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삶쓰기 빨래하기
아이는 이제 오줌을 잘 가린다. 그런데 아이가 앉는 변기가 작은지 요새는 변기에 오줌을 누어도 자꾸 샌다. 아이가 나날이 크기 때문에 아이 스스로 변기에 얌전히 앉고 바지도 제대로 내려야 하는데, 이렇게 안 하고 아무렇게나 앉아서 쉬를 하면 엉덩이며 허벅지며 바지며 다 튄다. 오늘 하루만 속바지 세 벌과 겉바지 두 벌을 버렸다. 오줌을 가려 빨래감이 줄었다 싶더니, 이제는 이렇게 새로운 빨래감을 쏟아낸다. 오줌으로 젖은 바지를 들고는 짜증을 낸다 한들 어쩔 길이 없다. 아이보고 바가지라도 뒤집어쓰고 소금 얻어 오라고 꾸중하지만, 이런다고 아이가 이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가뜩이나 물이 얼어 멀리 물을 길어오는 데까지 가서 빨래를 해야 하는데, 자꾸 빨래감이 나오면 속이 아프고 힘들다. 예전에는 아이가 오줌을 누어도 “그래, 잘 눠.” 하고 말한다든지 가만히 다른 일을 해도 되었으나, 이제는 밥을 하다가도 뭐를 하다가도 허리가 아파 살짝 드러누워 쉬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 아이를 변기에 제대로 앉혀야 할 뿐더러, 쉬를 눈 아이 밑을 닦아야 한다.
겨우겨우 아이를 재워 놓고는 느즈막한 저녁나절 아빠는 글조각 하나라도 건사해 볼까 싶어 셈틀을 켜는데, 멍하거나 띵할 뿐 도무지 손을 쓰지 못한다. 아이 옆에 나란히 누워 보기도 하고, 멀뚱멀뚱 앉기도 하지만, 좀처럼 새마음을 차리지 못한다. 살림하는 어머니들한테는 책읽기라든지 글쓰기라든지 꿈조차 꿀 수 없던 일이었을까. 책이고 글이고 뭐고 돌아볼 겨를 없이 바빠맞을 뿐 아니라, 어쩌다가 숨돌릴 겨를을 얻었달지라도 숨마저 못 돌리며 밤하늘 별바라기를 하며 한숨을 쉴 뿐인가. 아이 옆에 다시 드러누워 잠들고도 싶지만, 밤새 아이 기저귀를 갈며 잠을 뒤척일 테고, 새벽나절 일어나서 맑은 넋으로 글조각 조금 붙잡는다 하더라도 아이는 다시금 일찌감치 깨어나 아빠하고 놀자고 옷소매를 붙들겠지.
잠든 아이 기저귀를 채우는데 퍼뜩 깬다. 한동안 다시 잠들지 못하기에 가슴에 귀를 대고 토닥토닥거리다가는 “쉬 마렵니?” 하고 물으니, “응, 쉬 마려.” 한다. 기저귀를 푼다. 변기에 얌전히 앉힌다. 쉬를 깨끗하게 누도록 해 준다. 밑을 닦는다. 자리에 눕히고 기저귀를 채운다. 아이는 눈을 살며시 떴다가 감았다 한다. 다시 아이 가슴에 귀를 대고 통통통 뛰는 소리를 듣는다. 아이는 아빠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어 준다. 이윽고 일어나서 아이를 바라본다. 아이는 무거우면서도 보드랍게 눈을 떴다가 감는다. 깨어나려나 마려나. 허, 아이가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하며 돌아앉는다. 아이 숨소리가 고르게 들린다. 문득 뒤돌아본다. 아이가 새근새근 잠들었다. 고마우면서 미안하다. 아이 이마에 입을 맞춘다. 아빠도 졸립다. 아무래도 함께 쓰러져야겠다. 달리 어떻게 할 수 없다. (4344.1.5.물.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