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등진 너를 (2025.6.15.)
― 부산 〈책과 아이들〉
어제 무슨 비가 왔느냐는 듯이 활짝 개면서 싱그럼바람이 일렁이는 부산 아침입니다. 〈책과 아이들〉에서 하루를 엽니다. 오늘로 ‘바보눈 열넉걸음’을 매듭짓고서 새걸음으로 나아갈 길목입니다.
새걸음이란 이제까지 없던 길로 내딛는 몸짓이면서, 어제하고 모레를 잇는 ‘사이’입니다. 길목이기에 ‘사이’요, 둘을 잇는 목이기에 ‘새롭’고, 이 사이인 새로운 숨결은 바로 ‘깃털짐승’은 ‘새’라는 이름으로도 나타냅니다.
‘새소리’를 들을 줄 알기에 새롭습니다. ‘새노래’를 품을 수 있기에 새록새록 생각이 솟습니다. 읽으면서 마음을 잇는 동무와 이웃을 만나는 하루란 언제나 새롭게 빛나는 나날이지 싶어요. 그런데 때때로 ‘등돌림·등짐(배신)’을 겪습니다. 누가 우리를 등지면서 손가락질을 한다면, “튼튼몸에 들이닥친 좀앓이(질병)”로 여길 만한데, 새롭게 나아가려는 길에 튼튼히 일어나려는 숨빛입니다.
우리한테 사근사근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우리를 등지거나 등돌릴 텐데, 우리부터 사근사근하게 다가서더라도 우리를 등지거나 등돌릴 수 있는데, 스스럼없이 사근사근 웃는 노래를 들려주는 하루라면, 함께 눈망울을 밝힌다고 느껴요. 그들이 바뀌느냐 안 바뀌느냐 하고 쳐다볼 일은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바꾸면 돼요.
바꾸는 일도, 가꾸는 일도, 일구는 일도, 모두 우리가 스스로 하지만, 굴레에 갇히기도, 사슬에 묶이기도, 늪에 빠지기도, 언제나 스스로 바라는 대로 갑니다.
즐겁게 이 땅을 디디고, 하늘바람을 마시는 오늘을 누리면 됩니다. 바람 한 줄기를 손에 쥐면서 풀꽃노래를 부르며 푸르게 물드는 새하루를 누리면 됩니다.
우두머리(권력자)는 으레 말장난으로 사람들을 사슬에 가두려고 합니다. 그들로서는 말장난이요, 우리로서는 말굴레에 말늪입니다. 지난날 일본 우두머리는 ‘비국민·반국민’ 같은 말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옥죄었어요. 싸움불굿을 일으킨 나라가 나쁘다며 맞서면 ‘반국민’이고, 싸움불굿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으면 ‘비국민’이라 여겼습니다. 오늘 우리는 ‘비도덕적·비신사적’뿐 아니라 ‘비장애인’ 같은 말까지 그냥그냥 쓰는데, 뿌리를 짚어 보면 모두 끔찍한 이름입니다.
우리는 그저 서로 ‘사람’입니다. 누구를 어떤 틀에 가둘 까닭이 없고, ‘누구 아닌 이웃’을 ‘비(非)-’라는 끔찍한 굴레로 묶을 까닭이 없어요. ‘비(非)-’는 그저 빈수레입니다.
작은길을 느리게 사랑하는 손끝이 묻어난 책을 손에 쥘 적에 스스로 눈뜹니다. 작은말 한 마디를 차분히 헤아리면서 나눌 적에 스스로 깨어납니다. 작은길을 걷자면 스스로 작은별인 줄 알아봐야지요. 등진 네가 함께 해바라기를 하기를 바라요.
ㅍㄹㄴ
《한나의 하얀 드레스》(아이작 스웨이걸 디미얼 글·오라 에이탄 그림/김미련 옮김, 느림보, 2004.6.15.)
#HannasSabbathDress #ItzhakSchweigerDmiel) #OraEitan
《운하 옆 오래된 집, 안네 프랑크 하우스》(토머스 하딩 글·브리타 테켄트럽 그림/남은주 옮김, 북뱅크, 2024.7.5.
##Das alte Haus an der Gracht #ThomasHarding #BrittaTeckentrup
《연애 결핍 시대의 증언》(나호선, 여문책, 2022.3.21.)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나가이 가후/정수윤 옮김, 정은문고, 2015.4.1.)
《눈 내리는 날》(기쿠타 마리코/편집부 옮김, 비로소, 2001.11.30.)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