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커 토우마 1 - 안개 속
가나리 요자부로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우리 도시에는 어떤 ‘숲 발자국’이 있을까
 [살가운 만화 52] 노마 로쿠, 《토우마》 1∼3권



- 책이름 : 토우마 1∼3
- 그림 : 노마 로쿠
- 글 : 카나리 요자부로
- 옮긴이 : 김은명
- 펴낸곳 : 서울문화사 (2009)
- 책값 : 한 권에 4200원씩


 (1) 오늘


 며칠 동안 뭇사람들하고 골목마실을 했습니다. 골목마실이란 다름아닌 ‘내가 살아가는 이 동네에 어떤 이웃이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느끼거나 만나려고 천천히 걸어다니는 일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어슬렁어슬렁 달릴 수 있으나 두 다리로 더욱 슬금슬금 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골목 한켠에서 오래도록 둘러볼 수 있고, 동네이웃하고 만나는 자리에서는 한참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라밖으로 나들이를 떠나면서 나라밖 사람하고 부대끼며 더 너른 세상을 만나고 배우듯, 골목마실을 할 때에도 내 삶터 가까이나 둘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새롭게 부대끼면서 더 너른 세상을 만나고 배웁니다.

 저는 늘 다니는 골목마실이기에 어디에 무엇이 있고 철과 때와 날씨에 따라서 골목 느낌이 어떻게 다른가를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새삼스럽지 않다 할 만한 모습이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는 모두 새삼스럽습니다. 어릴 적 태어나서 살던 골목을 만나든, 여태까지 한 번도 겪거나 본 적이 없는 골목을 거닐든, ‘바로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손자국과 발자국을 만납니다.

 오래된 문패를 쓰다듬고, 굵직하게 박혀 있는 나무전봇대를 어루만집니다. 오래된 골목동네에는 으레 나무전봇대가 남아 있습니다. 시멘트전봇대를 박으러 시설이나 차를 몰고 들어올 수 없어 이대로 잘 살아남아 있곤 합니다. 해마다 찾아오는지는 알 길이 없는 제비집을 올려다보고, 이제는 거의 안 쓰는 예전 유리문을 들여다봅니다. 올록볼록 무늬가 새겨진 유리문은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마련한 유리문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유리문에 붙인 판박이가 스무 해나 서른 해, 때로는 마흔 해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집을 보기도 합니다.

 토박이가 없다는 인천이라 하지만, 외려 이제는 토박이가 많은 인천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제는 웬만한 도시이든 시골이든 이렇게 세월 손때가 구석구석 남은 살림집과 골목집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쉰 살 먹은 살림집들로 온 골목이 가득가득한 동네가 우리 나라에 몇 곳이나 남아 있겠습니까. 부산쯤? 목포쯤?


.. “젠장, 이틀 동안이나 아무런 단서를 못 잡았잖아.” “당연하죠, 형사님. 이렇게 넓은 산에서 겨우 한 사람을 찾는 거니까요. 자연을 너무 쉽게 보면 안 됩니다.” … “내가 무섭지 않았나요?” “예.” “!! 그런 것까지 알 수 있나요?” “발자국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진짜 당신은 자연을 사랑하는 착한 마음의 주인입니다.” … “영우라는 동물은 멋지게 왼발, 오른발을 나란히 걷거든. 그래서 발자국이 이렇게 한 줄로 난 거란다. 그래서 발자국이 이렇게 한 줄로 난 거란다. 어때 재미있지? 이 여우는 이쪽에서 이쪽을 보면서 걸어왔어. 신중하게 주위를 신경쓰면서, 아주 천천히 걸어왔어.” … “아무 소리가 없다. 너무 조용해서 귀가 아프다! 내 청력 때문인가?” “숲도 살아 있습니다.” ..  (1권 6쪽, 31, 50, 71쪽)


