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천천히 (2023.5.20.)
― 부산 〈우리글방〉
길그림책(지도책)을 살 수 있은 지 얼마 안 됩니다만, 우리는 까맣게 모르기 일쑤입니다. 이제 손전화를 켜면 웬만한 길을 다 짚는다는데, 이렇게 길그림을 열기까지 사람들을 억누르던 나라요, 아직 굴레짓은 곳곳에 고스란히 남습니다.
나란히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들려주고 들으며 놀아야 사랑을 이룹니다. 얼굴 없이 줄줄이 서는 곳에서는 윗분이 밑놈한테 시키는 말만 맴돌면서 아무런 사랑씨가 깃들지 못 합니다.
부산에 일하러 온 길에 보수동을 들릅니다. 아니, 부산에서 일하니까 보수동부터 들러서 책내음을 맡습니다. 문득 〈우리글방〉도 둘러봅니다. 어쩐지 〈우리글방〉은 갈수록 ‘고른 책을 안 팔아’서 멀리하고 싶습니다. ‘책벌레가 고른 책’이면 아무리 수수한 책이어도 ‘뭐가 있으리라 여기’는 책집지기가 꽤 있습니다. 일부러 웃돈을 부르기도 하는데, ‘제가 예전에 골랐을 때 팔지 않은 책이 책꽂이에 고스란’한 모습을 늘 느낍니다. ‘좋은책이 이렇게 많다’고 뭇사람한테 자랑하려고 ‘고른 책을 안 팔고’서 늘어놓기도 한다고 느낍니다.
사투리란, 살림짓는 사람이 스스로 숲빛으로 지은 새말입니다. 들숲메바다를 스스로 읽기에 새말이자 새길인 사투리를 누구나 짓습니다. 들숲메바다를 스스로 등지니까 새길도 새말도 모르는 채 “남과 나라가 시키는 대로 길들며 서울말에 갇힙”니다. 새말인 사투리를 쓸 줄 알기에, 새넋으로 새책을 마주합니다.
서울에서도 서울 한복판이 아닌 ‘강서·강동·성북·구로·노원·송파 끝’에서 일하는 분들이 으레 “변두리 작가” 같은 말을 쓰더군요. 서울 아닌 모든 고장에서는 인천도 부산도 대구도 광주도 곧잘 “변두리 작가” 같은 말을 쓰고요. 그런데 삶터에 ‘복판·가생이’가 어디 있을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복판·가생이’가 아닌 ‘보금자리·둥지’인걸요. 우리는 우리 터전을 밝혀서 “대구 지음이”나 “고흥 지음이”나 “서울 지음이”처럼 수수하게 말하면 스스로 빛나고 즐겁게 새눈을 틔울 만하리라 봅니다.
아직 우리나라 글밭은 말과 삶과 마음을 짓는 길이 아닌, 억지로 만들거나 쥐어짜는 굴레에 길듭니다. 길을 걸어야 할 텐데, 길을 안 걷거나 길들이거나 길들기만 하는 곳에서는 모두 엉킬 뿐인데 말이지요. 우리나라 책밭도 매한가지일 테지만, 글밭도 책밭도 살림밭도 새롭게 갈아엎으려고 호미질을 하는 이웃님이 한 분씩 늘어납니다. 저는 ‘호미이웃’을 기다리고 지켜봅니다. 저는 호미이웃하고 ‘호미놀이’하듯 조촐히 모임을 꾸리려고 즐겁게 온곳으로 천천히 이야기마실을 다닙니다.
ㅍㄹㄴ
《러시아의 작가와 사회》(로날드 힝글리/이항재 옮김, 푸른산, 1989.7.10.)
《미혼의 당신에게》(다나까 미찌꼬, 김희은 옮김, 백산서당, 1983.1.25.)
《中國地圖冊》(편집부, 中國地圖出版社, 2001.1.)
《날랜 사랑》(고재종, 창작과비평사, 1995.5.10.)
- 서초구 이동도서관
《동아 어린이 문고 24 이성계》(김기용 엮음, 동아출판사, 1990.7.5.)
《호호호》(윤가은, 마음산책, 2022.2.5.)
《150cm 라이프 3》(타카기 나오코/한나리 옮김, 시공사, 2016.1.25.)
#たかぎなおこ #150cmライフ #다카기나오코
《카나자와 셔터 걸》(키리키 켄이치/우서윤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9.12.15.)
#桐木憲一 #金澤シャッタ-ガ-ル
《송곳 1》(최규석, 창비, 2015.5.20.)
《송곳 2》(최규석, 창비, 2015.5.20.)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