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미네 포도
후쿠다 이와오 그림, 미노시마 사유미 글, 양선하 옮김 / 현암사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착한 네 살 어린이와 어머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85] 후쿠다 이와오·미노시마 사유미, 《사유미네 포도》(현암사,2002)


 네 살 어린이는 동무나 이웃이랑 먹을거리를 얼마나 알뜰살뜰 나누어 먹을 수 있을까요. 네 살 어린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가 동무나 이웃이랑 먹을거리를 나누어 먹는 삶결 그대로 네 살 어린이 또한 똑같이 나누어 먹을까요.

 네 살 어린이는 무슨 노래를 즐겁게 부를까요. 네 살 어린이하고 함께 지내는 어버이가 언제나 즐거이 부르는 노래를 즐거이 부를까요.

 네 살 어린이는 제 입에 맛나다 여기는 밥이 있을 때에 어떻게 하나요. 혼자 먹어치우나요, 동무나 어버이나 이웃이나 둘레 사람을 불러 조금씩 나누어 먹는가요.

 네 살 어린이가 읊는 말은 한 살 적부터 배운 말인가요, 머리속에 깃들던 말인가요, 네 살까지 살아오며 둘레 어버이와 어른과 동무가 들려주던 말인가요.


.. 그렇지만, 뭐 친구들도 모두 놀러 와도 돼! 사유미네 포도, 조금씩은 나눠 줄 수 있으니까! ..  (29쪽)


 그림책 《사유미네 포도》(현암사,2002)를 읽습니다. 아버지가 읽기 앞서, 어머니랑 네 살 딸아이가 함께 읽습니다. 올들어 포도 구경을 아직 못 했다고 생각하는데, 시골집에서 살아가지만 이제 겨우 한 해밖에 안 되었으니 밭가에 심은 살구나무에서 꽃이 피기도 멀고, 포도나무는 이듬해에나 심을 수 있을 듯하며, 읍내 과일집에서 사다 먹는 수밖에 없습니다. 포도를 이야기하는 그림책을 읽으며 포도를 나누어 먹지 못하니 서운하지만, 비가 그치면 네 살 딸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워 읍내에 다녀오기로 하고, 나중에 포도맛을 즐기자 생각하며 《사유미네 포도》를 읽습니다.


.. 가장 많이 먹은 건 곰이에요. 말랑말랑 반들반들한 포도를 꿀꺽! 먹어 버렸어요 ..  (23쪽)


 그림책 《사유미네 포도》는 네 살 어린이가 글을 썼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어린이 사유미도 네 살일까 궁금한데, 노는 모습을 보면 네 살인 듯하고, 다섯 살이나 여섯 살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유치원에도 다니는 사유미요, 다람쥐와 새와 곰이 포도나무 포도를 깊은 밤에 슬쩍 따먹는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유미입니다.

 그림책 겉을 보면 줄거리가 어떻게 될는지 훤히 헤아릴 만합니다. 사유미는 곰이랑 다람쥐랑 새랑 포도덩쿨 밑에 둘러앉아 서로서로 조금씩 포도를 나누어 먹습니다. 그런데, 그림책 겉그림이랑 속그림이 조금 다릅니다. 어쩌면, 잘못 앉혔을 수 있고, 일본에서 나온 책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릅니다만, 사유미는 ‘머리 왼쪽을 고무줄로 묶었’습니다. 그림책을 펼치면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나와요. 그런데 겉그림은 거꾸로입니다. 29쪽에 모두 나오는 그림에서는 곰이 사유미 왼쪽에 앉습니다. 겉에서는 사유미 오른쪽에 앉아요. 왜 이렇게 뒤집어졌을까 궁금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뒤집힌 그림은 그림책을 읽으며 그닥 걸리적거리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살피면서 받아들일 마음은 주렁주렁 달린 포도송이를 올려다보며 어머니 말씀을 듣고 얌전히 기다린 착한 사유미 삶입니다.


.. 날이 더워졌어요. 포도가 보랏빛을 띄었어요. 이제 먹어도 돼요? 조금 더 기다리자꾸나. 단맛이 들 때까지. 엄마가 말씀하셔서 더 기다렸어요 ..  (10쪽)


 그림책을 보면 사유미만 나오고 사유미네 어머니는 나오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목소리로만 나옵니다. 포도덩쿨 둘레에서 사유미랑 사유미네 어머니랑 함께 손을 잡고 포도송이를 올려다보거나 가까이에서 냄새를 맡는다거나, 포도잎을 만진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어머니는 사유미랑 포도꽃을 함께 들여다보지도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이렇게 사유미만 나와서 날씨에 따라 옷차림이 바뀌거나 노는 모습이 달라지는 그림을 넣는 얼거리도 예쁘장하면서 좋지만, 곁에서 어머니가 뜨개질을 하든 밥을 하든 청소를 하든 동생을 돌보면서 젖을 물리든, 어머니가 함께 나와 일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에 한결 아름답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조금 더 ‘사람 사는 이야기 맛과 멋’을 펼칠 수 있지 않느냐 싶어요.

 어찌 보면, 마리 홀 에츠 님 그림책 《숲속에서》처럼, 어린이가 바라보는 누리는 어린이 눈길로 바라보는 누리일 뿐, 어른들 눈길로는 바라보지 못할 수 있어요. 사유미는 포도가 익는 모습을 눈으로 바라보고 코로 냄새를 맡으며 혀로 군침을 흘립니다. 사유미네 어머니는 똑같은 어른인 탓에 멀찍이 떨어져 ‘머리로 날짜를 어림’하면서 더 기다리자고만 말한다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곰이랑 둘러앉아 포도를 나누어 먹자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어머니는 직박구리나 종달새나 꾀꼬리하고 포도를 나누어 먹자고 꿈꿀 수 있을까요. 어머니는 다람쥐와 멧쥐와 들쥐하고 포도를 나누어 먹자고 그릴 수 있을까요.

 사유미네 어머니는 사유미한테 “포도는 내년에도 또 열릴(27쪽)”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유미는 “그럼 그땐 내가 먼저 실컷 먹(27쪽)”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사유미는 “너무 슬퍼서 그만 눈물이 핑그루루(25쪽)” 흘렀는걸요.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다시 기다렸는데, 기다린 사유미한테 돌아온 포도송이란, 짐승들이 먹다 남은 찌끄레기인걸요.

 사유미는 착한 아이입니다. 어머니 말씀을 잘 듣기에 착한 아이가 아닙니다. 소담스레 익은 굵직한 포도알을 누가 요렇게 얌체처럼 먹었는지 훤히 알지만, 모두들 불러 이듬해에 함께 나누어 먹자고 생각하기에 착한 아이입니다. 사유미는 예쁜 아이입니다. 해마다 고맙게 포도알을 맺어 나누어 주는 포도나무를 살포시 쓰다듬을 줄 아는 예쁜 아이입니다.

 사유미네 어머니도 사유미만 한 나이였을 때에, 이렇게 사유미처럼 생각하고 꿈꾸며 눈물을 짓다가는 밝게 웃었을까요. (4344.7.29.쇠.ㅎㄲㅅㄱ)


― 사유미네 포도 (후쿠다 이와오 그림,미노시마 사유미 글,양선하 옮김,현암사 펴냄,2002.7.20./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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