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해 앞서 쓴 글을 되읽습니다. 일곱 해 앞서하고 오늘하고 제 생각이나 삶은 다르지 않습니다. 혼자만 건사하기보다, 이렇게 올려 놓고 함께 읽고 싶습니다.)



 책을 말하는 책을 사서 읽다가


 저도 언젠가는 ‘책을 말하는 책’을 한 권 펴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잘나서 이런 책을 내고프지는 않아요. ‘책을 말하는 책’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채 읽히기 때문입니다. ‘책을 말하는 사람’들이 보는 책이 너무 한편으로 기울어진 채 울타리가 드높기 때문입니다. 사상과 철학을 하는 사람들은 서양사상과 서양철학에 너무 기울어진 한편, 번역을 보는 눈도 참 낮습니다. 모든 책이 말로 이루어지고 모든 사상과 철학을 말로 나눈다는 대목을 살핀다면 말을 얼마나 알맞고 제대로 쓰느냐는 무척 큰 대목입니다. 그러나 글쟁이나 지식인이 쓰는 ‘어렵고 딱딱한 말’로만 사상과 철학을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이 좁다란 마음이 슬프고 딱합니다.

 ‘책을 말하는 책’을 가만히 보면, 어린이책은 거의 빠지기 일쑤입니다. 더러 어린이책을 한두 권쯤 다룬다고 해도 얕잡아보기 일쑤입니다. 제대로 모르거나 여느 때에는 눈길마저 안 두니까요. 사진책이나 그림책이나 만화책을 제대로 살펴보고 애틋한 눈길로 이야기하는 책도 드뭅니다. 이런 책은 그저 몇몇 전문가들만 당신들끼리 아는 말과 이야기로 글을 쓸 뿐입니다. 그러니 이런 책을 즐길 수많은 사람들 앞에 더욱 높은 울타리가 쳐지는 셈입니다.

 엊그제 《강유원-책》(야간비행,2003)과 《서경식-소년의 눈물》(돌베개,2004)을 사서 조금씩 읽습니다. 《책》은 쓸데없는 군소리가 너무 많군요. 《소년의 눈물》은 출판사에서 편집 장난을 친 탓에 책값이 터무니없이 비쌀 뿐더러 번역이 참 어설픕니다. 원고지로 500장을 겨우 넘길까 말까 한 조그마한 책인데 쪽수를 부풀려 만 원짜리로 만들어 버리는 ‘옛날 인문사회과학출판사’ 모습에 눈물이 핑 돌 뿐입니다. 돈 좀 벌었나요. 그래서 눈이 풀렸나요. 아니면 돈에 눈이 멀어 눈이 풀렸나요.

 강유원 님은 한결 재미나고 신나게 책 이야기를 펼칠 수 있었습니다. 김규항 님은 강유원 님 책을 두고 “신문기자들이 보기에 아주 기분 나빠할 책”이지 않겠느냐며 즐겁게 웃는데, 정작 소담스레 돌아볼 대목이란 ‘신문기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독자’를 생각해야 합니다. 신문기자가 이렇게 보건 저렇게 보건 아랑곳할 일이 아닙니다. 독자인 우리들, 책손이자 책을 즐기는 우리들이 우리 삶으로 어떻게 바라보며 곰삭일 만한 책인가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김규항 님 말마따나 《책》이라는 책은 신문기자나 전문서평가라고 이름을 내미는 사람들한테는 ‘한방 먹이는 책’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촐하고 털털하게 책을 좋아하는 독자한테는 ‘껄끄럽거나 말이 지나친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긴, 이런 책도 있긴 있어야 하는데, ‘책을 말하는 책’이 너무 비좁고 치우친 채 막상 파고들어야 할 속살과 따숩게 보듬어야 할 수수한 삶하고는 동떨어졌다 보니 《책》이란 책이 책다운 제구실을 얼마 못한다는 생각까지 드는군요.

