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란 뭘까? - 쓰기에서 죽기까지 막간 1
유진목 지음 / 난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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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8.31.

까칠읽기 93


《재능이란 뭘까?》

 유진목

 난다

 2025.4.5.



  누가 나더러 “그대는 무슨 재주가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나한테 재주가 있다고 느낀 적은 아예 없고 “재주가 없는 몸도 재주라면 재주가 있습니다.” 하고 여쭈었다.


  어릴적에 나무타기를 즐겼지만 나무를 훌륭히 타지는 못 했다. 나비나 잠자리를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었지만 여러 동무처럼 손가락마다 나비랑 잠자리를 열이고 스물이고 끼우지 않았다. 나는 한 마리만 잡고서 한나절 바라보면 즐거웠다. 두바퀴도 영 못 굴려서 으레 곤두박고 자빠지며 온몸에 피가 철철 흘렀는데, 끈덕지게 타고 또 달리면서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 노릇을 두바퀴로 했다.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엮는 길을 걷지만, 말더듬이에 혀짤배기라는 몸을 타고난 터라 그야말로 죽도록 용을 써서 말소리를 내려고 했다. 그런데 죽도록 용을 쓰노라니, 이 나라 글바치가 얼마나 말글을 엉성하게 치레하면서 겉멋에 사로잡힐 뿐 아니라, 모든 글을 일부러 어렵게 중국말과 일본말과 미국말을 섞어서 ‘여느사람’을 괴롭히는지 알아볼 수 있더라.


  《재능이란 뭘까?》를 읽었다. 글쓴이는 스스로 어떤 재주가 있다고 여기려나? 글을 팔아서 책을 내는 재주라든지, 살핌이(심사위원)라는 자리를 얻어서 다른 글바치가 보람(상)을 받을 만한지 가리는 재주라든지, 짝맺기(연애)를 즐기는 재주라든지, 온갖 재주가 있을 만하다. 다만, 재주를 따지거나 헤아리거나 짚으려는 글은 언제라도 덧없다고 느낀다. 뭣하러 재주를 돌아봐야 할까? 삶을 바라보면 될 텐데.


  어떤 엄마아빠도 ‘애낳는 재주’나 ‘아이돌봄 재주’를 타고나지 않는다. 그저 사랑으로 짝을 맺어서 아기를 낳아서 함께 살아가는 동안 살림길에 눈을 뜨면서 스스로 삶을 가꿀 뿐이다. 이른바 재주는 ‘자격증·졸업장’과 같으니, 아예 거들떠볼 까닭이 없다. 오직 손끝과 발길과 눈빛을 헤아리면 된다. 우리가 손끝으로 오늘 무엇을 빚는지 보면 되고, 발길이 닿는 곳에서 어떻게 하루를 짓는지 살피면 되고, 눈빛을 어떻게 펴면서 스스로 배우고 익히며 노래하는지 들려주면 된다.


  맞거나 틀리는 길은 없고, 옳거나 바른 길도 없다. 다 다르게 살아가는 길이다. 밉거나 싫다는 마음을 씨앗으로 심으니 언제나 밉거나 싫은 일을 스스로 맞이한다. 좋거나 재미나다는 마음을 씨앗으로 심으니 오히려 안 좋거나 따분한 일을 스스로 일으킨다. 삶은 그저 길이다. 길은 재주가 아닌 ‘손씨(솜씨)’이다. 손씨란, 잘하는 길이 아니라, 저마다 손으로 다듬고 가꾸고 일구어 가는 삶에 따라 다 다르게 반짝이는 오늘 하루일 뿐이다.


