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8.2. 양복 정치
전남 고흥에서 2011년부터 살며 지켜보면, 시골 군의원과 도의원도, 군수와 모든 벼슬아치도 양복차림이다. 어느 누구도 양복차림이 아닌 사람이 없다고 할 만하다. 시골 고등학교 교사도 이와 비슷한데, 그나마 시골과 서울 모두 초등학교만큼은 차림새가 ‘양복벗기’로 꽤 나아갔다. 요사이는 ‘양복 안 입은’ 초등 교장·교감이 꽤 늘었다.
양복차림인 사람은 으레 양복차림인 사람을 만나고 일을 맡긴다. 양복차림이 양복차림을 만난다고 할 적에는,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겉옷과 겉옷’ 사이라는 뜻이요, 우리나라 벼슬판이 온통 ‘겉옷·겉모습·겉치레’로 흐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틀림없이 어디에 있을 수 있되, 아직 시골 군수·실과장·군의원·도의원·국회의원 가운데 고무신을 꿰고서 손에 낫과 호미를 쥔 일꾼을 못 찾았다. 시골에서 살더라도 낫과 호미가 아닌 값비싼 농기계에다가 농약·화학비료를 듬뿍 쓰는 스마트팜으로 기울면서 ‘돈을 낳는 돈벌이 농업’으로 잡아먹는 얼거리이다. ‘양복차림’이란, 돈내음을 맡으면서 움직이는 길이요, 삶내음이나 살림내음이나 숲내음하고는 아주 동떨어진 굴레인 셈이다.
옷 한 벌을 바꾼다고 해서 삶과 살림과 숲을 바꿀 수 있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이 꽤 많다만, 옷 한 벌을 못 바꾸거나 안 바꾸기에 이 삶과 살림과 숲이 다 망가지는 벼랑으로 치닫는다고도 느낀다. 왜 전남지사나 경북지사는 ‘맨발에 고무신에 낫을 쥔 차림’을 안 할까? 왜 전남교육감이나 경북교육감은 시골일을 하는 아이들 곁에 설 줄 모를까?
양복차림인 분이 마을책집으로 걸어가서 책을 사읽는 일은 아주 드물거나 아예 없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책읽기만으로 배우지 않는다만, 적어도 책읽기조차 안 한다면, 이웃한테 스스럼없이 찾아가서 어깨동무하는 삶매무새로 배우는 길은 없다는 셈이겠지.
천조각인 옷 한 벌로 ‘겉(힘·이름·돈)’을 내세우려는 모습이 양복차림이라 할 만하지 싶다. 천조각인 옷 한 벌을 가볍고 즐겁게 돌보는 모습은 이 터전을 새롭게 일구려는 손길과 몸짓으로 나아갈 만하지 싶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