 왜곡하는 재능 있는 사람의 후손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원숭이의 후손이 되겠다." 오늘날엔 웃지고 하는 소리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당시 얼마나 치열했을지 짐작이 간다. 윌버포스 그 고귀하고 지엄한 어른께서 친히 그런 수고를...?  


내가 기억하는 것만 해도, 80년대까지만 해도 교회에서 진화론을 강하게 비판하거나 조롱했던 것도 사실이다. 인간이 원숭이를 조상으로 여길 만큼 형이하학적인 하찮은 존재인 줄 아냐며. 하나님은 인간을 고귀하게 창조하셨다며. 요즘엔 그렇게까지 대립하지는 않는 것 같다. 오히려 과학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물론 기독교를 비판하는 무신론 과학자도 있지만 신을 믿는 과학자들도 있다. 그들은 과학을 통해 신의 창조섭리를 본다고 한다. 그러니까 너무 치우친 생각을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오늘날엔 아무 문젯거리도 되지 않는 것들이 당시에는 받아들여지기가 너무 힘들었다는 것이다. 이 책이 이 정도라면 과학사를 통틀어 이런 예는 굉장히 많을 것 같다. 그러니 과학이 걸어온 길 역시 순탄 치마는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요즘도 심심찮게 보지만 예전에 옳았던 것이 지금은 그릇된 것으로 또 그 반대로 예전에 잘못된 것들이 옳은 것으로 뒤집히는 경우를 본다. 그러니까 영원히 옳거나 그른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걸 볼 때 과학도 가치중립적인 것 아닌가? 어떤 분야든 논쟁이 그 분야를 발전시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거기에 더 해 좀 더 열린 마음과 자세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럴 때 통합적 사고가 가능할 것이다. 


이 책이 흥미로운 건, 단순히 과학 이론의 역사만을 서술한 것이 아니라 그 이론이 훗날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발전하고 인류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까지도 소개했다는 것이다. 그건 이 짧은 지면에 일일이 다 밝힐 순 없고 일독을 권한다. 무엇보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가슴이 차오르면서 뭔가 명료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과포자라고 하여 미리부터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가능케 해 준 저자와 출판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출판사로부터 증정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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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5-12-29 0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갈릴레오 갈릴레이 이야기도 나오나요? 종교 재판이 끝난 후에 그가 말했다던,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실제로 한 말이 아니거든요. 과학사가 드라마틱하게 되어 있다 보니, 약간 과장되거나 거짓이 섞인 내용이 더러 있어요. ^^

stella.K 2025-12-29 16:48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그런 일이 종종있겠구나 싶더군. 이번에 새로 알게되서 다행이다 싶더군. ^^

니르바나 2025-12-29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포자, 스텔라님께 이런 책 리뷰를 가능케 해 준 저자와 출판사에게 니르바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stella.K 2025-12-29 16:49   좋아요 1 | URL
ㅎㅎ 고맙습니다. 이렇게 저를 또 응원해 주시는군요.^^

페크pek0501 2026-01-01 1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생각보단 얇네요. 흥미로운 내용이 많이 담겼을 것 같습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 본 건데 아리스토텔레스도 여성을 남성에 비해 어떤 점에서 뒤떨어진다고 주장했는데 그것이 2500년간 굳어졌다고 해서 놀랐어요.(기원전에 일어난 일이라서...)
어처구니없어요.^^

stella.K 2026-01-03 21:03   좋아요 1 | URL
와, 2500년이요? 대단하네요. 어떤 건 순식간에 바뀌기도하는데 어떤 건 참 안 바뀌는 게 있어요. 이책 내가 과학자에 관한 책도 읽는단 말야? 하며 읽었던 책이에요. 혹시 언니도 과포자시라면 추천합니다. ㅋㅋ

서곡 2026-01-02 1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요~~

stella.K 2026-01-03 21:03   좋아요 1 | URL
오, 감사합니다. 서곡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한강
장강명 외 지음 / 북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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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쩍 작가들의 앤솔러지 작품집들이 많아진 것 같다. 그런 걸 보면 뭔가 작가들의 활동 패턴이 변화되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예전엔 작가 단독으로 장편이든 작품집을 냈다면, 몇 년 전부터는 계간으로 서너 명의 작가의 단편을 묶어 책을 내기도 하고, 이렇게 한 가지 소재로 서로 다른 글을 써내기도 한다. 이 책도 그런 책 중의 하나다. 일곱 작가들이 한강 소재로 작품을 썼다. 한강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까 싶었는데 의외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같은 '한강'을 두고 어쩌면 이토록이나 장르도 다르고 다채로운 글을 쓸 수 있는지 조금 놀라기도 했다. 읽은 소감을 간략하게 적어 보면,