 추운 겨울날 온몸이 얼어붙으며 골목마실을 하다가 문득문득, ‘두껍게 껴입는 옷과 살갗에 스치는 바람’이 아니라면 겨울임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모습이 무엇인가 궁금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95%쯤 되는 정보를 눈으로 받아들이거나 느낀다고 하는데, 눈을 감고 코나 살갗이나 귀로 느낄 수 있는 겨울 살림살이와 매무새는 얼마나 될는지 궁금합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휘휘 둘러볼 때에, 골목동네라는 곳에서든 아파트숲이라는 곳에서든 얼마나 겨울다움을 남기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흙 한 줌 느긋하게 길바닥에 엎어질 수 없는 도시입니다. 골목길이라고 해서 흙길이 아닙니다. 골목사람이 흙을 짊어지고 와서 조촐하게 골목밭을 일구고 골목꽃그릇을 가꾸니 흙내음이 가까스로 살아남아 있을 뿐입니다. 흙내음을 싣고 흐르는 바람결이 없고, 꽃내음을 담아 오가는 바람물결이 없습니다.

 흙이 없으니 지렁이가 없습니다. 풍뎅이도 없습니다. 나비도 없고 벌도 없습니다. 골목밭을 알뜰살뜰 일구는 동네 외딴 구석에서는 가끔가끔 벌나비를 만나지만, 도심지에서 벌나비를 만날 길이란 없습니다. 벌나비뿐 아니라 잠자리도 없고 사마귀와 메뚜기도 없습니다. 소금쟁이와 물방개를 만날 수 있겠습니까. 우렁이나 조개를 마주할 수 있겠습니까. 인천 앞바다 드넓은 갯벌은 국제공항 닦는다며 모조리 덮고 메우는 바람에, 또 예부터 항구를 넓히고 공장을 세우며 아파트를 박는다면서 하나하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한강을 타고 흘러드는 쓰레기물에다가 인천 앞바다를 빙 둘러 세운 숱한 중화학공장에서 흘러나오는 쓰레기물이 겹치며 갯벌이 죄다 숨을 거두었습니다.

 참말로 이런 도심지 골목길에서 느끼는 봄이란, 여름이란, 가을이란, 겨울이란 무엇일까요. 나는 이런 도심지 골목길에서 우리 삶을 이루는 자연을 어느 만큼 맛보거나 느낀다고 할 수 있을까요.

 뭉게구름 없고 무지개 없는 이 땅인데. 소나기 없고 눈부시게 맑은 햇살 사라진 이 땅인데. 살랑바람도 꽃바람도 죽어 버린 이 땅인데. 이 땅에서 우리들은 어떠한 목숨붙이가 되어 서로 부대끼면서 복닥복닥하고 있는가요.


.. “도시의 규칙은 너무 복잡하죠. 때로는 단순한 규칙 따윈 보이지 않게 되죠. 일어서지 못할 정도까지 걷고 난 후에는,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쉬면 됩니다.” … “하지만 생물은 쉬지 않으면 안 됩니다. 더 활동하기 위해서, 더 생산해 내기 위해서. 그 사실은 오늘 숲에서 배웠습니다. 전 이제 수는 걸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만약 저를 해고하신다고 해도!” … “정말 찾을 수 없게 되는 건 그렇게 말하고 포기할 때입니다.” … “이 세상은 약육강식이다. 약자는 항상 강자의 그림자에 겁을 먹으며 살아가야 해. 하지만 그런 약자도, 가끔 목숨을 걸고 강자에게 도전할 때가 있단다. 자신이 소중한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서, 승산이 없는 상대라 해도 말야! 넌 제비꽃을 피해서 걷는, 마음씨 착한 사람이더구나.” ..  (1권 74, 78, 125, 156∼157쪽)


 골목마실을 함께하는 분들하고 동네 만두집에 들어갑니다. 지난날 오성극장이 있을 때에 극장 앞에서 만두를 굽거나 쪄서 팔던 길가 만두집입니다. 따뜻하게 구운 만두를 씹어먹는데, 만두집 라디오에서 ‘연봉 100억이 넘는 사람 …… 연봉 1억이 넘는 사람 ……’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소식이 흘러나옵니다. 라디오이든 방송이든, 또 신문이든 인터넷이든, 온누리에 퍼지는 소식은 하나같이 돈하고 얽혀 있습니다. 이 땅 우리들이 만들어 내는 소식과 정보는 온통 돈과 얽혀 있을 뿐 아니라, 돈을 다루기만 합니다.

