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나무가 운다
가지가 잘린 나무가 운다. 줄기가 잘린 나무가 운다. 다가서는 사람이 사라진 나무가 운다. 부릉부릉 매캐하고 빵빵빵빵 시끄러운 쇳덩이가 새벽부터 밤까지 끝없이 달리는 둘레에서 나무가 운다.
풀죽임물을 뒤집어쓴 나무가 운다. 윙윙 앵앵 챙챙 날카롭고 시끄럽게 풀을 치는 앙칼진 쇳소리에 나무가 운다. 너른길에 쇳덩이가 넘쳐나느라 사람들이 귀퉁이에 내몰린 채 뒤엉켜서 밀치고 밀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나무가 운다. 시골길에서 크고작은 짐승뿐 아니라 자그마한 나비와 풀벌레와 뱀과 개구리와 작은새를 골고루 들이받고서 멀쩡히 씽씽 달려가는 쇳덩이를 바라보는 나무가 운다.
서울에서도 시골에서도 나무가 운다. 어느 날 갑자기 뿌리뽑혀서 사라져야 할는지 두렵고 걱정스러워 나무가 운다. 마당은커녕 높다란 곳에 붕뜬 채 온통 잿더미(시멘트)로 둘러싸인 칸에 사람들이 웃돈을 치르고서 스스로 갇히는 모습을 멀거니 쳐다보는 나무가 운다.
손등에 나비를 앉힐 줄 모르고서 손전화만 쥔 채 하염없이 들여다보는 사람물결을 내려다보는 나무가 운다. 꽃가루를 미워하고 그늘을 싫어하면서도 뙤약볕을 꺼리는 알쏭달쏭한 사람들 마음에 헷갈리는 나무가 운다. 땅을 북돋울 거름으로 돌리려고 가랑잎을 떨구는 나무인데, “왜 이렇게 잎을 많이 떨궈서 귀찮게 해!” 하고 사납게 쏘아보는 사람이 많아, 나무는 그만 가슴이 덜컹 내려앉아서 운다.
나무가 운다. 풀이 운다. 꽃이 운다. 나비가 울고 풀벌레가 운다. 개구리가 울고 구렁이가 운다. 하늘소가 울고 꾀꼬리가 운다. 소쩍새가 울고 왜가리가 운다. 다들 운다. 오직 사람만 안 운다. 서울사람도 안 울고 시골사람도 안 운다. 책을 쥐건 책을 팽개치건 이제 우는 사람은 드물다. 우는 시늉인 사람은 많고, 돈이 없어 우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나무한테 마음이 없는가? 나무한테 이야기가 없는가? 나무한테 숨결이 없는가? 나무한테 눈귀가 없는가? 나무한테 팔다리가 없는가? 나무한테 머리와 몸이 없는가? 나무한테 넋과 얼이 없는가? 나무한테 빛이 없는가? 나무한테 사랑이 없는가?
나무는 울면서 죽어간다. 나무는 웃으면서 살고 싶다. 나무는 온누리 뭇숨결하고 들숲메를 이루면서 바다를 품는 파란별을 그리는 꿈으로 노래하고 싶다. 나무는 나를 바라보고, 나무는 너를 바란다. 나무는 너를 만나고 싶고, 나무는 나를 반기고 싶다. 2025.9.21.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