이 책의 첫 번째로 문을 연 작품은 장강명 작가의 '한강의 인어와 청어들'이란 작품이다. 장 작가는 주로 사실주의 작품을 써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작품은 뜻밖에도 판타지다. 나는 판타지나 SF 계열의 작품은 좀 낯설어하는 편이라 이 작품이 단독으로 나왔다면 나의 선택을 비껴갔을지도 모르겠다. 읽으려면 읽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새삼 앤솔러지가 좋은 건 한 장르만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섭렵할 수 있다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장르가 판타지라 망정이지 실제 사람 얼굴을 한 물고기가 한강에 있다고 생각하면 난 왠지 으스스할 것 같다. 어렸을 땐 안데르센의 인어 공주 이야기가 그렇게 신비롭고 감동적이기까지 했는데 말이다. 인어들과 청새치의 대결이 흥미롭다. 하지만 내가 이쪽으로 상상력이 달려서일까? 읽고 나서 남는 건 별로 관련 없는 안데르센과 헤밍웨이와 생선구이가 생각이 났다. 작가가 열심히 썼을 텐데 좀 미안하지? 나중에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정해연 작가의 '한강이 보이는 집'은 수사 추리물이다. 이런 소설의 재미는 수사하는 과정에서 여러 다양한 인간 군상과 대리 만족, 전혀 범인이 아닐 것 같은 인물의 반전에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 모든 것을 충족시킨다. 재미 삼아(?) 수사 선상에 있는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더럽고 치사하긴 하지만 누가 더 치사한가 베틀을 해 보는 것도 이 책을 더 흥미롭게 읽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 물론 오십 보 백 보지만.

이제 수사에 있어서 CCTV는 없어서는 안되는 물건이 됐다. 사생활 침해의 소지는 있지만 이제 이거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가 없다. 그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것인지 불합리하게 여겨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정확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우리가 길거리에 나서기만 해도 1분인지 1초에 140번 찍힌다나 뭐라나. 그러면 마냥 범죄 예방과 분쟁 방지를 위한다는 명목을 외치다가도 헛기침 한 번은 내지를 수밖에 없다. 감시 사회다.

임지형 작가의 '한강을 달리는 여자'는 조금은 독특한 소설이다. 작가 자신이 러너이기도 하거니와 주인공 역시 한강을 끊임없이 달리는 러너다. 그래서 그런지 주인공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달리는 동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작가가 달리게 된 이유는 건강이 안 좋아 수술을 앞두고 체력을 위해 달리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달리기 전도사가 된 모양이다. 새삼 부럽다.

이 작품은 인간 간의 부조리한 면을 잘 포착해서 감각 있는 문장으로 잘 다뤘다. 흥미롭게 잘 읽힌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건, 주인공이 한때의 실수로 이혼을 하면서 하나뿐인 어린 아들과의 면접교섭권을 박탈 당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게 허구인 건지 아니면 실제로 있는 일인지 알 수가 없다. 근데 왠지 21세기에도 그런 전근대적 가정사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게 꼭 법의 문제가 아니라 일부러 못 만나게 하는 사람의 완력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21세기라고 다 세련되고, 심플하고, 모던한 것만은 아니니까.

차무진 작가의 '귀신은 사람들을 카페로 보낸다'는 재밌다. 일종의 코믹 호러라고나 할까? 나는 공포나 호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런 호러라면 백편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면서 첫 번째로 만나는 대상을 자기를 돌봐 줄 어미로 인식을 한다고 하는데, 그에 못지않게 독자는 작가를 어떤 작가로 인식하느냐는 보통 첫 작품에서 판가름이 나는 것 같다. 나는 공교롭게도 작가의 첫 작품을 호러로 읽은 탓에 당연히 호러 작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작가는 어찌어찌하다 보니 호러를 썼을 뿐 전문 작가는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그렇다면 미안하다. 빨리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 이 인식을 상쇄시켜야 할 것 같다. 작가의 건필을 빈다.

