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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상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ㅣ 어른을 위한 동화 18
한강 지음, 봄로야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5월
평점 :
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11.23.
다듬읽기 283
《눈물 상자》
한강
봄로야 그림
문학동네
2008.5.22.
꿈과 길이란 늘 스스로 빚고 짓고 가꾸면서 일으킬 테니, 어느새 천천히 이루는 하루라고 느낍니다. 어른이 되어도 아이로 자라던 나날은 몸마음에 나란하고, 어릴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모든 하루는 새롭게 어울려서 흘러가는구나 싶습니다.
꿈을 그리는 글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이와 달리 ‘꿈시늉’을 하거나 ‘눈물짜기’나 ‘웃음짜기’를 하는 글은 여러모로 허울스럽습니다. 굳이 시늉글을 쓰거나 ‘짜내기글’을 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멋부리려고 쓰는 글이라면 덧없습니다. 목소리만 높이려는 글이라면 부질없습니다.
스웨덴이라는 나라에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라는 할머니가 있어서, 스웨덴 어린이한테 이야기꽃을 듬뿍 베풀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이원수라는 할아버지가 있어서, 한나라(한국) 어린이한테 이야기밭을 넓게 베풀었습니다. 스웨덴 할머니도 어리거나 젊을 적에는 꽤 철없이 굴고 놀았습니다만,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천천히 철들며 사랑을 지피는 길을 느껴서 글을 일구었습니다. 한나라 할아버지도 어리거나 젊을 적에는 참 철없이 굴고 바보글(친일시)도 썼습니다만, 1945년을 맞이한 뒤 크게 뉘우치고서 1980년에 숨을 거두기까지 군사독재자하고 맞서서 어린이를 지키는 보금자리 노릇을 톡톡히 했습니다.
아이를 안 낳고 안 돌본 분은 이원수 할배가 쓴 〈햇볕〉이라는 노래를 거의 모릅니다. 아이를 낳고 돌보았어도 〈햇볕〉이나 〈겨울 물오리〉를 모르는 분도 수두룩합니다. 이원수 할배는 ‘뉘우침글(참회록)’을 글꽃(동시·동화)으로 지폈습니다. 이이가 온삶이 뉘우침글이었기에 〈햇볕〉이나 〈겨울 물오리〉 같은 노래뿐 아니라 〈불새의 춤〉 같은 어마어마한 글까지 써낼 수 있었습니다. 〈불새의 춤〉은 전태일 님이 온몸을 불살라 박정희한테 맞선 지 석 달이 채 안 되어 선보인 글인데, 이 나라는 1987년까지 ‘빨간글’이라고 여겨 아무도 못 읽게 막은 바 있습니다.
《눈물 상자》를 읽고서 한숨이 나왔고, 여러 달 한숨을 가다듬었습니다. 어린이가 읽을 글이라는데 왜 이다지도 일본말씨에 옮김말씨가 춤추어야 할까요? 왜 ‘무늬한글’을 써야 할까요? 우리는 한글을 이렇게 미워해도 될까요? 우리는 한글과 한말과 한빛과 한넋과 한얼을 이렇게 싫어하고 내치고 짓밟고 따돌리고 들볶아도 될까요?
아무나 철들지 않으나, 누구나 철들 수 있습니다. 아무나 글을 쓰면 안 되지만,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어마어마하고 엄청나게 사랑이라는 빛을 베풀 줄 아는 엄마요 어머니에 한어미(할머니)이기에 어질면서 얼찬이로 어울리며 서게 마련입니다. 엄마와 어머니와 한어미는 엄지(으뜸)이기도 합니다.
