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코찔찔이
부산과 광주와 서울을 오간 금토일월화 닷새가 지났다. 시골에서 마녘으로 하늬녘으로 집으로 서울로 오가는 길은 늘 찬바람(에어컨)이기도 했으나, 두다리 뻗고 쉴 짬은 밭았다. 긴긴 시외버스를 타며 눈을 감으니, 몸은 나더러 작작 움직이라고 나무란다. 새달 한가을 첫날에 코찔찔이가 되어 골이 띵하다.
내가 쓰는 자리셈틀(데스크탑)은 보임판(모니터)이 숨을 다했단다. 셈틀은 멀쩡하단다. 두 아이가 쓰는 셈틀은 어느덧 열한 해가 되어서 숨을 다한 듯하단다. 빛살림(전기제품)을 한꺼번에 바꾸는 일인데, 예전에도 살림갈이는 한몫에 했다고 느낀다.
작은아이하고 저잣마실을 나와서 다리를 쉰다. 책을 챙겼으나 읽지는 못 한다. 한가을 한낮볕은 하나도 안 뜨겁다. 곧 겨울이겠구나. 해는 시골들녘을 고루 비춘다. 시골버스 일꾼은 시골버스가 쩌렁쩌렁 울릴 만큼 온갖 노래를 귀청 찢으려는 듯 튼다. 이제 집으로 잘 돌아가서 눕자. 책벌레라고 하더라도 코찔찔이로 훌쩍이는 날에는 책을 못 편다.
손길을 기다리는 책한테 다가서려면 몸과 마음이 나란히 튼튼할 노릇이다. 휘청거리거나 훌쩍거리거나 비틀거리거나 찔찔대는 몸이라면 골이 띵하면서 마음이 흔흔들할밖에 없다. 저녁을 차려놓고서 자리에 누워서 곰곰이 짚는다. 몸 어느 쪽이 어떻게 왜 삐걱대는지 헤아린다. 왼손으로 오른팔을 주무르고서, 오른손으로 왼팔을 주무른다. 왼손으로 왼허벅지와 왼종아리와 왼발을 주무르고, 오른손으로 오른허벅지와 오른종아리와 오른발을 주무른다. 이제 두 손을 맞잡고서 열손가락을 나란히 주무른다. 머리와 이마와 눈밑과 코밑과 귀밑을 주무른다.
한가을 시골집은 한가득 풀벌레노래로 빛난다. 풀벌레는 늦가을까지 노래를 베풀 테지. 나는 나한테 무엇을 베풀며 이 하루를 마무리하는가. 2025.10.1.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