박산호 작가의 '달려라, 강태풍'은 내가 가장 많이 감정이입을 하면서 읽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주인을 잃은 개가 주인을 찾는 과정을 개의 1인칭 관점에서 썼기 때문이고, 왕년에 반려견을 키워 본 경험이 있어서이기도 하다. 사람은 참 이상하지? 자기가 사랑하는 반려동물에게도 자신의 성을 물려주기도 하니 말이다. 여기서 태풍이는 개의 이름이고 주인의 성이 강 씨라 그렇게 불린다. 우리 집도 그랬다. 지금은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3년쯤 되는 요크셔테리어 수컷 다롱이에게 우리가 김 씨라 그 성을 붙여 주었다. 그래서 가끔씩 김다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솔직히 이런 글을 읽으면 녀석과 그동안 우리가 키웠던 개들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그 과정에서 새롭게 깨달은 사실은 우리 집은 소위 개가 잘 되는 (즉 개가 잘 붙어있고 새끼를 쑹덩쑹덩 잘 낳는) 집으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그게 지금은 하나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랜 세월 개를 키워오면서 마당에서 키웠던 개들은 거의 대부분 집에 잘 붙어있는 척하다가 이내 나가 버렸다. 집안 어른들은 그건 자기가 죽을 때가 돼서 집을 나간 거라고 간단하게 해석을 하곤 했다. 그게 과연 맞는 얘기일까? 추측건대 개는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은 들개의 본성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고, 예전엔 개 장수가 골목을 돌아다니며 개를 팔라고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난 그들 또한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는 도둑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즉 그들에 의해 유괴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죽을 때가 되면 집을 나간다는 말은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려견은 확실히 다르다. 얘네들은 태어나는 순간이나 데려오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함께한다. 죽는 것은 슬픈 일이긴 그 개가 자연사를 하는 것이라면 바로 그 집이 진정으로 개가 잘 되는 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까지 세 마리 정도를 그렇게 보내 주었다. 한 마리는 마당에서 키우는 개였고, 두 마리는 안에서 키웠던 반려견이었다. 그 정도면 타율이 좋은 건가? 개가 잘 되는 집이 되려면 지금도 여전히 키워야 할 것 같은데 보다시피 이런 소설을 읽으면서 감정이입만 하고 있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생명을 키운다는 건 맨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랑은 확실히 미친 짓이다. 그래서 미쳐야 미친다.

카뮈의 <이방인>은 뫼르소가 작렬하는 태양빛 아래서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다. 작가들은 주로 의식의 이쪽 면을 다루지만 때로 어떤 작가는 의식의 저쪽 면 즉 무의식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생각이나 망상을 다루기도 한다. 조영주 작가의 '폭염'은 더위 때문에 빚어지는 인간의 망상일지도 모르는 상황을 그럴듯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우린 그럴 때 흔히 더위 먹었냐고 빈정대기도 하지만 바로 그 별난 상황을 확대 해석해서 독자들에게 펼쳐 보이는 것이다. 어쩌면 바로 그것에 인간의 욕망과 허위와 모순이 낱낱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것을 미스터리로 풀어가면 금상첨화다.

이 책의 대미를 장식한 작품은 정명섭 작가의 '해모수의 의뢰'다. 이 작품 역시 일종의 수사물인데, 근미래를 다룬 SF 물이기도 하다. 또한 아리온 호란 관광용 잠수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한때 유행했던 밀실 추리물이기도 하다. 해모수는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의 이름이다. 사람의 동선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고, 인간의 대화도 제법 쿵짝을 잘 맞힌다. 마치 인간의 마음을 읽는 것 같기도 하고, 또한 충직하기까지 하다. 이보다 더 좋은 대체제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이야기는 대체로 긍정적이고 좋은 면을 부각시켰지만, 읽다 보면 우리의 근미래가 가져올 예측 가능한 상황들을 생각할 때 좋다고는 할 수마는 없다. 특히 인공지능 로봇의 상용화로 이미 적지 않은 분야에서 인간을 대체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물론 편리하고 부리는 입장에선 원가절감이란 특수를 누릴 수도 있지만 그건 노동자들의 대량 실업 사태로 이어지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또한 아직 로봇에게 심한 윤리적 규제는 하고 있지 않지만 언제 청부살인이나 살상에 대거 투입이 될지 알 수 없다. 실제로 앞으로 한 세대가 가기 전에 사람 대신 로봇이 대리전을 할 거라는 전망도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되면 법정에서 로봇을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정명섭 작가는 재미있는 스토리에 그럴듯한 인간의 문제를 담았다. 이제는 인간의 문제가 로봇의 문제고, 로봇의 문제가 인간의 문제가 될 것이다. 감히 말하건대 읽어 본 작품중 가장 매력적이지 않나 생각한다.


