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43 : 전태일을 말하거나 가을을 말하거나
퍽 널리 쓰는 낱말 ‘케이블카(cable car)’는 영어입니다만, 이 낱말이 영어라고 느끼는 어른은 얼마 없습니다. 어른들한테는 익숙해서 널리 쓴달지라도, 이 땅에서 새로 태어나 자라나는 아이들을 헤아린다면,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가장 알맞춤하면서 좋은 우리 이름을 지어 주어야 할 텐데, 한낱 덧없는 꿈입니다.
영어 ‘케이블카’를 한자말로 적으면 ‘가공삭도(架空索道)’입니다. 줄여서 ‘삭도(索道)’라고도 합니다. 사람들은 영어 ‘케이블카’는 익숙하고 한자말 ‘삭도’나 ‘가공삭도’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무원은 ‘삭도’라는 말을 즐겨씁니다. 어느 날 문득 국어사전에서 ‘삭도’를 찾아봅니다. 말풀이 끝에 “‘하늘 찻길’로 순화.”라 적혔습니다. 그러니까, 영어로는 ‘케이블카’, 한자말로는 ‘삭도(가공삭도)’, 우리 말로는 ‘하늘차’입니다.
이 나라 공무원과 개발업자는 설악산 대청봉에 ‘하늘차’를 놓겠다며 으르릉거립니다. 어쩌면 설악산 대청봉 둘레에서 장사하는 분들 또한 대청봉에 하늘차가 놓이기를 바라겠지요. 이러거나 저러거나 더 많은 사람이 찾아들면 돈벌이가 늘거나 살림이 펴리라 생각하니까요. 나라에서 4대강사업을 한다고 외칠 때에도 적잖은 분들은 우리 터전이 무너지리라고는 느끼지 않고, 일자리가 늘어나리라 여깁니다.
오늘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여느 사람이거나 관청 사람이거나 정치판 사람이거나 커다란 건설회사 사람이거나 일자리를 생각합니다. 일자리를 얻을 수 있으면 그만입니다. 어떤 일자리일는지를 살피지 않고, 이 일자리에 내 삶과 땀과 품을 바칠 때에 우리 터전이 어떻게 달라질는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동차회사 노동자는 틀림없이 노동조합을 세워 노동권을 알뜰히 누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우리가 만드는 자동차는 어떤 자동차이며, 이 자동차를 이렇게까지 끝없이 만들면 우리 터전은 어찌 될까요. 같은 공장에서 일하더라도 자동차회사 노동자가 아닌 자전거회사 노동자로 거듭날 노릇이 아니랴 싶습니다. 더 큰 회사에서 더 벌이가 될 일자리를 찾아 ‘더 많이 번 돈’으로 자가용 장만하고 아파트 장만하며 좋은 밥거리 장만하는 삶이 아름다운 나날이 될까 궁금합니다. 더 작은 회사에서 일하든, 도시 아닌 시골에서 내 삶을 북돋우며 스스로 땅을 일구어 스스로 밥·옷·집을 마련할 때에는 아름다운 나날이 못 될는지 궁금합니다.
1970년부터 해마다 한 차례 돌아오는 11월 13일이 지납니다. 11월 13일에는 이름도 힘도 돈도 없던 여느 노동자 한 사람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날 이이 한 사람만 숨을 거두었겠느냐만, 노동법에 적힌 그대로 노동자가 노동권을 누릴 수 있기를 빌고 외치며 숨을 거두었습니다. 어느덧 마흔 해입니다. 노동자가 노동법대로 노동권 누리기를 바란 지 마흔 해이지만, 이제껏 하나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2010년 올해에 한글날이 오백 몇 십 돌이 되더라도 우리 말글 문화가 나아지지 못한 모습과 매한가지입니다. 게다가, 해가 갈수록 가을이 가을빛을 잃습니다. 겨울은 겨울다우려나요. 삶이 삶답지 못하고, 철은 철을 잃으며, 책은 책다이 읽히지 못합니다. (4343.11.14.흙.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