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마음으로 책읽기 (2024.3.15.)
― 부산 〈파도책방〉
  모든 책은 책집지기 손길을 닿아서 책시렁에 놓일 테니, 이곳을 찾는 분들 손끝을 따라서 새롭게 피어나기를 기다리지 싶습니다. 빽빽한 날도 있고 느슨한 날도 있습니다. 들어오자마자 나가는 날이 있고, 여러 해를 차분히 기다리는 날이 있어요. 다독이고 다듬는 손길이 깃들고, 다가와서 담는 손길로 떠납니다.
  왼손은 새빛이고 오른손은 오래빛입니다. 두빛이 맞물리면서 한빛을 이룹니다. 외빛으로는 외곬로 기울지만, 왼오른이 나란한 두빛은 언제나 새빛으로 깨어나요. 둘은 천천히 나아가면서 차분합니다.
  부산으로 이야기마실을 오는 길에 〈파도책방〉부터 들릅니다. 가볍게 물결치는 책을 마주하면서, 새삼스레 물결칠 이야기를 그리면서 책마실을 누립니다. 언뜻 보면 모든 헌책은 ‘버림받은’ 종이뭉치입니다. ‘헌’을 ‘버린’으로 여기는 분이 매우 많아요. 그런데 우리말 ‘헌’은 ‘한’과 나란합니다. 허름하거나 허무는 ‘헌’이 있되 허허바다와 허허벌판처럼 가없는 하늘을 닮은 ‘헌’이 있어요. 오래도록 두려는 헛간처럼 두고두고 되읽을 만하기에 헌책입니다.
  마음을 어떻게 기울이느냐에 따라서, 똑같다고 여기는 책을 누구나 새롭게 새겨서 샘물처럼 생생하게 받아안을 수 있습니다. 흔한 책이란 없고, 잘나가는 책도 없으며, 묻히거나 사라진 책도 없어요. 그저 오늘 우리 스스로 마주하면서 지피는 책 한 자락이 있습니다.
  숱한 헌책집지기는 글쓴이나 펴냄터를 모르고도 아름책을 놀랍게 쏙쏙 찾아내어 책시렁에 건사했습니다. 아예 글을 모르는 분이 꾸리는 헌책집도 있어요. 저는 그다지 안 궁금했는데, 온나라 헌책집 할매할배는 문득문득 “그런데 자네, 내가 어떻게 ‘존책(좋은책)’을 골라내는지 궁금하지 않나?” 하고 물으셔요. “네? 저는 존책이나 군책(궂은책)을 가리지 않아요. 낱말책을 엮는 길에는 모든 책과 모든 말을 살펴야 하거든요.” 하고 대꾸를 하는데, “거 참, 젊은이 참 재미없게 사네. 내는 글을 몰라도 그냥 느낌으로 알아. 아 저기 수북한 헌종이 사이에 뭔가 나를 부르는 빛이 있어. 그래서 그 수북한 종이더미를 뒤적이다 보면 ‘오, 이 책이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책이 있지. 난 그 책을 누가 썼는지 무슨 줄거리인지도 모르지만, 그냥 느껴서, 책이 불러서 건사하지. 그러면 꼭 그런 책을 교수님이나 작가님들이 골라내면서 ‘아니 사장님 이 귀한 책을 어떻게 찾으셨습니까?’ 하고 물어봐. 그런데 내가 글씨도 모르는데 뭐 할 말이 있나? 그저 ‘네, 틀림없이 교수님이 이 책을 바랄 듯해서 찾아놓았습니다’ 하고 말지.” 하고 들려줍니다.
ㅍㄹㄴ
《침묵의 세계》(막스 피카르트/최승자 옮김, 까치, 1985.8.10.첫/2004.5.10.2판4벌)
《브레히트 硏究》(이원양, 두레, 1984.4.30.첫/1991.12.20.증보판)
《사진의 유혹》(데이브 요라스/정주연 옮김, 예담, 2003.5.25.)
《감정 독재》(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13.12.20.첫/2013.12.30.2벌)
《標準 大學音樂通論》(나운영, 이상사, 1962.11.3.첫/1969.4.10.4벌)
《짓 1》(김은이 엮음, 한국춤모임 짓, 1987.12.5.)
《걷는 사람, 하정우》(하정우, 문학동네, 2018.11.23.첫/2020.7.15.25벌)
《딴따라, 나 있는 그대로》(윤복희, 문예당, 1997.7.5.)
《담론》(신영복, 돌베개, 2015.4.20.첫/2017.1.26.22벌)
《유시민과 함게 읽는 스위스문화이야기》(유시민, 푸른나무, 1998.9.4.첫/2000.10.2.3벌)
《유시민과 함게 읽는 오스트리아문화이야기》(유시민, 푸른나무, 1998.9.14.첫/2001.8.10.3벌)
《유시민과 함게 읽는 이탈리아문화이야기》(유시민, 푸른나무, 1998.9.14.첫/2001.8.10.3벌)
《유시민과 함게 읽는 미국문화이야기》(유시민, 푸른나무, 1999.1.10.첫/2001.6.40.3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