조선 오백 해 내내 ‘암클’이라는 이름을 받은 우리글입니다. ‘수클’이라는 중국글(한문)을 붙잡은 꼰대와 힘꾼(권력자)은 조선이 무너진 뒤에는 곧장 일본말씨로 갈아탔고, 1945년 뒤에는 영어로 갈아탔습니다. 일본말씨랑 옮김말씨는 바로 ‘조선 오백 해 가부장권력자 + 일본부역자·조선총독부 + 군사독재자 꼰대말씨’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노벨글꽃을 받은 분이라면, 이제는 “어진 어른으로 어울리는” 숨빛으로 철들려고 마음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요? 여태까지 쓴 모든 부끄러운 일본말씨랑 옮김말씨를 말끔하게 우리말씨로 가다듬어서 새로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요? 한강 씨가 쓴 글을 읽을 적마다 이 무늬한글이 너무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ㅍㄹㄴ
《눈물 상자》(한강, 문학동네, 2008)
어느 마을에 한 아이가 살고 있었다
→ 어느 마을에 아이가 있다
→ 어느 마을에 사는 아이가 있다
5쪽
아이에게 특별한 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아이가 남다른 줄 알아차린다
→ 아이가 다른 줄 알아본다
5쪽
누군가가 자신의 장난감을 빼앗거나
→ 누가 제 장난감을 빼앗거나
→ 남이 제 장난감을 빼앗거나
6쪽
갓 돋아난 연둣빛 잎사귀들이 햇빛에 반짝이는 걸 보고 아이는 눈물을 흘렸다
→ 갓 돋아난 푸른잎이 햇빛에 반짝이자 아이는 눈물을 흘린다
→ 갓 돋아난 잎이 햇빛에 반짝이니 아이는 눈물을 흘린다
6쪽
아빠는 울고 있는 아이를 볼 때마다 화를 냈다
→ 아빠는 우는 아이를 볼 때마다 버럭댄다
→ 아빠는 우는 아이를 볼 때마다 발칵댄다
8쪽
커다란 검은색 가방을 들고 있었다
→ 크고 검은 가방을 들었다
9쪽
꾸벅 목례만 남기고 돌아섰다
→ 꾸벅하고서 돌아선다
→ 목절을 하고서 돌아선다
9쪽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고 있었다
→ 눈시울이 뜨겁다고 느낀다
→ 눈시울이 뜨겁다
11쪽
무엇인가가 아저씨의 외투 속 가슴께에서 동그랗게 부풀어오르는 게 보였다
→ 아저씨 겉옷 가슴께에서 동그랗게 부풀어오르는 뭐가 보인다
→ 아저씨 겉옷 가슴께에서 뭐가 동그랗게 부풀어오른다
11쪽
아이는 문득 자기가 하루 중에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그 파란 시간이라는 걸 깨닫고는 멍한 얼굴로 서 있었다
→ 아이는 문득 하루 가운데 파란때를 가장 좋아하는 줄 깨닫고는 멍한 얼굴이다
→ 아이는 문득 하루에서 파란무렵을 가장 좋아하는 줄 깨닫고는 멍하다
13쪽
이것들을 모두 수집하는 데 무려 이십 년이 걸렸단다
→ 이 모두를 모으는 데 스무 해나 걸렸단다
→ 이렇게 모두 모으느라 꼭 스무 해 걸렸단다
14쪽
자신이 우는 이유가 순수함이나 아름다움보다는 막막함에 가깝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 맑거나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먹먹하기 때문에 우는 줄 알기 때문이다
→ 깨끗하거나 아름답다기보다는 갑갑해서 우는 줄 알기 때문이다
24쪽
한없는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 그냥 부끄럽다
→ 그저 부끄럽다
→ 너무 부끄럽다
24쪽
순수한 눈물에 대해서 더 얘기해주세요
→ 맑은 눈물을 더 들려주셔요
→ 깨끗한 눈물을 더 얘기해 주셔요
24쪽
담요 속에 얼굴을 묻고
→ 담요에 얼굴을 묻고
36쪽
눈물들을 모두 삼킨 뒤
→ 눈물을 모두 삼킨 뒤
45쪽
울음이 격해지자
→ 흐느끼자
→ 몹시 울자
45쪽
투명하고 미묘한 빛들이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 물방울 같고 고운 빛이 햇빛에 반짝인다
→ 맑고 눈부신 빛이 해를 받아 반짝인다
63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