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를 바라보는 눈길·마음·생각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14] 강형원, 《From the streets to the Olympics》(아트스페이스,1989)
이레쯤 지나면 스물아홉 달째 함께 살아가는 우리 아이가 며칠 앞서부터 “벼리가 그렸어.” 하고 말합니다. 아이는 제 엄마랑 아빠가 하듯이 볼펜을 손에 쥐고 종이에 그림 그리기를 즐깁니다. 엄마랑 아빠는 그림을 그린다기보다 글을 종이에 쓰는데, 곁에서 이 모습을 늘 지켜보면서 아이로서는 그림을 그리면서 배우는 셈입니다. 아이한테는 하루하루 둘레에서 마주하며 바라보는 사람들 삶이 곧바로 제 삶으로 스며듭니다. 아이한테 건네는 말마디라든지, 곁에서 어른들이 주고받는 말마디는 모조리 아이가 배울 만한 말마디가 됩니다.
아주 마땅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주 마땅히 잊고 말지만, 아이들이 저지르는 잘못이란 따로 없고, 청소년이 일으키는 범죄 또한 따로 없습니다. 어느 잘못이나 범죄이든 어른이 빚습니다. 어른이 저지르기 때문에 아이들과 푸름이들이 보고 배우거나 어느 결에 젖어들고 맙니다. 우리 어른들부터 옳고 바르며 착하고 어여삐 살아간다면, 아이들이든 푸름이들이든 옳고 바르며 착하고 어여쁜 매무새를 받아들입니다. 아이들이 티없는 눈망울로 온누리를 맑고 밝게 바라보며 껴안기를 바랄 노릇이 아니라, 어른들이 바로 이곳에서 오늘부터 티없는 눈망울로 온누리를 맑고 밝게 바라보며 껴안아야 합니다.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어른들은 예나 이제나 좀처럼 티없는 눈망울로 온누리를 바라보지 못합니다. 맑고 밝은 몸가짐으로 이웃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틀림없이 이 나라에는 몇몇 군사독재자가 서슬퍼런 칼과 총을 휘둘렀습니다. 몇몇 군사독재자에 앞서는 일본 제국주의자가 총과 칼을 휘둘렀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자에 앞서는 봉건시대라 하면서 계급과 신분이 나뉘었을 뿐 아니라 여느 사람들은 글을 배울 수 없었고 잔뜩 짓눌려 지내야 했습니다. 나랏님은 예나 이제나 나랏사람을 군인으로 끌고 가거나 노역을 시키거나 합니다. 지난날에는 그예 노역장으로 끌고 가서 성벽을 쌓거나 궁궐을 짓거나 하도록 시켰다면, 오늘날에는 일삯을 주고는 고속도로를 닦는다거나 4대강 정비를 한다거나 시킵니다. 굳이 사회 탓이나 나라 때문이라 하기는 어렵지만, 사회 물결이나 나라 흐름으로 본다면, 이 나라 여느 어른들은 해맑은 눈빛과 마음밭을 갈고닦을 겨를이 없기도 했습니다. 다만, 제아무리 사회랑 나라가 뒤죽박죽 어수선이라 할지라도 어른들 스스로 다소곳하며 참다운 넋을 추스를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른이기 때문입니다.
사진책 《From the streets to the Olympics》(아트스페이스,1989)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Los Angeles Times〉하고 〈Time Magazine〉 사진기자로 일하는 동안 1987년 6월부터 1988년 올림픽까지 한국땅을 밟으며 취재를 한 발자취를 그러모은 강형원 기자는 “나는 내가 간직하고 있는 사진 중 가장 잘 된 사진을 고르는 대신, 가장 적절한 순간들을 택하여 이 이야기를 전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합니다. 민주의 거리·노사분규·대통령 선거의 열풍·통일·재24회 서울 올림픽, 이렇게 다섯 자리로 나누어 사진을 실은 《From the streets to the Olympics》인데, 남녘나라 사진기자들은 도무지 담아내지 못한 모습들이 가득합니다. 이를테면 최루탄 조각 때문에 숨을 거둔 이석규 님 주검이 지나는 모습을 담은 사진에는, 저 멀리 대우조선소 모습이 비치고, 길가에는 여름철 풀이 우거졌는데, 호박꽃이 한창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시위를 하는 대학생들이나 최루탄을 사람 머리로 겨누며 쏘는 전투경찰 모습을 굳이 ‘흑백’사진이 아닌 ‘빛깔’사진으로 담습니다.
