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당나귀 벤야민
한스 림머 지음, 레나르트 오스베크 사진, 김경연 옮김 / 달리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아이들이랑 따사로이 어우러질 삶이란
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7 : 레나르트 오스베크, 《내 당나귀 벤야민》(달리,2003)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에 아이가 하고픈 그대로 바라보아야 할는지 가만히 지켜보아야 할는지 생각해 봅니다. 다칠 만한 무언가를 한다면 말려야 할 텐데, 아이가 만져서 다칠 만한 무언가라 한다면 어른이 만질 때에도 썩 좋다 할 만하기 어려운 한편, 집에 둘 만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아이가 이러한 무언가를 만지기 앞서까지 제대로 못 느끼면서 집에 그대로 두지 않느냐 싶어요. 꼭 아이가 만져서 다칠 만하거나 뭔가 말썽이 생길 만할 때에 깨닫습니다.

 생각을 잃지 않으며 살아가야 비로소 사람이라 할 텐데,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나날을 돌아볼 때면, 나는 내 하루를 얼마나 생각하며 지내는가 싶어 슬픕니다. 오늘 하루는 무엇을 했을까요. 어제 하루는 어떤 나날이었는가요. 다가올 새날은 어떤 일을 치러야 하나요.

 아이가 물려받을 만한 일이 아니라면 어버이로서 할 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나는 내가 하는 일부터 옳게 할 만해야 합니다. 아이가 곁에서 거들어도 괜찮을 뿐 아니라, 아이를 불러 거들라고 시킬 만해야 합니다.

 새 보금자리를 얻어 손질하면서 생각합니다. 한동안 비었을 뿐 아니라, 늙은 할머님 한 분 살던 때에도 집이 거의 버려진 듯 있었기에 손 가는 데가 많으며, 치우고 버릴 것이 많습니다. 케케묵은 벽종이를 긁어서 벗기고 새 벽종이 바르기 앞서 매캐한 먼지를 쓸고 닦으며 치우는 일부터 만만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러한 일을 아이를 불러 거들라고 시킬 수 있을까요. 아이뿐 아니라 옆지기한테 먼지구덩이에서 함께 일하자고 할 수 있는가요.

 먼지구덩이에 홀로 들어가 먼지더미를 혼자 들이마십니다. 나 홀로 하자고 생각합니다. 나 혼자 견디자고 헤아립니다. 이 먼지를 둘이나 셋이 마실 까닭이 없다고 여깁니다. 그러니까, 나는 나 홀로 하는 일이라지만, 나부터 할 만하지 않은 일을 힘들게 하는 셈입니다. 나 혼자 고단한 굴레를 짊어지면서 내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니, 이렇게 지친 몸과 마음으로 집식구와 살가이 부대끼기는 어려운 꼴입니다.

 지나고 돌아보면 아련한 옛일이 될까요.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면서 며칠이나 한두 달을 보내면 되나요.

 문득 내 손금을 들여다봅니다. 손바닥에 새겨진 금 셋 가운데 목숨줄 하나만 바라봅니다. 나는 목숨줄 하나만 읽을 줄 안다고 느끼지만, 어쩌면, 나는 목숨줄 하나만 읽도록 나 스스로를 길들이지 않나 싶습니다. 세 가지 금을 모두 읽을 줄 안다고 여기며 살아가면, 내 삶을 나 스스로 알맞게 다스릴 수 있지 않나 하고 느낍니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든지, 안 아픈 채 오래 살아야 한다든지 하지 않아요. 알맞고 바르며 착하게 살아갈 만큼 돈을 벌면 되고, 몸이 아플 일이 없도록 내 일과 놀이를 맞아들일 줄 알면 돼요. 손금읽기란 내 삶읽기이면서 내 앞날읽기예요.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가야 아름다운가를 톺아보는 일이에요.