나 어렸을 때 만해도 한강은 더럽단 인식이 많았다. 그땐 수돗물도 꼭 끊여 먹어야하는 시절이었다. 오늘 날엔 수질 검사를 철저히해서 수돗물 그냥 따라 마셔도 좋다는 홍보를 할 정도다. 세계적인 강이 있다. 영국엔 템즈강이 있고, 독일엔 라인강이 있으며, 프랑스엔 세느강이 있지만 우리나라엔 한강이 있다. 이제 한강을 낮게 보는 사람은 없다. 밤에 보는 한강은 또 얼마나 그럴싸한지. 이런 한강을 두고 작가들 글 하나 쓰지 못하면 그도 아쉽긴 하다. 잘 썼다. 더 많은 작가들이 한강을 배경으로한 글을 써도 좋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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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5-12-18 0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님, 오랜만에 오셔서 일단 반갑습니다!

2025-12-18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25-12-18 15: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어디에 갔다 오셨나요.
오래동안 알라딘서재를 비우셔서 많이 궁금합니다.
전에 니르바나가 활동이 없으면 찾아주셨는데 이번에는 제가 스텔라님 찾았습니다.
못찾겠다 꾀꼬리가 아니고 스텔라님이요.
오래만에 만든 스텔라님표 리뷰를 이 달의 리뷰로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스텔라님, 화이팅!

stella.K 2025-12-18 19:55   좋아요 1 | URL
니르바나님 서재에 소식없을 때 제 마음이 어땠는지 아시겠죠? ㅎㅎ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반갑게 맞아주시니 감읍할 다름입니다. 훌쩍~
잘 지내시죠? 앞으로 가끔씩 소식 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서재를 비우는 동안 올 한해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모쪼록 남은 한 해 마무리 잘하시고 복된 새해 맞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카스피 2025-12-18 16: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한국에서도 추리나 SF 소설 앤솔로지들이 많이 나와서 장르 소설 애독자 입장에서 매우 기쁘기 한량없네요.
쓰신 글중에서 CCTV와 관련해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서구권의 경우개인의 사생활을 염탐하는 듯한 CCTV를 극도로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범죄 해결과 예방에 도움이 되는 CCTV설치에 반대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그에 비해 동양의 경우는 워낙 집단주의 문화가 강해서인지 CCTV설치에 부정적이지 않긴 한데 CCTV를 통해 전 국민을 감시하고 있는 중국의 예를 들자면 서양의 과도한 기피가 전혀 이유가 없다고 할 순 없단 생각이 듭니다.

stella.K 2025-12-18 19:59   좋아요 0 | URL
아, 이게 동서양이 다르군요. 솔직히 좀 무섭잖아요.
오늘도 10대 아이들이 20대 정신지체자를 CCTV가 없는 곳으로 가
집단 괴롭힘을 당하도록 했다고 하더군요. 무서운 세상이어요.ㅠ

카스피님, 앤솔로지 좋아하시는군요.^^

yamoo 2025-12-18 19: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이쿠야! 몇달만이십니까!? ㅎㅎ 리뷰 보니 반갑네요.^^

stella.K 2025-12-18 20:00   좋아요 1 | URL
ㅎㅎ 그러게 말입니다.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 2025-12-19 2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강 작가로 읽었지 뭐에요?
한강은 그 한강이로군요.ㅋㅋㅋ
앤솔로지 책들이 많아지니 요즘은 이런 종류의 책들도 꽤나 흥미롭게 읽히는 것 같아요.
그나저나 저도 스텔라 님 정말 오랜만에 뵙는 것 같아요.
또 올 해도 얼마 안 남았어요.ㅜ.ㅜ
그래도 우린 계속 이 자리에 있는 것 같아요.ㅋㅋ 그래서 좋네요.
크리스마스 잘 보내세요.^^