흑백 아닌 빛깔 사진으로 바라보니, 소주병을 불꽃병으로 삼은 아이들(대학생) 모습이 참 앳되어 보입니다. 게다가 플라스틱 바가지를 끈으로 꿰어 머리에 뒤집어쓴 모습에는 웃음이 절로 납니다. 물안경을 쓴 모습도 우습고요. 불탄 파출소에 앉은 경찰 아저씨 또한 우습습니다. 서로서로 똑같은 한겨레일 뿐 아니라, 옷과 무기를 내려놓으면 살가운 동무이자 이웃입니다. 서로서로 어디에서 만나고 어떻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짚지 못한 채 애꿎은 사람들끼리 툭탁거리고 맙니다. 기껏 스물을 갓 넘었을 전투경찰들은 왜 제 형이나 어머니나 작은아버지 같은 사람들한테 최루탄을 쏘거나 방패와 곤봉을 휘둘러야 했을까요. 무엇보다, 조그마한 짐차를 타고 선거유세를 하던 대통령 후보들 모습이 새삼스럽습니다. 그래요, 다들 이렇게 조그마한 짐차에 타고는 ‘선거유세를 할 때만큼’은 동네 골골샅샅을 누볐지요. 텔레비전 토론마당이 아닌 짐차 탄 선거유세였기 때문에 노태우 후보는 ‘투명방패’에 몸을 숨기며 억지웃음을 지었어요.
수많은 사진기자는 이애주 교수 살풀이춤을 가까이에서만 담으려 했으나, 강형원 기자는 아주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만히 동그랗게 둘러앉아 살풀이를 함께했는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모두 작은 사람이고 여린 사람이에요. 1988년 올림픽을 치르느라 숱한 사람이 철거민이 되었는데, 또다른 자리에서는 어슷비슷하게 가난하며 조그마한 어른들과 아이들이 길거리에 ‘태극기 든 동원행사’로 몰려나오면서도 호돌이 인형하고 손을 잡아 보며 좋다고 웃기도 했습니다.
사진책 《From the streets to the Olympics》에서 아쉽다 한다면, ‘올림픽이 이루어지는 빛’만큼 ‘올림픽 때문에 드리워진 그늘’이 짙었는데, 이 짙은 대목까지 담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강형원 님은 미국 시사잡지 사진기자로서 시사 이야기를 담아야 했기 때문일 터이나, 집회 마당이든 올림픽경기장 둘레이든 고작 십 분만 안쪽 골목으로 걸어서 들어가 보면 ‘짙게 드리워진 그늘’을 몸으로 부대낄 수 있었고, 몸으로 부대끼는 만큼 사진으로 엮을 수 있었어요. 반드시 ‘상계동 올림픽’을 강형원 님까지 담을 일은 아니나, 《From the streets to the Olympics》 같은 짜임새와 엮음새를 돌아본다면, 강형원 님이 한 발 더 따사롭고 조그맣게 발걸음을 내려 딛었다면 훨씬 사랑스러우면서 눈물겹고 애틋한 사진책으로 자리매겼으리라 생각합니다. 더욱이, 이 사진책은 ‘어둡고 슬픈’ 나날인데 ‘안 어두운 척 안 슬픈 척 내보이고 싶어하던 독재정권 무렵’ 이야기를 빛깔 고운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한결 차분하면서 한껏 티없는 눈결로 남녘나라 구비치는 한 자락을 보듬는 사진넋으로 서울 시내 한복판 가난한 사람들이랑 서울 시내 바깥쪽 수수한 사람들 삶 두 자락을 보듬어 주면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러나 다른 사람이 아닌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살다가 비로소 올림픽에 발맞추어 취재를 나온’ 강형원 님한테 이것저것 바랄 수 없습니다. ‘올림픽 뒤켠 그늘 자리’는 남녘나라에서 사진기를 쥔 기자들이랑 사람들이 살펴서 담아야 합니다. 남녘나라 사진쟁이 스스로 살뜰히 담지 못했거나 않았으면서 미국시민 강형원 님한테 함부로 바랄 일이 아닙니다. 저 머나먼 나라 미국땅에서 당신 고향나라가 민주와 통일을 이룰 수 있기를 꿈꾸며 보드라이 어루만지는 손길로 일군 이 사진책 하나만 해도 참으로 고맙습니다. “이 책은 3개의 언어로 쓰여졌다. 한국어, 영어, 그리고 사진어어가 그것이다.”라는 말마디처럼, 우리들 남녘나라 사람들은 이 책을 이루는 세 가지 말을 찬찬히 아로새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말과 아울러 살며시 감도는 ‘사랑말·믿음말·나눔말’ 세 가지 말마디를 나란히 느낄 수 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4343.12.12.해.ㅎㄲㅅㄱ)
― From the streets to the Olympics(민주화의 현장) (강형원 사진,아트스페이스,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