 1960년대에 처음 나왔고, 2003년에 한글판으로 옮겨진 사진책 《내 당나귀 벤야민》(달리,2003)을 읽습니다. 나어린 아이가 도시에서 시골로 삶터를 옮긴 다음 당나귀 한 마리를 만나 살가이 사귀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꾸밈없이 찍은 사진인지, 꾸며서(연출해서) 찍은 사진인지 좀 알쏭달쏭합니다. 이야기를 이루려고 이래저래 사진을 갖다 붙이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아빠하고 당나귀하고 나는 마을로 돌아왔어요. 나랑 아빠랑 엄마가 사는 마을은 지중해의 어느 섬에 있답니다. 전에는 큰 도시에서 살았어요. 그곳에는 자동차와 전차, 빌딩밖에 없어요. 나비며 알록달록 돌멩이들, 뱀, 고기잡이배 같은 건 없어요. 당나귀도 없고요. 나는 이곳이 훨씬 좋아요(11쪽).” 같은 글을 읽으면서 생각에 젖습니다. 도시에는 당나귀가 없습니다. 도시에는 당나귀가 없고 당나귀를 부릴 일이 없는데, 당나귀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나 동화책이나 이야기책이나 사진책이 나와서 읽힙니다. 도시에는 나비가 살지 못하는데, 도시 아이들은 나비 그림책을 읽거나 나비 다큐멘터리를 봅니다. 도시에는 자동차와 건물밖에 없으나, 도시 아이들은 자동차 다큐멘터리나 건물 그림책을 읽지 않아요. 도시 아이들한테 건물짓기를 가르치는 어른은 없습니다. 도시 아이들이 자동차 그림책이나 만화영화를 본다 하지만, 자동차 얼거리를 속속들이 배우는 일이란 없습니다. 자동차가 일으키는 배기가스가 얼마나 대단한지 가르치는 사람은 없고, 자동차를 만드는 동안 공해가 얼마나 생기는가를 깨닫는 어른은 없습니다.

 돌멩이 없는 도시입니다. 모래나 흙 없는 도시입니다. 뱀이나 개구리조차 없는 도시입니다. 파리랑 모기는 많은 도시예요. 그래, 바퀴벌레도 많겠지요. 그런데, 정작 파리랑 모기랑 바퀴벌레 이야기를 동화책이나 그림책이나 사진책으로 엮는 도시사람은 없어요. 모두들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쓰고 그리며 찍습니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이루어진 삶이면서 막상 시멘트와 아스팔트를 노래하지 않아요. 기계와 전자제품으로 둘러싸인 삶이면서 이들 기계와 전자제품을 꿈꾸지 않아요.

 사진책 《내 당나귀 벤야민》을 천천히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가끔은 산책을 해요. 나는 벤야민에게 우리 마을 골목들을 알려주어요. 우리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길도 알려주고요(22쪽).” 같은 대목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아간다면, 지중해가 바라보이는 곳에서 살아간다는 아이인데, 이 아이 삶은 당나귀하고 놀거나 바닷가로 가는 이야기만 나옵니다. 도시하고 멀리 떨어진 데에서 살아간다는 일이나 놀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애써 도시하고 동떨어진 데에서 당나귀랑 만날 까닭이 없어요. 이런 삶, 이런 나들이, 이런 줄거리라면, 그냥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훨씬 재미나면서 볼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도시를 떠나 살아가는 아이가 당나귀 하나를 만난 놀라움과 새로움을 ‘놀라운 사진’과 ‘새로운 사진’으로 보여주어야지요.

 당나귀랑 아이를 예쁘장하게 보여주는 사진이라면 사진 노릇을 못 합니다. 흙을 밟고 풀하고 사귀는 사진이 아니라, 집안에서만 당나귀를 쓰다듬는 사진만 잔뜩 집어넣으면, 이 또한 시골 당나귀 사진책답지 못합니다.

 책 하나 꾀한 뜻은 나쁘지 않습니다. 사진 찍은 솜씨도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책 하나를 일구는 사랑을 더 살피지 못했고, 사진 하나로 이룰 사랑이 무엇인가를 더 돌아보지 못했어요. 아이들이 함께 읽을 사진책이란, 아니 아이들과 즐거이 읽을 책이란, 아이들이랑 따사로이 어우러질 삶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나요. (4344.11.4.쇠.ㅎㄲㅅㄱ)


― 내 당나귀 벤야민 (레나르트 오스베크 사진,한스 림머 글,김경연 옮김,달리 펴냄,2003.6.30./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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