 책을 말하는 책이라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조금 더 책을 좋아하거나 넓은 눈으로 책을 볼 수 있도록 이끌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한테는 ‘책을 보는 일도 그 나름대로 뜻이나 재미가 있겠군’ 하고 느끼면서 집어들 수 있도록 이끌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한테 ‘나한테는 썩 달갑거나 좋은 책은 아니지만, 나 아닌 다른 사람한테는 도움이 되거나 좋을 수 있다’는 생각을 품게끔 이끌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농사를 짓는 마음으로 책을 읽고,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마음으로 책을 말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농사는 골고루 지어야 하고, 일과 놀이가 하나로 어우러지며 따로 쉬는날 없어도 즐겁게 일하고 즐겁게 놀듯 책을 말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고단한 하루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 고단한 일을 살짝살짝 쉬며 담배 한 개비 피워무는 때에 뒷주머니에서 꺼내어 읽을 수 있듯 책을 말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일이 놀이 같으면 힘들지 않고 따로 쉴 까닭이 없답니다. 놀이가 고된 일 같으면 즐길 수 없으나, 일이 놀이이며, 놀이가 일이 된다면 이때에는 삶입니다. 책읽기는 어떨까요. 일인가요, 놀이인가요. 일이자 놀이인가요. 버스에서도 읽고 전철에서도 읽으며 방구석에서도 읽다가는 공원에서도 읽는 한편, 밥 먹고 난 뒤에도 읽는다면 그야말로 우리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눈여겨보고 싶습니다. ‘삶이 되는 책’, ‘밥과 같은 책’, ‘물과 바람과 햇볕과 같은 책’을 말하고 싶고, 우리가 즐기는 책이란 바로 이렇게 내 삶으로 어우러질 수 있는 즐거움을 담아야지 싶습니다. 책을 말하는 책도 그렇고요. 온갖 책을 다 읽거나 고전이라는 책까지 두루 읽거나 새로 나오는 좋은 책을 틈틈이 찾아서 읽거나 헌책방에 묻힌 책을 두 손에 시커먼 먼지를 묻혀 가면서 캐내는 일도 좋습니다. 이런 일을 하면서 내 삶을 찾을 수 있다면 어떠한 책읽기이든 좋고 어떠한 책을 집어들든 좋습니다.

 내 삶을 찾지 않는 책읽기는, 하기 싫어도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내 삶을 찾는 책읽기는 밤늦게까지 일을 해도 몸이 고단하지 않고, 오히려 신나는 일이라고 봅니다. 책을 읽다가 밤을 꼬박 새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마음은 맑고 깨끗합니다. 책을 읽다가 그냥 잠이 들고 하품이 쏟아지는데에도 끝까지 읽어야 하나요? 이럴 땐 얼마나 괴롭습니까? 우리는 책을 읽다가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날이 새는 줄 모르며, 배가 고픈 줄 모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그저 재미가 있는 책이라서가 아닙니다. 내 몸과 마음을 살피거나 돌아보는 한편, 우리 삶을 하나하나 찾아나가는 책읽기이기 때문입니다.

 나 또한 책을 말하는 책을 펴내고 싶다는 생각은 여기에 뿌리를 둡니다. 우리 삶을 넓고 깊이 돌아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나날을 느끼고 살피며 헤아리기도 하고 기다리기도 하면서 즐기는 일에 뿌리를 둡니다. 책 하나가 모든 것이 아닙니다만, 책 하나로 여태껏 뜨지 못한 눈을 새롭게 뜰 수 있습니다. 책이 길을 열어 주지 않습니다. 책을 읽은 우리 스스로 길을 열어젖힐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갖춥니다. 책을 읽은 우리 스스로 새길을 열고 가시밭길 또한 헤쳐 나가면서 내 삶을 가꿉니다.

 책을 말하는 일이란, 내 넋과 꿈과 사랑을 말하는 일입니다. 우리 삶을 말하는 일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두를 말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사회라든지 제도라든지 문화라든지 정치라든지 경제라든지 자연이라든지 환경이라든지 가리지 않고 하나하나 살펴보고 말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일을 하는 저부터 즐거울 수 있다고 봐요. 이런 일을 즐겁게 해낸다면, 제가 이룬 열매를 즐길 분들도 즐거울 수 있을까요. 즐거울 수 있겠지요. 그래서 나는 부지런히 애쓰고 힘을 모아서 책을 말하는 책 한 권 꼭 펴내고 싶습니다. (4337.10.20.물.처음 씀/4344.1.13.나무.글투 다듬음.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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