stella.K 2025-12-19 22:17   좋아요 1 | URL
아, 책나무님! 넘 오랜만이죠?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지내시죠?
그렇지 않아도 제목을 저리 달아놔도 될까 했어요.
근데 사람 이름을 그렇게 지어도 좋긴하죠? ㅎㅎ
그래요. 자주 뵈어요. 책나무님도 얼마 남지 않은 한해 마무리 잘하시고
성탄절도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5-12-28 1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음에 이 책 봤을 때 한강 작가에 대한 책인 줄 알았어요. 오늘 그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네요. 아 웃겨요.ㅋㅋ 여러 작가들의 글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네요. 요즘 뜸하셔서 이런 글이 올라와 있는 줄도 몰랐네요. 이 해의 남은 며칠,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stella.K 2025-12-28 19:17   좋아요 1 | URL
아, 언니! 저는 언니 글 기다렸어요. 오랜만에 왔는데 안 보이셔서 언제 오시나하며. ㅎ 잘 지내시죠? 앞으로 가끔이라도 들려보려고요. 서재의 달인되서 다이어리 받으면 제가 여길 더 안 오게 되더라구요. 이걸 먼저 채워야겠다는 생각에. 제가 좀 게으른편이라. ㅎㅎ
이책 그런 오해 많이 받더라구요. 전 성석제나 김영하 이후에 나온 작가들은 잘 모르겠던데 이거나 계간으로 나오는 <소설 보다> 보면 요즘 작가들을 알 수 있겠더군요. 기량들이 좋아요. 옛날 작가들하고는 또 다르게. 우리 정서에 맞는 건 박산호 작가 같더군요. 중고샵에 나오면 한번 읽어보세요.
 
대소설의 시대 1 백탑파 시리즈 5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김탁환 작가의 작품을 읽었다. 지금까지 작가의 작품은 대여섯 작품쯤 읽었던 것 같다.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라도 한 작가의 작품을 그 정도 읽었다는 건 내게 여간해서 없는 일로 가히 최애 작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더구나 난 작가의 대표작은 (이를테면, <방각본 살인사건>이나 <열녀문의 비밀>, <열하광인> 같은 작품은) 아직 읽지도 않았다. 하긴, 이건 좀 나의 게으름이 반영된 약간의 전략이자 변명이기도 한데, 내가 만일 이런 주요작부터 읽었다면 일찍 내게서 멀어져 갔을지도 모른다. 내가 김탁환 작가를 좋아하는 건, (사람들은 흔히 역사 소설을 좀 낫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그는 조선이란 이 역사적이며 문명사적인 시대를 소설로 하나의 세계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부지런하게.


내가 이 책에 마음이 끌렸던 건 다름 아닌 소설가의 소설 쓰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난 이 방면의 책을 매우 좋아하는데 이를테면 파리 리뷰가 인터뷰했다던 <작가란 무엇인가>나,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 같은 책이다. 그건 웬만한 글쓰기에 관한 책 보다 훨씬 재밌고 유익하다. 여기서 유익하다는 건, 글쓰기에 관한 책은 물론 읽을 필요는 있지만 사실 그다지 재밌거나 아주 많이 흥미로운 건 아니다. 어떤 건 애를 좀 먹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책들을 그냥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그리고 나도 왠지 '작가처럼' 쓰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받는다. 이 책도 그렇다. 물론 글쓰기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기를 부여받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역시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다.


독특한 건, 이 작품은 얼핏 금부도사인 이명방이 화자로 나오고 그의 절친인 김진과 당대 유명한 사람들 이를테면 김홍도니 정약용, 박문수 같은 사람이 나와 남성 서사인 것 같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비록 가상의 인물이지만 매설가(소설가) 임두와 그의 손녀 승혜와 궁에 사는 왕의 여자들 즉 임금의 후궁들과 책을 필사하는 궁녀들이 다수 나온다는 점에서 여성 서사를 표방하고 있다.


