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비문학



  이제 ‘비소설’이라는 일본말씨가 사라지는가 싶었는데, ‘비문학’이라는 일본말씨는 버젓하더라. 마치 ‘소설·문학’만 ‘글’이고, ‘소설·문학’이 아니라면 “글이 아니라”는 뜻으로 함부로 붙이는 ‘비(非-)’이다. 이 일본말씨는 일본이 총칼로 나라를 일으켜서 먼저 일본부터 윽박질러서 ‘전쟁 불참자’인 일본사람을 ‘비국민’으로 몰아세우면서 싹텄다. 일본 우두머리와 벼슬아치는 ‘전쟁 불참자’는 ‘비국민’이라며 괴롭혔고, ‘전쟁 반대자’는 ‘반국민’이라며 짓밟았다.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우리말’을 가르쳐야 할 텐데 아직 ‘국어’라는 허울에 얽매인 대목을 고치려면 조금 더 걸릴지라도, ‘비소설’과 ‘비문학’ 같은 슬픈 일본말씨는 배움터와 책마을부터 털어낼 줄 알아야 할 텐데 싶다. 우리는 우리말이 있을 뿐 아니라 우리글이 있다. 우리글이 처음에는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으되 “누구나 누리는 글”은 아닌 채 얼추 500해가 흘렀다. 이러며 조선이란 나라가 무너졌고, 일본이 새삼스레 쳐들어오던 그무렵 홀로서기(독립운동)를 하던 작은 아저씨 주시경 님이 ‘한글’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지어서 널리 알렸다.


  그런데 우리글 이름인 ‘한글’을 ‘주시경’이라는 작은 아저씨가 지은 줄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마치 1400년대 무렵부터 ‘한글’이 있은 줄 잘못 아는 사람이 넘친다. 글바치를 비롯해서, 길잡이도, 나라일꾼도, 수수한 엄마아빠 모두 마찬가지이다. 모든 이름에는 다 다른 삶과 뜻과 살림과 숨결이 흐른다. 이 얼거리를 “안 살피”고 “안 생각”한다면 언제나 쳇바퀴에 스스로 가두는 늪이다.


  우리한테 ‘한글’이 있는 줄 안다면, 우리말을 ‘한말’로 가리켜야 마땅하지 않을까? ‘한류(K-)’라 일컫는 이름은 ‘韓-’이라는 한자가 아닌, ‘한-’이라는 “그냥 우리말”이어야 맞다. ‘한겨레·한가람·한나라·한빛·한길·한새·한소’하고 한동아리인 ‘한글·한말’일 적에 ‘한살림·한사랑·한지붕·한노래·한춤·한밥·한옷·한집·한꿈·한별·한꽃’으로 깨어날 만하다.


  ‘학교·입시’에 몸담는 어린이와 푸름이로서는 “이 나라 어른들이 쓰는 ‘비소설·비문학’ 같은 얄궂은 말씨”를 그냥 외워야 할 테지만, 아이곁에 있는 어른부터 제대로 목소리를 내어야지 싶다. ‘비(非-)’나 ‘반(反-)’이나 ‘불(不-)’을 붙이는 모든 말씨는 바로 힘꾼(권력자·독재자)이 사람들을 윽박지르고 괴롭히려고 만든 죽음말씨일 뿐 아니라, 사람들 스스로 다투고 싸우고 갈라치기를 하라면서 퍼뜨린 불씨이기도 하다. ‘비문학’ 같은 철없는 이름을 떨치면서 ‘비·반·불’이라는 철딱서니없는 일본죽음말씨도 털 노릇이다.


  글을 ‘글’이라 하지 않으면서 ‘입시 공부’를 시키는 자리에서 함부로 쓰는 일본말씨나 죽음말씨는 무척 많다. 그냥그냥 우리나라에 젖어들었거나 퍼졌다고 여기면 우리 스스로 죽음하루인 셈이다. 찌꺼기와 부스러기와 쓰레기를 품고서 살아야겠는가? 밥을 먹고 나서 몸에 똥오줌을 고스란히 모셔야겠는가? 쓸고닦으면서 치울 여러 가지는 말끔히 치울 때에 비로소 새롭고 정갈하게 이 길을 걸을 수 있다. 2025.11.1.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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