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가께 한림 고학년문고 31
기시모토 신이치 지음, 강방화 옮김, 야마나카 후유지 그림 / 한림출판사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숲노래 어린이책 / 맑은책시렁 2025.9.19.

맑은책시렁 350


《봄이 오면 가께》

 기시모토 신이치 글

 야마나카 후유지 그림

 강방화 옮김

 한림출판사

 2014.1.20.



  덧뺄나곱을 모르더라도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글을 안 쓰거나 못 읽어도 사랑스레 살림하는 사람이 숱합니다. 이와 달리, 덧뺄나곱뿐 아니라 어렵다는 셈을 풀 줄 알지만 하나도 안 아름다운 사람이 수두룩하지요. 글을 쓰거나 읽되 도무지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이 숱하고요.


  열린배움터(대학교)를 마쳐야 훌륭한 사람일까요? 그러나 열린배움터를 마쳤어도 안 아름답고 안 사랑스러울 뿐 아니라, 막말을 일삼고 막짓을 휘두르는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토록 오래 ‘배웠다(공부했다)’고 여기지만, 여러모로 보면, ‘종이(졸업장·자격증)’를 따거나 거머쥘 때까지 ‘책’을 곁에 두지 않는 사람이 흔하고, 살림과 집안일과 아이돌봄하고 등진 사람이 넘칩니다. 달걀부침은커녕 국수삶기조차 안 하면서 ‘대졸자·회사원·공무원·국회의원·시도지사’를 맡는 사람이 그득한 이 나라입니다.


  《봄이 오면 가께》 같은 어린이책은 얼마나 읽힐 만한지 아리송합니다. 아마 읽히기 어려운 우리나라이리라 봅니다. 스스럼없이 알아보려는 눈이 드물고, 아이랑 나란히 쥐면서 곰곰이 짚으려는 손이 드물고, 살피고 배우고 익혀서 먼저 온몸으로 펴려는 마음이 드물다고 느껴요.


  작은책 한 자락은 ‘함께걷기’를 들려줍니다. 작은책 한 자락은 ‘손잡기’와 ‘어깨동무’를 속삭입니다. 작은책 한 자락은 ‘나·너·우리’로 맺는 ‘오늘·하루·삶’이 어떻게 잇고 뻗어서 ‘살림·사랑·사람’으로 닿는지 이야기합니다.


  우리한테 막말(욕)은 워낙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너나없이 막말을 쉽게 주워섬깁니다. 제가 어린배움터를 다니던 1982∼87년을 떠올리면, 그무렵에 막말을 하는 아이가 있으면 또래와 동무와 언니가 나무라거나 타일렀습니다. 바보짓을 삼가고 ‘얼뜨기(어른이 아닌 철없는 사람)’를 흉내내지 말라고 했지요. 이와 달리 요새는 아이어른 누구나 으레 막말을 입에 달아요. 아무 데서나 큰소리로 막말이 춤춥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이기에 마음을 나누려고 말을 섞을 노릇입니다. 그러나 “넌 나랑 뜻이 달라!” 하고 여기면서 “나랑 뜻이 다른 넌 없어져야 해!” 하며 내치기 일쑤입니다. 어깨동무(민주·평등·평화)란, “나랑 뜻이 다르건 같건 모두 나란한 사람”으로 바라보며 품는 길일 텐데, “넌 저쪽에 섰으니까 네 몫은 없을 뿐 아니라, 네 자리도 없고, 넌 사라져야 해!” 하고 내모는 나라이지 않나요?


  남이 나를 안 받아들였기에, 내가 남을 똑같이 안 받아들여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람’이란, ‘사이’에 서서 ‘살림하는(살리는)’ 숨결이면서, ‘사랑’으로 ‘살아가는(삶을 짓는)’ 숨빛입니다. 전라도에 살든 경상도에 살든, 서울에 살든 시골에 살든, 누구나 나란히 빛나는 사람이자 삶인 줄 알아차리려 하지 않는다면, 다같이 죽음길로 달려가겠지요.


  우리는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습니다. 서울로 올라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서울로 올라간다”고 말하는 마음이란, 이미 스스로 금을 긋고서 담벼락을 쳤다는 소리입니다. “시골로 내려간다”고 말하는 마음이란, 벌써 스스로 값을 매기고서 따지고 잰다는 소리입니다. 아이어른이 다함께 봄에 봄맞이를 하고, 가을에 가을잔치를 하며, 언제나 보금자리숲을 누리는 하루일 때라야, 서로 눈뜨면서 사람으로 설 수 있습니다.


ㅍㄹㄴ


“그렇구나. 난 머리. 머리가 아픈데 고칠 수 없대.” 사유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고칠 수 있을 거야. 나도 고칠 수 있고.” “아니, 내 병은 고칠 수 없다고 엄마가 그랬어. 하지만 난 달릴 수 있어. 난 건강해.” (24쪽)


겐지는 말없이 새장을 보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빠가 없다고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유타가 부러웠다. 나도 아빠가 없다고 선뜻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속이 시원할까. (44쪽)


“학교에서는 되도록 많은 친구들과 즐겁게 어울렸으면 좋겠어요. 더하기를 못해도, 글을 읽을 줄 몰라도 상관없어요. 살아가는 힘은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고생하면서 몸에 배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59쪽)


“자, 발을 담가 봐. 따뜻한 ‘할짝할짝 벌레’가 발가락 사이로 기어올라 온다니까.” (79쪽)


“유타는 아무것도 모르는 거예요. 만약 그런 유타가 다른 아이들처럼 자라고 있다면 그건 친구들 덕분일 겁니다. 반 친구들은 모두 유타한테 선생님이니까요.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우리 같은 어른들보다 훨씬 더 좋은 점, 나쁜 점을 지켜봐 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이번 일처럼 자주 폐를 끼치는 게 죄송할 따름입니다.” (89쪽)


“만약 다른 팀들이 1위나 2위를 해도, 유타 팀이 실격되면 마음이 쓸쓸할 것 같아. 다 같이 꼴등하는 게 차라리 좋을 것 같아…….” (158쪽)


유타는 사유 얼굴을 들여다보며 웃고 있다. “유타, 편지 고마워, 정말 기뻤어.” 사유가 챙을 들어 올리고 마스크를 벗으면서 말했다. “그래? 편지를 받으면 기쁜 거구나.” (161쪽)


#岸本進一


+


《봄이 오면 가께》(기시모토 신이치/강방화 옮김, 한림출판사, 2014)


어째서 이런 비탈길 위에 학교를 만들었을까

→ 어째서 이런 비탈길에 배움터를 세웠을까

7쪽


멀리서 지켜보는 가운데

→ 멀리서 지켜보는데

21쪽


만약 그런 유타가 다른 아이들처럼 자라고 있다면 그건 친구들 덕분일 겁니다

→ 그런데 그런 유타가 다른 아이들처럼 자란다면 동무가 돕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그런 유타가 다른 아이들처럼 자란다면 동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89쪽


다 같이 꼴등하는 게 차라리 좋을 것 같아

→ 다같이 꼴찌해도 차라리 나을 듯해

→ 다같이 꼴찌가 차라리 나아

158쪽


그래? 편지를 받으면 기쁜 거구나

→ 그래? 글월을 받으면 기쁘구나

→ 그래? 글을 받으면 기쁘구나

161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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