매설가 임두가 당대 얼마나 유명하냐면 궁에 사는 왕의 여자들(후궁들)과 연줄이 닿아있을 정도다. 왕의 여자니 얼마나 눈이 높겠는가? 웬만한 매설가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다. 임두가 소설을 쓸 때마다 필사 궁녀가 그의 작품을 필사하기에 바쁘다. 단순히 그렇게만 표현하기가 약했던지 임두는 약간 신비스러우면서도 무림의 고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는 무려 23년 동안이나 <산해인연록>을 쓰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무림의 고수가 맞다. 그런데 그렇게 쟁쟁한 작가가 어느 날 갑자기 행방불명이 된다. 그건 다름 아닌 매병(치매)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명한 작가가 매병에 걸렸으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는가. 그래서 차라리 어딘가로 숨어 버리는 건 선택한 것이겠지. 어쨌든 그렇게 되니 마무리를 져야 하는데, 그 후보로 임두가 키우고 있는 형제인 경문과 수문이 후보로 지목된다, 하지만 청출어람이란 말도 있지만 그 둘은 아직 그 경지를 넘 볼 정도는 아니다. 이렇듯 작품은 행방불명이던 임두를 찾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경문과 수문의 묘한 인간적 갈등과 금부도사인 이명방이 말을 못 하는 임두의 손녀 승혜를 연모하는 과정 등을 그의 1인칭 시점으로 풀어내고 있다.


사실 어찌 보면 이 작품은 인물을 다룸에 있어서 좀 약하지 않나 싶다. 특별히 악한 사람이 없다. 있다면 수문 정도다. 나중에 형인 경문을 죽이고 발뺌을 하는데, 그가 확실히 죽인 증좌도 없다(맞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끝까지 읽게 만든다. 무엇보다 곳곳에 우리나라와 당나라의 고문학을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소설을 각주처럼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이 책은 나의 흥미를 충분히 느끼게 해 주었다. 놀라운 건, 소개하고 있는 책들의 분량이 상상을 초월한다. 한 작품이 몇십 권은 축에도 들지 못한다.100권은 넘어가야 가히 대소설이라 불러줄 만하다. 그러니까 임두 같이 한 작품을 평생 쓰는 작가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말이다. 솔직히 우리가 고문학을 아는 건 <사씨 남정기>나 <홍길동> 같은 손에 꼽을만하고 그것도 단행본 아닌가?


사실 대소설은 우리가 잘 사용하지 않아 어색하고 낯설긴 한데, 오늘 날로 치면 시리즈를 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나는 처음에 과연 한 작가가 23년 동안 한 소설을 쓰는 것이 가능할까를 생각해 봤다. 어떻게 한 작가가 한 가지 소설만 쓸 수 있을까? 말이 좋아 23년이지 오늘날처럼 수명이 긴 것도 아니다. 옛날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40 전후라고 하던데 그렇다면 인생의 반 이상이다. 그것을 오로지 한 작품에만 바친다고?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그 시절 책 읽는 것이 가장 지적이면서도 고급한 문화활동이었을 것이다. 이것 외에 무엇을 더 해 볼 수가 있을까?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게 골수에 새겨져 있다는데, TV나 영화를 보겠는가? 라디오를 듣겠는가? 책밖엔 없을 것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글을 깨우쳐 읽을 수 있다는 건 굉장한 능력이고, 심지어 권력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읽을 것이 많지 않다면 같은 책을 몇십 번 아니 몇백 번씩 반복해서 읽었을지 모른다. 또 그런 만큼 한 작가가 20년 넘게 붙들고 쓴다는 건 인생을 다 건다는 의미일 것이다. 쓰다가 병나고 죽을 수도 있다. 그러니 제자를 키운다는 건 오늘날의 그것과는 다른 의미였는지도 모른다. 즉 원작자 유고시를 대비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소설도 임두의 작품을 미완성으로 남겨 놓지 않고 제자가 이어 쓰도록 한 것이겠지.


