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노래꽃

시를 씁니다 ― 59. 가을



  어릴적부터 “너나 잘해!” 같은 말을 곧잘 들었습니다. 저로서는 동무나 언니나 어른한테 조그마한 귀띔이나 도움말을 들려주려는 뜻이었지만, 몸도 자그맣고 힘없이 고삭부리로 지내는 꼬마가 들려주는 말은 썩 안 반가울 만했구나 싶습니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그분들이 먼저 저한테 귀띔이나 도움말을 바라지 않았는데 먼저 불쑥 알려주니까 싫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저를 찾아와서 여쭙기에 찬찬히 짚어서 알려줄 적에도 거북한 낯빛인 분이 제법 있습니다. 이런 나날을 누리면서 조용히 헤아립니다. 아무래도 제 말씨가 그리 상냥하지 않구나 싶으면서, 누구누구를 돕거나 이끌 수 없는 노릇이겠네 싶어요. 우리는 언제나 스스로 길을 찾아서 스스로 부딪히고 스스로 깨달으면서 스스로 어깨를 활짝 펼 뿐이네 싶습니다. “너나 잘하셔!”나 “너나 똑바로 해!” 하고 쏘아붙이던 분들은 그분들 말씨야말로 쏘아붙이는 화살인 줄 모르리라 봅니다. 그래서 이 가을에 새삼스레 생각해요. 저는 이 가을을 새로우며 싱그이 맞이하고 싶다고, “네, 저는 저부터 잘할게요. 가을이에요!” 하고 속삭이면서 제가 걸어갈 길을 바라보려 합니다. 한여름에는 한여름대로 불볕을 마음껏 누렸어요. 한가을에는 한가을대로 열매를 실컷 누리면 되겠지요? 한겨울에는 한겨울대로 함박눈을 푸짐히 누리고, 한봄에는 한봄대로 새잎잔치를 골고루 누리려 합니다. 가을비가 촉촉히 내리기에 맨몸으로 이 비를 맞으면서 시원히 걷습니다. 가을밤에 가을별이 초롱초롱 뜨기에 온몸으로 별빛을 머금습니다.



가을


우리 집 초피잎은

가을이면 샛노랗지

후박잎 동박잎은

갈겨울 모두 짙푸르고


푸른 모과알 유자알

차츰 노르스름 바뀌면

풀노래 조용조용 사위고

바람소리 조금씩 깊어가


쑥꽃 조롱조롱

억새씨앗 하늘하늘

이제 들숲은 누릇누릇

곧 별밤빛은 반짝초롱


고구마를 찔까

감자밥을 할까

갈잎배를 엮어

냇물에 띄울까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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