 돈이 아닌 삶을 다루는 소식과 정보는 참으로 드뭅니다. 돈이 아닌 사랑을 나누는 소식과 정보는 더없이 드뭅니다. 지식과 학식을 뽐내는 책이 아닌, 사랑과 믿음을 나누는 책을 만나기도 어렵습니다. 돈맛과 돈바람이 아닌 따순바람과 너른바람을 고이 담고 있는 책을 찾아 읽기도 어렵습니다. 나날이 수없이 쏟아지는 책인데, 이 책들 가운데 바람내음과 구름내음과 비내음과 눈내음과 바다내음과 땅내음을 고이 싣고 있는 책은 손가락 몇 개로 꼽아야 할까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책을 읽는 이는 책을 읽는 이대로, 책 아닌 인터넷이나 방송에 기대는 이는 이들대로, 머리속을 꽉꽉 채우는 지식보따리만 큽니다. 사람다움과 목숨다움을 살리는 이야기는 거의 눈꼽만하다 싶을 만큼 초라하게 내동댕이치고 있습니다.


.. “이 자연은 우리 것이 아니니까요.” … “큰소리나 메일로는 전해지지 않는 것도 있단다. 상대의 호흡, 체온의 온기, 심장의 박동.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건 말과 문자만이 아니란다.” ..  (1권 166, 211∼212쪽)


 오늘을 살아간다지만, 도무지 오늘 무얼 하며 살아가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알 길이 없는 주제에 날마다 길을 나섭니다. 골목길을 나서고, 책길을 찾습니다.
 





 (2) 어제


 오늘은 사진기를 들고 골목길을 누빕니다. 오늘은 아기를 한손에 안은 몸으로 사진기를 목에 걸고 골목길을 누빕니다.

 어제는 자전거 짐바구니와 짐받이에 신문을 가득 싣고 골목길을 누볐습니다. 외딴 골목이나 다세대주택이나 아파트에서는 들머리나 어귀에 자전거를 세우고 겨드랑이에 신문뭉치를 낀 다음 후다닥 달리며 신문을 돌렸습니다.

 봄부터 겨울까지 실장갑 하나를 낀 채 신문딸배(신문배달) 자전거를 달렸습니다. 형과 동생은 모두 오토바이를 탔지만 저는 자전거를 달렸습니다. 자전거로 달리면서도 오토바이 딸배보다 먼저 일을 마쳤고, 맨 먼저 일을 마치고 지국으로 돌아와서 형들하고 함께 먹을 아침을 차렸습니다.

 왼손으로는 무거운 자전거를 붙잡으며 달립니다. 짐바구니에는 쉰 부, 짐받이에는 백칠십 부를 실은 자전거입니다. 제가 돌린 ㅎ신문은 그나마 신문 두께가 얇았고, 다른 이들이 돌린 신문은 두께도 두껍고 부피도 많았습니다. ㄷ신문 딸배 아저씨는 단단하고 굶은 쇳가락을 용접해서 짐바구니를 둘 달고도 짐받이에는 머리 높이까지 올라오도록 신문을 싣고 달리곤 했습니다. 이웃 우유딸배 아주머니는 우유상자를 일곱 개 자전거에 붙이며 골목을 누볐습니다.

 신문딸배들은 누구나 왼손으로 손잡이를 버티고, 오른손으로는 바구니에서 신문 한 부를 슥 꺼냅니다. 이윽고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놀려 신문을 꿴 다음 오른허벅지에 탁 치며 반으로 접고, 다시금 엄지와 검지를 놀려 신문을 꿰어 오른허벅지에 또 한 번 탁 치며 다시 반으로 접습니다. 그러고는 손아귀로 슥 움켜쥐고 손목힘으로 휙 날리면 골목집 대문 안쪽으로 종이비행기처럼 시잉 날아가서 골목집 신발 놓는 섬돌에 톡 하고 떨어집니다.