그런데 과연 오늘날 그렇게 쓰는 작가가 있나 싶기도 하다. 있어도 뜯어말려야 하지 않을까?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한 작품만 들이 판단 말인가. 이야기도 작가 따라 늙기 마련이니 그만 쓰고 새것 쓰라고 하지 않을까? 따라서 임두 같은 대소설을 쓰는 작가가 오늘날 21세기를 산다면 크게 환영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생각해 봤더니 <산해인연록>이 오늘날 쓰여진다면 100권까지 안 갈지도 모른다. 그 시절엔 글자 크기 조절을 할 수 없지 않을까? 세상에 가장 가는 붓으로 작게 쓴다고 해도 요즘 컴퓨터로 글을 쓸데 흔히 쓰는 10포인트 보다 클 것이다. 더구나 책은 묶기 나름 아닌가? 300이든 400 페이지든 얼마를 한 권으로 할지 등은 만드는 사람이 정할 일이다. 그렇게 생각해 볼 때 글쎄, 아무리 많아도 30권을 넘을 수 있을까? 지하에 있는 이 모두가 알면 기함할지도 모른다. 그 많던 책들이 어디로 사라진 거냐고.


아무튼 TV나 인터넷만 들어가도 드라마나 영화가 넘쳐나는데 아무리 이야기를 좋아하는 인간일지라도 기왕이면 입체적인 것이 좋지 침침하고 칙칙한 책이 좋을까? 그래서 이제 시리즈 (대소설)를 쓰는 소설가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런 최첨단 영상 시대에도 약 30년 전부터 쓰기 시작해서 아직도 결말을 내지 않고 있는 작가의 작품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제프리 디버다. 그는 유명한 링컨 라임 시리즈를 1997년에 내기 시작해서 아직도 결말을 내지 않은 채 계속 책만 내고 있다. 내후년이면 진짜 30주년인데 그에 맞혀서 마무리를 지으려나? 1950년 생이라니 이제 노년이다. 그를 좋아하는 어떤 독자는 부디 건강해서 대미를 장식해 주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밖에 그에 준하는 또는 그를 뛰어넘는 작가가 찾아보면 많을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 그런 작품은 어느 시대고 있고 여전히 건재하다. 건재함이란 쓰는 소설가나 읽어주는 독자 모두를 말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임두 작가가 소설을 쓰는 과정을 보면 가슴이 뛰었다. 임두 작가가 그렇게 글을 쓴다는 건, 김탁환 작가가 그렇게 쓰고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이 얼마나 벅찬 일인가? 모든 작가에겐 이런 체험이 필요한 것 같다. 작가들 중엔 등장인물들이 살아 꿈틀대고, 그들이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걸 자신은 그저 받아 적을 뿐이라고 하던데 확실히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작가가 늘 그렇기만 할까? 그런 현상에만 의존하면 그건 게 없을 때도 과연 글을 쓸 수 있을까? 글이 잘 써지고 있다는 건 좋은 일이면서 동시에 두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건 어쩌면 뭔가에 안주하게 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그런 체험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순간이 오던 안 오던 늘 언제나 변함없이 쓰는 게 진짜 작가가 아닐까?


앞서도 얘기했지만, 김탁환 작가는 이 작품을 남성 서사로 쓰지 않고 여성 서사로 썼다. 엄밀하게는 남성 서사를 가장한 여성서사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대 여성은 모든 면에서 소외되어 있다. 그러니 책을 읽는다면 얼마나 읽겠는가. 물론 왕의 여자들이니 기본적으로 글을 읽고 쓰는 소양 정도는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긴긴 나날을 왕이 언제 자신의 처소를 찾아 줄까를 기다리지 않고, 그 시간 책을 읽고 책이 원활히 나올 수 있도록 능동성을 발휘한다. 하지만 이 역시 아주 적극적여 보이진 않는데 그건 아무래도 여자가 아닌 김탁환 작가의 한계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깎아내리고 싶지는 않다.


