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말 ‘존재’가 어지럽히는 말과 삶
 (152) 존재 152 : 지속적인 경제는 존재할 수 없다


.. 자연과 함께하는 모든 농업 경영, 즉 지속적이고 생태적인 경영은 지역 경제에 기반을 둔 농업을 전제로 한다. 재생되는 농업이 없으면, 지속적인 경제는 존재할 수 없다 ..  《프란츠 알트/모명숙 옮김-지구의 미래》(민음인,2010) 76쪽

 “농업(農業) 경영(經營)” 같은 글월은 그대로 둘 수 있을 테지만, “농사짓기”나 “흙살림”이나 “흙 일구기”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즉(卽)’은 ‘곧’으로 다듬고, “지속적(持續的)이고 생태적(生態的)인 경영(經營)은”은 “자연을 살리는 꾸준한 농사짓기는”이나 “꾸준하면서 자연을 살리는 농사짓기는”으로 다듬으며, “지역(地域) 경제(經濟)에 기반(基盤)을 둔”은 “지역살림에 바탕을 둔”이나 “마을살림에 뿌리를 둔”으로 다듬습니다. “농업(農業)을 전제(前提)로 한다”는 “농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나 “농사짓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나 “흙살림이 있어야 한다”로 손질하고, ‘재생(再生)되는’은 ‘되살리는’이나 ‘흙을 북돋우는’이나 ‘흙을 아끼는’으로 손질합니다.

 그러나, 낱말이나 글월을 하나하나 쪼개어 손본다 한들, 글월을 통째로 들여다볼 때에는 어딘가 어수룩합니다. 이 보기글은 통째로 모두 다시 써야 해요. 하나하나 뜯어서 살펴서는 도무지 말이 안 됩니다. 한국땅에서 흙을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들 눈높이를 돌아보면서 내 말마디를 가다듬어야 합니다. 어느 한 사람이 이 어수룩한 글월을 살가이 다듬어 주기를 바라지 말고, 누구나 이 글월이 옳고 바르며 착하고 참다울 수 있게끔 추스르는 눈썰미를 길러야 합니다.

 지속적인 경제는 존재할 수 없다
→ 꾸준한 경제는 있을 수 없다
→ 한결같은 경제는 자리할 수 없다
→ 튼튼한 경제는 버틸 수 없다
 …


 쉽게 살핀다면, “존재할 수 없다”는 “있을 수 없다”로 손보면 됩니다. 일본 한자말 ‘존재’가 쓰인 자리는 ‘있다’로 손보면 넉넉합니다. 어느 자리라 하든, ‘존재’는 한국말 ‘있다’가 담거나 나타내거나 드러내거나 보여주는 깊으며 너른 뜻과 느낌을 짓밟습니다.

 ‘있다’라는 말마디를 곰곰이 헤아리면서 다음 말마디를 살핍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라는 대목 앞에 “지속적인 경제”가 붙습니다. 곧, ‘존재’ 한 마디를 털어낸다 해서 글월을 알맞거나 매끄럽거나 살갑거나 사랑스레 다스리지 못하는 셈입니다. 이 대목을 함께 추슬러야 합니다.

 경제는 이어질 수 없다
 경제는 무너진다


 “꾸준한 경제”는 “있을 수 없다”는 말은, “경제가 이어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경제가 꾸준히 있을 수 없다는 말은, 한 마디로 하자면 “경제가 무너진다”거나 “경제가 휘청거린다”거나 “경제가 흔들린다”고 할 수 있어요.

 여기까지 가다듬었으면 앞 글월을 붙여서 통째로 다시 읽습니다. 한두 군데만 잘라서 살필 때에는 뜻이나 느낌이 제대로 와닿기 힘들어요. 무슨 이야기를 어떤 넋으로 들려주려 하는가를 찬찬히 짚어 봅니다.

 되살리는 농사짓기가 아니면 경제는 무너진다
 흙을 살찌우지 않으면 경제는 휘청거린다
 흙을 살려야 경제가 살아난다
 흙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

 자연과 함께 하는 농사짓기란, 자연을 생각하면서 살리는 농사짓기입니다. 농사짓기란 ‘흙을 일구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흙을 아끼고 사랑하며 곡식을 거두어야’ 한다는 뜻이고, 흙을 들볶지 않는 길을 걸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간추리자면, “흙을 살찌워야 경제가 살아숨쉰다”가 되고, “흙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가 돼요.

 말하려는 밑넋을 곱씹으면서 넋을 담는 말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힘을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글로 담으려는 밑얼을 되뇌면서 얼을 싣는 글이 알찰 수 있게끔 사랑을 기울이면 기쁘겠습니다. (4344.11.3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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