 골목집은 집 모양이 모두 다른 까닭에, 어느 집은 이렇게 자전거나 오토바이에 탄 채로 ‘한손 접기(한손으로 신문을 그 자리에서 접기)’를 하며 넣지만, 대문에 걸치는 집이 있고 우유주머니에 넣는 집이 있으며 창문을 살짝 열고 끼워 놓는 집이 있습니다. 2층에 사는 분이라면 자전거를 달리면서도 어깨와 팔뚝힘을 써서 휘익 하고 던져 넣고 지나갑니다. 자전거를 멈추고 신문을 넣으면 그만큼 시간을 잃기 때문에, 웬만하면 자전거에 탄 채로 한손으로 휙휙 넣고 다른 골목으로 접어듭니다. 나중에 신문딸배 일이 익숙해진 뒤에 3층집에 신문을 넣을 때에도 자전거에 탄 채로 가끔 해 보았는데, 3층집까지 자전거에 탄 채로 넣자면 여느 내기로는 퍽 힘듭니다. 저도 두 번 가운데 한 번은 실패해서, 엉뚱한 데에 떨어진 신문을 다시 주워 넣느라 시간을 더 빼앗기기 일쑤였습니다. 좀더 익숙한 사람들은 4층집뿐 아니라 5층집까지 신문을 잘 접어서 던져 넣습니다. 접는 매무새가 여느 종이접기하고는 많이 다른데, 제대로 접지 않으면 잘 날아가지 않을 뿐더러, 갓 나온 신문이 구겨집니다. 날아갈 때에도 잘 날아가고, 독자네 문에 톡 부딪히며 바닥에 착 펼쳐질 때에 구김살이 사라지도록 옳게 접을 줄 알자면 신문딸배 다섯 해는 되어야 합니다.


.. “자신이 유괴되면서도 범인인 엄마의 마음을 배려했었으니까요. 그래요, 언제나 어린애처럼 행동하는 건 어른이고, 어린이는 그런 어른을 보면서 어른 이상으로 잘 자라는 겁니다.” … “왜 이렇게 모두들 열심히 수색하는 거죠?” “누구라도 한 번쯤은 미아가 된 경험이 있겠죠? 어디로 가야 할지 불안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무섭고, 누구라도 그런 힘든 생각을 하고 있다면, 빨리 구해 주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른이 되었을 때 그 아이는 숲을 싫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  (2권 54, 151쪽)


 신문딸배를 하는 동안 저도 모르게 날씨읽기를 배웠습니다. 신문딸배들은 날씨읽기를 방송이나 신문에 기대지 않습니다. 그냥 길을 가면서 느끼고, 집안에서도 밥을 먹으며 느낍니다. 빨래를 하고 널면서 느끼고, 신문값 걷으러 다닐 때에 느낍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앞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느끼고, 밤골목에 가만히 서서 밤바람을 살갗으로 맞으면서 느낍니다.

 왜냐하면 우유딸배한테는 비가 오더라도 우유가 젖어서 못 쓸 일이 없지만, 신문딸배한테는 비가 와 신문이 조금이라도 젖으면 죄다 못 씁니다. 여느 비 안 오는 날에도 뜻하지 않게 젖을 수 있고 찢어질 수 있습니다. 골목집에서 기르는 개가 쉬를 눈다든지 물어뜯을 수 있으니까요. 잠자리에 들기 앞서 이튿날 비가 올는지 안 올는지를 가늠하고, 비가 오면 언제쯤 얼마나 올까를 헤아립니다. 신문을 돌릴 무렵에 비가 올 때하고 신문을 다 돌리고 나서 비가 올 때에는 신문돌리기가 다릅니다. 비가 쏟아질 때와 질금질금 흩뿌릴 때에도 신문돌리기가 다릅니다. 신문딸배가 먹고사는 일인 사람은 날씨방송이나 날씨기사가 아닌 내 몸과 느낌으로 날씨를 알아채야 합니다. 바람을 느끼고 햇살을 느끼며 바람과 햇살에 실린 물기가 어떠한가를 느껴야 합니다.


