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책넋
2025.9.29. 늙눈 읽눈
나이가 들기에 늙거나 죽지 않는다. 나이가 드니까 눈이 어둡거나 귀가 어둡지 않다. ‘낳음빛’인 ‘나’를 잊기에 더는 안 낳으면서 늙거나 죽는다. 낳음빛이란 생각씨앗이기에, 늘 새롭게 보고 듣고 배우고 익히려 하면, 늙눈(늙은눈)이란 없다.
깨알글을 읽고 쓰려면 그냥 글을 꾸준히 읽고 쓰면 된다. 잘 읽거나 잘 쓰려는 마음이 아니면 누구나 된다. 아기옷이나 천기저귀를 손빨래할 적에도 같다. 잘 빨아야 하기보다는 즐겁게 빨래하면서 옷살림을 노래하면 넉넉하다. 얼른 끝내려 하지 말고, 아이가 옆에서 물놀이를 하라고 자리를 깔아 주고서 함께 놀고 일하고 노래하면 된다.
힘을 많이 쓰니까 힘들다. 말 그대로이다. 그런데 “쓴 힘”은 푹 쉬고 나면 새로 솟는다. 기운을 잔뜩 써도 매한가지이다. 기운을 쓴 만큼, 아니 “쓴 기운”을 껑충 뛰어넘을 만큼 새롭게 기운이 솟는다. 힘빠지거나 기운다한다고 걱정할 일이 없다. 몸을 바닥에 가만히 누이고서 마음을 파란하늘로 뻗어서 활짝 나래를 펴는 틈을 두면 된다.
쉬잖고 달리기에 닳고 낡는다. 내쉬고 들이쉬는 바람을 고이 느끼면서 넉넉히 쉬고 일하고 노래하기에 누구나 맑고 밝다. ‘쉼’이란, 숨을 느낄 틈을 내는 일을 가리킨다. 마신 만큼 내쉬면 되듯, 땀흘린 만큼 땀을 들이면 된다. 먹은 만큼 내놓으면 되듯, 벌어들인 몫만큼 나누거나 베풀면 된다.
안 쉬는 사람이란 안 나누고 못 베푸는 굴레살이인 셈이다. 노래를 안 하고 놀이를 안 하는 사람은, 또한 살림일을 등지는 사람은, 나란히 늙고 낡아가는 높살이인 셈이고. 쉴 겨를이 없으니, 읽으며 새기고 생각할 짬을 안 낸다. 살림짓기를 등지니까, 돈벌이에 바쁜 나머지 스스로 갉는다.
나이들어서 못 읽지 않는다. 이미 어려서부터 안 읽었고, 젊어서도 안 읽었다. 벌써 예전부터 ‘숨쉴틈’을 안 내었고, “손에 쥔 만큼” 둘레에 베풀거나 나누지 않았을 뿐이다. 여러모로 안 읽은 몸이라서 깨알글을 못 읽는 셈이니, 안 쉬고 안 놀고 안 해놓은 살림 탓이다. 모든 뿌리는 우리가 스스로 뻗으니, 늙몸과 늙눈은 스스로 바꿀 수 있다. 이제부터 찬찬히 깨알글을 읽으면서 쓰고 새기려고 하면, 누구나 시나브로 맑눈을 되찾는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