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쓴 시를 타자로 옮기기

 


 우리 집 두 아이가 앞으로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함께 읽어야지 생각하면서 동시를 썼다. 출판사에 보내려고 보름쯤 걸쳐 손으로 원고지에 정갈하게 옮겨적었다. 옮겨적으면서 처음 쓴 글을 손질하고 줄 나누기를 새로 했다. 오늘 아침 겨우 일을 마무리짓고 봉투에 넣어 부치기 앞서, 출판사 주소를 제대로 알아보려고 전화를 건다. 내가 동시꾸러미를 보내려 하는 출판사는 서울과 파주에 따로 일터를 두고 나누어졌기에. 전화를 받은 분은 손 원고를 따로 받지 않는다며, 복사한 것이라면 보내도 된다고 하지만, 셈틀을 아예 못 쓰는 나이드신 분들 글이 아니라면 파일로 받는다고 이야기한다. 전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한다. 어차피 책으로 나올 수 있다면 다시 파일로 꾸며야 하는 글일 테지. 그렇다면 처음부터 시를 셈틀을 켜고 썼어야 했을까. 아니다. 나는 아이들과 복닥이면서 수첩이 되건 한쪽만 빈 종이가 되건 어디에건 끄적여 놓았다. 이렇게 끄적인 시를 나중에 자그마한 빈책에 하나하나 정갈하게 옮겨적었다. 이렇게 옮겨적은 시를 원고지에 하나하나 다시 옮겨적었다. 띄어쓰기를 옳게 맞추며 글을 넘겨야 할 테니까.

 

 글꾸러미는 나한테 남는다. 바지런히 타자로 옮긴다. 파일을 출판사 편집자한테 보낸다. 이제는 기다리면 된다. 예쁘게 사랑해 줄는지, 이만 한 글은 책으로 낼 만한 그릇이나 깜냥이 못 된다고 이야기해 줄는지는 알 길이 없다. 나와 옆지기와 두 아이가 사랑해 줄 만하면 넉넉할는지, 우리 형과 음성 어버이와 일산 어버이가 함께 즐거워 해 준다면 흐뭇할는지, 가까운 여러 벗과 이웃이 살가이 헤아린다면 고마울는지 모르겠다. 이제 내 손을 떠난 글꾸러미이기 때문에 나는 이 동시꾸러미가 더는 내 글이라고 여길 수 없다. 엊그제부터 101번째 새 동시를 쓴다.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면서 마음을 느긋하게 다스리면서 글 하나 여밀 겨를이란 참 빠듯하다. 아이들은 저희를 바라보고 저희와 얘기하기를 바라겠지. 그러고 보면, 아이들뿐 아니라 옆지기 또한 서로서로 마주보며 사랑스러운 마음길을 열기를 더 좋아하지 않겠나. 밤 열한 시가 가깝도록 잠들지 못하는 둘째를 억지로 씻겼다. 아이가 얼굴을 너무 간지러워 하니, 졸음이 쏟아지더라도 울음소리를 들으며 씻겼다. 새근새근 잠든 아이들 머리카락을 쓰다듬다가, 이렇게 울며 불며 한다면 노래를 조곤조곤 부르며 더 부드럽고 상냥한 몸짓과 말씨로 다독여야지, 우격다짐하듯 씻겨서 되느냐고, 언제나 뒤늦게 이런 모습을 돌아본다고, 참 어리석고 어설픈 아버지라고 다시금 느껴 부끄럽다. (4344.12.2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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