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버리다
첫째 아이가 책을 보고 나서 늘 방바닥에 잔뜩 어지른다. 방바닥을 짚을 수 없도록 어지른다. 아이는 여기에서 보던 책을 여기에 어지르고 나서는, 저쪽으로 가서 다른 책을 보고 새롭게 어지르며, 또다른 데에서 다시 새로운 책을 보면서 다시금 어지른다. 날마다 아이한테 백 번을 훨씬 넘게 이야기하지만, 아이는 책을 치우려 하지 않는다. 생글생글 웃으며 뒤로 물러선다. 못 들은 척한다. 딴 소리를 한다. 네 하고 대꾸하면서 치우겠다 하면서 안 치우고 다른 놀이를 한다.
자야 할 때를 훌쩍 넘기면서 잠들지 않으려는 아이한테 책을 치우고 자야지 하고 말한다. 아이는 언제나처럼 듣지 않는다. 이제 할 수 없으니 책을 버려야겠다 말하고서 책을 마당으로 내다 버린다. 아이가 운다. 이러면서 다른 자리에 어지른 책을 치우지는 않는다. 다른 자리에 어지른 책을 주워서 버리려 하니 울먹이면서 두 권을 들어 치우려 하다가 냅다 던진다. 아이가 냅다 던진 책 두 권까지 주워서 또 마당으로 내다 버린다. 아이는 그저 운다. 아이한테 쉬를 하라고 말한다. 아이는 쉬를 눈다.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그렇지만 책을 집으로 들일 마음이 없다.
많이 졸린 아이한테 자리에 누우라 말한다. 아이는 얌전히 누워서 더 울다가 이내 잠든다. 간밤에 꿈을 꾸며 버려진 책을 그리워 하는 잠꼬대를 하나 싶어 살펴보지만, 딱히 잠꼬대를 하지는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어떻게 나올까? 어제 버려진 책을 찾을까? 오늘도 어김없이 다른 책들을 새삼스레 어지르기만 할까?
아이를 꾸짖는 어버이는 바보이다. 아이를 울리는 어버이는 더 바보이다. 아이가 활짝 웃으며 놀도록 이끌지 못하는 어버이는 훨씬 바보이다. 나는 어버이 노릇이 아닌 바보짓만 한다. 나는 집일에 파묻혀 책을 못 읽고, 내 아이가 홀로 씩씩하게 책읽기를 예쁘며 착하게 하도록 돕지도 못한다. 스스로 바보라고 느끼며 서글퍼, 몹시 쑤신 등허리를 두들기거나 누르지도 못하며 아이 곁에서 함께 곯아떨어진다. (4344.7.19.불.ㅎㄲㅅ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