ㅍㄹㄴ


집마다 사람이 살고 있지만 정작 사람이 보이면 당혹스럽다. 더군다나 벌거벗은 사람을 보는 것은 더욱 그렇다. 집에서 저 사람은 저렇게 있구나. (58쪽)


다행히도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동안에는 살아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게 너무 달콤하다. (72쪽)


나는 깃발에 아빠를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쓴다. 그리고 광장으로 가서 깃발을 높이 들고 서 있다. 그러면 나와 같은 사람들이 하나둘 깃발 아래로 모여든다. (90쪽)


9월에는 부산지방법원에서 이혼을 확정받았다.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리다 짧은 질의에 대답하니 그걸로 끝이었다. 그날 밤에는 갑자기 울음이 터져 소리내 울었다. (107쪽)


+


《재능이란 뭘까?》(유진목, 난다, 2025)


세상에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대답이다. 나의 세상에는 대답이 없다

→ 온누리에 없는 하나라면 맞글이다. 내가 사는 곳은 대꾸가 없다

→ 둘레에 없는 하나라면 맞말씀이다. 내가 사는 곳은 대척이 없다

8쪽


이 책은 매일 새롭게 시작되는 이야기다

→ 이 책은 늘 새롭게 여는 이야기이다

→ 이 책은 오늘을 새로 여는 이야기이다

→ 하루를 여는 이야기로 이 책을 쓴다

9쪽


각자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도록 하자

→ 저마다 즐거운 길을 생각하자

→ 스스로 즐거울 길을 생각하자

12쪽


여행은 그렇게 시작한다

→ 그렇게 나들이를 한다

→ 그렇게 마실을 간다

13쪽


나는 글을 쓰기 위해서 내 모든 힘을 다해 여행을 간다

→ 나는 글을 쓰려고 온힘을 다해 나들이를 간다

→ 나는 글을 쓰고 싶어서 온힘을 다해 멀리 간다

14쪽


한때 내 전부였던 것들을 잊으려고 이 글을 쓰는 중이다

→ 한때 모두였던 삶을 잊으려고 이 글을 쓴다

→ 한때 그저 다이던 삶을 잊으려고 글을 쓴다

18쪽


시야가 좁고 편협했다

→ 눈이 좁다

→ 눈길이 좁다

→ 좁게 본다

→ 좁다

→ 비좁다

20쪽


다음 달의 내가 월세를 벌어 내지 않을까

→ 다음달은 다음대로 달삯을 내지 않을까

→ 다음달은 그때대로 달삯을 내지 않을까

21쪽


내가 쓰는 글들이 더이상 궁금해지지 않은 것은 언제부터인지 생각해 보는 중이다

→ 언제부터 내가 쓰는 글이 더는 안 궁금한지 헤아려 본다

→ 언제부터 내 글이 더는 안 궁금한지 곱씹어 본다

24쪽


밤 사이 쓴 글을 타이핑하고 고쳐쓴다

→ 밤에 쓴 글을 옮기고 고쳐쓴다

29쪽


대출금을 모두 갚아서

→ 빌린돈을 모두 갚아서

→ 빚을 모두 갚아서

32쪽


다음 차시가 되면 과제를 주고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 다음에는 쓸거리를 알리고 맞추어 본다

→ 다음에는 할거리를 알리고서 묻고 알려준다

34쪽


무엇을 글에 쓰지 않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 무엇을 글에 쓰지 않는지 이야기한다

34쪽


매일 다른 글을 써야 한다고 나에게 주지시킨다

→ 날마다 글을 달리 써야 한다고 되새긴다

→ 늘 글을 새로 써야 한다고 곱새긴다

46쪽


카메라는 무언가를 바라본다

→ 찰칵이는 무엇을 바라본다

→ 빛틀은 무엇을 바라본다

54쪽


최근에 나는 많은 것과 작별했다

→ 요즘 나는 여러 가지를 보냈다

→ 요새 나는 숱한 일을 놓았다

59쪽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 더위가 넘실거리면

→ 불볕더위이면

61쪽


그 열패감을 견디는 게 몹시 힘들었다

→ 부끄러워 견디기가 몹시 힘들었다

→ 창피해서 견디기가 몹시 힘들었다

79쪽


글은 나를 통해 나온다

→ 글은 나를 거쳐 나온다

→ 글은 나한테서 나온다

→ 글은 내 손으로 나온다

93쪽


산문을 쓰자면 내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 삶글을 쓰자면 삶을 들여다본다

→ 줄글을 쓰자면 삶을 들여다본다

→ 긴글을 쓰자면 삶을 들여다본다

100쪽


나는 그래서 쓴다. 지금도 그래서 쓰고 있다

→ 그래서 쓴다. 그래서 오늘도 쓴다

→ 그래서 쓰고, 오늘도 쓴다

101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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