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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 할머니의 인생 수업
전영애 지음, 최경은 정리 / 문학동네 / 2024년 12월
평점 :
독문학 전공, 세계적인 괴테 연구자로서 알고 있는 전영애 교수님의 이야기는 간간히 들어왔다. 독일어권 문학을 읽을 때면 번번히 번역자로서 그녀의 이름을 만날 수 있었다. 자세한 건 알 수 없었지만 왠지 전영애라는 이름에는 열정이라는 단어가 따라왔다. 나에게 그녀는 인생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강인한 이미지, 하지만 이면에 타인을 배려하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는 따뜻한 이미지가 함께 했다. <시인의 집>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는 망설임없이 읽었다. 10여년도 더 전에 읽어서 책 내용이 자세하게 떠오르지는 않지만, 문학에 대한 그녀의 열정적인 삶의 모습은 강하게 남아있다. 이후 그녀가 출연한 방송도 챙겨보고, 유튜브도 보면서 '여백서원'엘 들러보고 싶어졌다. 두 번째로 만나는 이 책 <괴테 할머니의 인생 수업>을 읽고나니 더 더욱 직접 한 번 만나뵙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나이가 들면서 무엇을 시작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커지고, 더욱 더 유용성을 따지게 되고, 타인에 대한 포용감도 줄어듦을 느낀다. 삭막해져가고 있다고 해야하나? 교수님의 말씀을 듣다보니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인생 선배로서,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녀의 이야기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책을 선택하는 것에서도 지식이 우선이었던 내가 문학에 대한 필요를 느끼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내 옆의 좋은 이웃만 만나는 게 아니라 몇백 년 전의 어느 누구까지 만나는 일입니다. 엄청난 일이지요. 그것을 어떤 출세의 한 방편으로 생각한다면 별로 득이 없겠고요. 크고 바른 어떤 것, 진정한 '앎'에 대한 사랑이쟎아요. 문학도 철학도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자신이 세계를 좀 풍요롭게 하는 일인 것 같아요. 함께하는 세상도 자연스레 좋아지고요. 그래서 저는 조금은 쓸모없어 보이는 문학이 사실은 삶에 무척 많은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공부의 범위는 얼마든지 활짝 넓힐 수 있습니다.-p21
살면서 이런 저런 붙임을 겪을 때 문학이 위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괴테 연구자로서 괴테의 작품 속 글들을 인용한 부분이 많았는데, 용기를 얻을 수 있는 문장들이 있었다. 문학이 주는 힘이 이런거구나. 좋은 문장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살릴 수도 있지 않을까싶다. 문학에 대한 사랑 외에도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중요한 말씀들도 해주셨다.
이게 더 좋을까 저게 더 좋을까 너무 재는 것보다는 자신이 선택한 것을 믿고, 쭉 가보기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일을 해도 힘든 점은 있으니 산 하나 정도 오르는 공은 들여야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힘이 부칠 때 적어도 이건 내가 좋아서 택한 것이라는 마음가짐이라도 있어야 끝까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p39
추진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시작하는 것이 뭐가 어려워하겠지만, 시작을 하기 전에 너무 먼 미래를 내다보고 고민하다가 시간만 보낸 경험이 많은 나로서는 저 말씀에 너무 공감이 되었다. 지금은 포기하더라도 시작하고보자 마음먹고 하다보니 좋아서 꾸준히 밀고 나가는 일들이 있다. 이럴까 저럴까 고민만 했다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었다.
괴테를 연구하면서 그녀가 만났던 여러 장소, 여러 사람들, 자신이 이루어냈던 성과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솔직히 부러운 맘이 컸다. 그녀가 이루어 낸 성과보다는(물론 대단한 것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위해 쫓아다녔던 삶이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노년이 된 지금도 그 열정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고, '괴테 전집'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마무리하는 일을 하고 계시다는 것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그녀의 바램대로 그 시간이 주어지기를. <시인의 집>을 읽을 때만해도 괴테가 그리 궁금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젠 그가 너무 너무 궁금해졌다. 특히, 욕심에 구입하고는 책장을 장식하는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던 <파우스트>를 드디어 꺼낼 순간이 다가왔다.
여백서원,괴테마을을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놀라운 모습들을 만났다. 사람들이 댓가를 바라지도 않고 자발적으로 힘을 보태주는 모습이었는데, 너무 마음 따뜻해졌다. 전우익의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책 제목이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의 힘이 보태져서 만들어진 그 공간을 언젠가는 한 번 가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봐야겠다. 유튜브 채널 '괴테 할머니 TV'의 영상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책이라고 했다. 다음 책이 세상에 나올 때까지는 유튜브 영상으로 나에게 선한 영향력을 한껏 발휘하신 분의 이야기 잘 따라가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