.. “너무 피곤해요. 당신 질문에 대답하는 게 힘들 정도로.” “숲속에서 행방불명된 사람을 찾는 일은 그 정도의 중노동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미아를 찾아도 표정을 지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아마 당신을 찾아 주셨던 분들도 똑같지 않았을까요? 어둡고 넓은 숲속을 신경을 곤두세우고 돌아다니면서 몇 시간씩이나 사람을 찾아 헤맨다는 건 우리처럼 매일 그 일을 하는 사람들로도 힘든 작업인데, 갑자기 불려나온 익숙치 않은 자원봉사자들이면 더더욱 그렇죠.” ..  (2권 158쪽)


 신문딸배로 먹고살던 지난날은 벌이가 영 시원찮을 뿐더러, 신문값 떼어먹고 내빼는 사람들 때문에 늘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그러나, 도심지에 살면서도 도시에서 어떻게 자연을 느끼는가를 배웠습니다.

 도심지에서도 자연을 느끼며 살아가는 길은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신문을 다 돌리고 나서 아파트 난간에 기대어 떠오르는 해를 바라본다든지, 달동네 오르막에서 홀로 자전거에 기댄 채 새벽 햇살을 느낀다든지 하는 하루하루가 즐거웠습니다. 술이 얹혀 꺽꺽대는 사람들까지 모두 잠든 깊은 새벽에 조용히 홀로 일어나 내 자전거 페달 소리와 골목길을 내닫는 발자국 소리를 가만가만 울리는 하루하루는 기뻤습니다. 언제나 잠들어 있는 도시 골목길에서, 늘 맑게 깨어 있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갓 찍어 잉크냄새 짙은 신문이 내 몸과 옷과 손에 짙게 배어드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3) 글피


 아기는 힘을 알맞게 맞추며 손놀림을 하기에 아직 이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잎사귀가 아야 해. 잎사귀는 살그머니 대면서 귀여워 해야지.” 하고 넌지시 일러 주면, 아기는 이 말귀를 잘 알아들으면서 꽃잎사귀를 살그머니 쓰다듬거나 아주 천천히 손끝으로 톡 갖다 댑니다.

 그런데 갓난쟁이가 아닌 다 큰 어른들은 “그렇게 마구 다루면 어떡해?” 하고 일러 주어도 한귀로 흘리거나 “내 맘이야!” 하면서 나무를 차고 밟고 꽃잎사귀를 후두둑 잡아당겨 뜯습니다. 갓난쟁이들은 우리를 둘러싼 자연 삶터 목숨붙이들을 고이 아끼고 돌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곧잘 알아듣습니다. 우리 스스로 자연 삶터에서 태어난 또다른 목숨붙이이고 푸나무와 우리는 동무요 이웃이라고 일러 주면 잘 알아듣습니다. 그러나 머리통 굵은 우리 어른들은 사람과 자연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가를 알아듣지 못할 뿐 아니라 알아들을 마음조차 없습니다. 흔히 일컫는 대로 우리 어른들은 돈한테 노예가 되어 끄달리고 휩쓸린 채 살아갑니다.


.. “거리에서의 난 너무나 무력하다. 범인의 낌새도 알아차릴 수 없는 상태다. 도시는 내가 살아가는 숲과는 완전히 다르다. 자연은 전부 아스팔트로 덮혀져 발자국도 남지 않는다. 이곳에 트래커인 내가 있을 곳은 없는가?” ..  (3권 68쪽)


 만화책 《토우마》 1권, 2권, 3권을 읽습니다. 《토우마》는 꼭 세 권으로 마무리된 짧은만화입니다. ‘토우마’는 《토우마》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입니다. 이이 토우마는 숲에서 사람들한테 숲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나들이길을 알려주는 길동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토우마라는 사람은 ‘발자국사람(발자국을 좇으면서 정보를 얻는 사람. 영어로 하면 트래커)’입니다. 발자국사람이기 때문에 발자국을 살피면서 이 발자국을 남긴 목숨(사람과 사람 아닌 뭇목숨)들이 어디로 걸어가는지, 걸으면서 어떤 마음인지, 언제 걸어서 지나갔는지를 읽어냅니다.

