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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는 것
유모토 가즈미 지음, 사카이 고마코 그림, 김숙 옮김 / 북뱅크 / 2025년 1월
평점 :
지난봄에 느낌글을 쓰기도 했는데,
옮김말씨만 따로 짚으면서
다시 글을 추슬러 본다.
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11.20.
다듬읽기 281
《살아있다는 것》
유모토 가즈미 글
사카이 고마코 그림
김숙 옮김
북뱅크
2025.1.20.
요즈음 어린배움터에서 길잡이(교사)는 ‘게이트키퍼’ 노릇까지 맡는다고 합니다. 우리말로는 ‘문지기’일 텐데, ‘자살예방 교육’을 따로 해야 한다더군요. 불늪(입시지옥) 탓에 숱한 푸른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뿐 아니라, 목숨을 건사하더라도 몸마음이 곯거나 다치거나 망가지기 일쑤입니다. 진작부터 어린씨한테도 불늪바람이 불었습니다만, 나라에서 고작 하는 짓이 ‘게이트키퍼·자살예방’이라니 바보스럽습니다. 허울만 번드레하게 씌운들 안 달라지거든요. 불늪부터 없앨 노릇이고, 온통 서울로 쏠린 얼뜬 얼개를 갈아엎을 일입니다. ‘불늪 + 서울바라기’를 그대로 둔 채 쳇바퀴를 돌린들, 어린씨와 푸른씨뿐 아니라 어른씨도 나란히 고달프고 지칩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橋の上で”를 옮긴 그림책입니다. “다리에 서서” 새로 흘러갈 앞길을 이야기하며 스스로 곰곰이 어떤 ‘다리’로 이을는지 생각한다는 줄거리입니다. 우리말 ‘다리’는 몸과 발을 잇는 곳이면서, 이곳과 저곳을 잇는 길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냇물이나 멧골 사이를 지나려고 놓는 길다란 자리도 ‘다리’로 나타내요. 다가서려는 다리요, 다가오는 다리이며, 다다르면서 닿는 다리입니다. 이곳(나)하고 저곳(너)을 잇는 다리이기에, 두 길을 오가는 마음이 만나서 ‘사람’으로서 ‘사랑’을 바라보는 틈을 낼 수 있습니다. 일본 그림책에 흐르는 이런 밑뜻을 헤아리면서 한글로 옮겨야 비로소 ‘삶’을 풀어낼 텐데, 낱말뜻도 낱말결도 그다지 살피지 못 한 옮김말씨는 매우 안타깝습니다. “다리 위”나 “풀 위”는 ‘하늘’을 가리킵니다. “-고 있다”나 ‘것’이나 “-게 되다”나 ‘-ㅁ’ 같은 군더더기 옮김말씨는 다 털어내야지요.
ㅍㄹㄴ
#湯本香樹實 #酒井駒子 #橋の上で
《살아있다는 것》(유모토 가즈미·사카이 고마코/김숙 옮김, 북뱅크, 2025)
다리 위에서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던 날
→ 다리에서 냇물을 내려다보던 어느 날
→ 다리에 서서 냇물을 내려다보던 날
2쪽
스웨터는 낡고 보풀이 일어서 몇 년인지 몇십 년인지 오래 갈아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어
→ 털옷은 낡고 보풀이 일어서 몇 해나 몇 열 해나 오래 안 갈아입은 듯했어
→ 윗옷은 낡고 보풀이 일어서 아주 오래 안 갈아입었구나 싶었어
6쪽
그냥 보고 있었어요
→ 그냥 봐요
8쪽
그냥 있는 거예요
→ 그냥 있어요
8쪽
사실은 생각하고 있었어
→ 그러나 생각해 보았어
10쪽
그저 묵묵히 강물이 늘 같은 곳에서 하얗게 물결치는 걸 내려다보고 있었어
→ 그저 말없이 냇물이 늘 같은 곳에서 하얗게 물결치는 빛을 내려다봐
→ 그저 조용히 냇물이 늘 같은 곳에서 물결치는 하얀빛을 내려다봐
19쪽
어서 어딘가로 가 주면 좋을 텐데
→ 어서 어디로 가기를 바라
→ 어서 좀 가기를 바라
19쪽
그 물은 어두운 땅 밑 수로를 통해 너한테로 오고 있지
→ 물은 어두운 땅밑에서 흐르며 너한테 오지
→ 물은 어두운 땅밑길을 거쳐서 너한테 오지
20쪽
아까보다 더 커진 것 같았어
→ 아까보다 더 큰 듯해
34쪽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 듯한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
→ 누구하고 눈이 마주친 듯해서 아리송했어
→ 누구랑 눈이 마주친 듯싶어 놀랐어
36쪽
그 다리를 지나지 않게 되었고
→ 그 다리를 지나지 않고
39쪽
아스라한 반짝임이 점점 가까이 다가와
→ 아스라이 반짝이다 차츰 다가와
→ 아스라이 반짝이며 조금씩 가까워
43쪽
솟아 나오는 물의 작은 파문까지
→ 솟아나오는 작은 물결까지
43쪽
물 주변에는 반드시 누군가가 있지
→ 물가에는 반드시 누가 있지
44쪽
모두 제각각 생각을 하면서 풀 위에 앉아 있거나 뒹굴거나 하고 있어
→ 모두 생각을 하면서 풀밭에 앉거나 뒹굴어
→ 저마다 생각을 하면서 풀밭에 앉거나 뒹굴어
44쪽
내가 거기 있는 것을 보고는 미소 지으며
→ 내가 거기 있는 줄 보고는 웃음지으며
→ 내가 거기 있으니 웃으며
45쪽
그때 만약 강에 뛰어들었다면 전부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이지
→ 그때 냇물에 뛰어들었다면 만날 수 없던 사람들이지
→ 그때 냇물에 뛰어들었다면 아무도 만날 수 없었지
46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