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2025.9.13. 이 비랑 너랑



  비는 늘 알맞게 온다. 비는 넘치게 안 오고, 모자라게 안 온다. 비는 늘 사람들이 비울 길을 넌지시 알려주면서 내린다. 가랑이로도 옷이 젖는 줄 알려주고, 는개로도 목을 축이는 길을 밝히고, 장마비에 곰팡이가 피지 않는 풀잎을 보여주고, 벼락비에 무너지지 않을 둑과 울을 마련하라고 속삭인다.


  사람들, 그러니까 우리가 스스로 ‘숲빛’을 버리고서 ‘서울옷’을 입는 사이에 하나같이 비를 꺼리고 미워하는 바람이 분다. 예부터 “비가 오신다”라든지 “비님이 온다”라든지 ‘단비’에 ‘꿀비’처럼 빗방울을 온마음으로 그리는 말을 마음에 담아서 아이한테 물려주던 어른이다. 그렇지만 ‘숲사람’이기를 잊고 잃으면서 ‘서울내기’로 치달리는 오늘날에는 ‘밉비(미운비)’에 ‘싫비(싫은비)’로 여긴다.


  빗물이 이 땅을 헤집지 않는다. 우리 손끝으로 이 땅을 헤집었다. 빗물에 모래와 흙이 흐르기에 골고루 기름지다. 빗물을 따라서 멧골에서 샘을 거치고 내를 지나고 가람을 이루어 개(갯벌)에 다다르니, 온누리 모든 물을 새삼스레 거르면서 맑게 빛나는 새길을 이루었는데, 바로 사람들(우리) 스스로 이 숲길을 망가뜨렸다. 비 탓인 일은 없다. 장마이든 가뭄이든 우리(사람들) 스스로 푸른별을 어지럽혔을 뿐이다.


  바람은 늘 고루 분다. 바람은 어디에도 스민다. 땅밑으로 깊이 파고들어도 바람이 드나들어서 숨쉴 수 있다. 하늘을 찌를 듯 뾰족하게 높이는 잿더미(아파트)에도 파란바람이 불면서 모두를 살린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들빛을 팽개치고서 서울살이에 갇히면서 바람을 등진다. 어느 못된 돈꾼이나 삽꾼이 바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우리(사람들) 모두가 함께 바람을 더럽혀 왔고, 아직도 더럽히는 판이다.


  해는 늘 알맞게 내리쬔다. 사람들이 하늘빛을 잊고서 매캐하게 잿빛을 뒤집어쓰느라 해를 싫어한다. 해를 안 쬐니 아프고, 해를 안 머금으니 앓는다. 쌀밥도 밀빵도 해를 듬뿍 받아들이는 들판에서 싱그러이 자란다. 벼도 밀도 해바람비를 골고루 넉넉히 받아들이기에, 모든 사람이 밥이든 빵이든 즐겁게 누린다. 그런데 밥과 빵은 오롯이 해바람비를 받은 몸(낟알)인데, 사람몸에는 왜 해바람비를 안 먹일까? 해바람비를 등돌리면서 돌봄터(병원)에 기대고 가두기에 늙고 앓고 아플 텐데.


  조금 서늘한 여름이 있고, 조금 더운 여름이 있다. 조금 이른 가을이 있고, 조금 늦는 겨울이나 봄이 있다. 늘 다르면서 새롭게 흐르는 철빛이다. 마음을 틔울 적에 곱게 알아본다. 눈과 귀를 열 적에 널리 알아듣는다. 마음을 안 열거나 눈을 안 뜨면 그저 미운비에 싫은바람에 불볕이기만 하다.


  마음이 닿아 말이 싹튼다. 말이 닿아 마음이 자란다. 어느 마음씨로 가꾸면서 어떤 말씨를 심을는지 가만히 나누면서 스스럼없이 깨어날 오늘이다. 말이랑 마음은 늘 한동아리로 빛난다. 마음하고 말은 언제나 한살림으로 눈부시다. 새벽비는 아침비로 잇는다. 아침비는 낮비로 번질까? 여름더위는 벌써 다 지나갔다. 그래도 나는 아직 맨발에 고무신차림으로 논두렁을 걷는다. 이 논두렁을 다 걸으면 고흥읍으로 가는 시골버스를 탄다. 시골버스에 타면 노래를 쓰지. 비를 노래하는 오늘을 쓰고, 바람을 노래하는 길을 쓰고, 해를 노래하는 손길을 쓴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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