 토우마는 처음부터 숲길동무는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경찰이었습니다. 경찰 가운데 발자국으로 범인을 찾는 일을 맡고 있었습니다. 경찰로 당신 삶을 꾸리면서 오래오래 당신 일에 보람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경찰일을 하면서 겪은 큰 아픔 하나를 씻어내고자 숲으로 찾아들었습니다. 숲은 토우마 마음에 남겨진 생채기를 고이 얼싸안으며 쓰다듬었고, 토우마는 당신을 살려주고 보듬은 숲을 사람들한테 제대로 알려주면서 숲사랑이 바로 내 삶을 사랑하는 길임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렇지만 거의 모든 ‘숲을 찾아온 사람들’은 토우마가 들려주거나 보여주려고 하는 숲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아니, 깨닫지 못합니다. 아니, 느끼지 못합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숲사랑을 느끼려 하지 않으니 깨닫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하겠습니다. 그저 어쩌다 찾아온 숲이요, 공원이라고 마련한 숲이니 숲인가 보다 할 뿐입니다. 도시에서는 술이며 담배며 자가용이며 노래방이며 오락기이며 파친코이며 갖가지 재미난 놀거리와 즐길거리가 넘쳐나는데, 굳이 다리 아프게 숲을 거닐 까닭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고 합니다. 세상은 더 많은 돈과 더 높은 이름과 더 큰 권력을 좇으면서 달려가는데, 숲속에서 나무 한 그루와 풀 한 포기와 꽃 한 송이를 들여다보는 일이 무어 그리 대수이느냐고 합니다.


.. “그보다도 과장님! 보셨어요? E포인트 지점요!” “어?” “역시 산위는 아래와 계절이 다른 느낌이더라구요. 벚꽃이 지금도 활짝 피어 있어 너무 멋져요. 못 보셨으면 꼭 한 번.” “필요없어.” ..  (3권 113쪽)


 만화책 《토우마》를 보려면 내 삶이 어디에서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를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 스스로 내 삶을 한결 아름답게 가꾸고픈 마음이 있는지를 헤아려야 합니다. 나부터 우리 식구와 동무와 이웃들하고 오순도순 어우러지고픈 뜻이 있는가를 곱씹어야 합니다. 내 주머니에 담기는 기쁨을 찾으려는 삶인지, 내 손과 발을 힘껏 움직여 나와 이웃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즐거울 길을 찾으려는 삶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발자국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다루는 지식 만화가 아닌 《토우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잃거나 잊은 자연을 찾자는 가르침 만화가 아닌 《토우마》이기 때문입니다. 바쁘고 고단한 물질문명 현대 사회를 비판한다는 만화가 아닌 《토우마》이기 때문입니다.

 가슴으로 느낄 만화요, 가슴으로 받아들일 만화이며, 가슴으로 살아낼 이야기를 함께 찾자는 만화입니다.


.. “네? 감사장요? 수사에 협력해 줘서 표창한다고요. 저어, 어느 오오카미 토우마 씨에게 전화 거신 건가요? 우리 사무실의 오오카미 토우마는 자연을 사랑하는, 표창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그런 가이드입니다.” ..  (3권 182쪽)


 만화책을 덮으며 돌아봅니다. 우리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우리 터전은 어떠한 삶터인가 하고. 우리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어른이 되면, 우리 아이는 이 터전을 어떻게 일구거나 보듬으면서 살아갈까 하고.

 우리 아이가 살아갈 우리 나라 터전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만한 터전인지 궁금합니다. 사람하고 다른 뭇목숨이 사이좋게 어우러지면서 다 함께 흐뭇할 만한 우리 나라 터전일는지 궁금합니다. (4343.1.30.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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