예전에 90년대 또는 2천 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도서 대여점 (조선 시대로 말하면 세책방이겠지)이란 게 성행했었다. 그 시절 어떤 작가가 시리즈물을 쓰면서 새로운 책이 나올 때마다 대여점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에도 그런 장면이 나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생각이 났다. 그런 게 아니더라도, 따분한 학교 수업 시간에 교과서 위에 또는 책상 서랍에 애정하는 책 몰래 내놓고 본 경험 있지 않나? 모름지기 책은 그런 맛이 있어야 한다. 책 읽기의 긴박함이랄까? 그러다 선생님의 압수 물품이 될지라도 말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우린 어느새 그때를 잊고 살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런 건 좀 부활시켜도 좋지 않을까? 혹시 그런 얘기 알고 있으면 제보를 부탁한다. 이렇게 독자들에게 책은 읽고 싶은 욕망과 긴급성을 필요로 한다. 또 작가들은 자신의 책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쓸고 있을 것이다. 그런 작가들의 꿈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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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5-08-20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안녕하세요.^^
김탁환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시는군요.
예전에는 십만부는 예사이고 백만부씩 팔리던 소설도 있었는데
요즘 베스트셀러 소설은 과연 얼마나 나갈까요.
그러고보면 소설가들 입장에서는 볼거리 없던 오래 전 그 시절이
전부 스마트폰에 눈박고 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stella.K 2025-08-20 12:11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예전엔 어떤 작가의 무슨 작품이 나왔다면 들썩들썩 하던 시절이 있는데 지금도 그런 게 있나 모르겠어요. 80년 시퍼렇던 시절 금서들 가방속에 들고 다니면 큰 일났던 시절도 있었잖아요. 그런 시절이 새삼 그리워졌어요.
그때를 잊어버리고 스맛폰만 보고 있다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
그들중엔 그래도 전자책 다운 받아 읽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버스 안에서 스맛폰 잘 못 보겠던데 요즘 젊은 사람들 보고 있는 것 보면
신기해요. ㅎ
오늘도 저의 누추한 서재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2025-08-19 2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탁환작가 백탑파 시리즈가 5권까지 나왔군요. 저는 시리즈 시작인 방각본이랑 열녀문의 비밀만 봤어요. 재밌게 읽었는데 어쩌다보니 잊고 있었네요
스텔라님 글 보니까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글 중간에 제프리 디버 얘기가 나와서 반가웠습니다. 링컨 라임 시리즈 저 정말 좋아하는데 요즘은 더 이상 번역이 안돼서 너무 속상해요 ㅠㅠ

stella.K 2025-08-20 12:17   좋아요 1 | URL
ㅎㅎ 바람돌이님도 김탁환 작가 읽은지 오래되셨군요.
상당히 오래됐죠.이게 2019년에 나왔으니. 이후에도 계속 책을 펴냈으니
김탁환 작가는 신기하더라구요. 강의하랴 소설 쓰랴 잠은 언제 자나 싶어요.
제프리 디버가 유명하긴 한가보군요. 이렇게 반기시는 걸 보면.
저는 루팡이나 홈즈 시리즈도 떼지 못했는데. ㅠ
암튼 저도 디버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yamoo 2025-08-20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백탑파 시리즈가 아직도 나오고 있다뉘!!!
저도 방각본이랑 열녀문까지는 아는데, 그 이후는 ..^^;;
제프리 디버도 재밌긴한데...이 작가 이름을 스텔라님 서재에서 볼 줄은 몰랐네요..^^;;
추리 및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시는 줄 몰랐다눈..ㅎㅎ
그나저나 한국소설 읽지 않은 지도 10여년 가까이 되는군요. 언제 다시 읽으려나..아직까지 계획은 없어요. 세계문학 대기가 줄줄이라서요..^^;;

stella.K 2025-08-20 12:32   좋아요 0 | URL
네. 아직도 나오고 있습니다. ㅋㅋㅋ
다들 비슷한 거 같습니다. 그 정도만 읽고 손을 놓는 거. ㅎ
저도 한동안 안 읽다 오랜만에 읽으니까 도파민이 돋는 것 같더라구요.
누가 그러더군요. 1년 단위로 계획을 세워보라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뭘하며 사는지 모르고 1년은 금방 지나간다고.
올해 김탁환 작가 읽기. 뭐 이런 거 할 걸 그랬다 후회하고 있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두어 작품 더 읽으면 좀 덜 후회할까요?
그러게요. 제가 디버 같은 작품을 읽겠습니까?
얼마 전 아는 분이 이 사람 책을 읽고 리뷰를 쓰셨길래 조금 옮겨봤어요.
세계문학도 읽을 게 많죠. 읽을 책은 많고, 읽을 수 있는 책은 한정돼있고
아쉬운 인생입니다. ㅎㅎ

2025-11-03 2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1-03 21: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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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5 13: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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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5 18: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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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6 20: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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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6 21: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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