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8.7. ‘좋은 서평’ 따위



  글을 보면, 글을 쓴 사람이 어떤 마음인지 그릴 수 있다. 글이란, 글쓴이 마음을 그대로 그린 무늬라서, 모든 글은 고스란히 글쓴이 얼굴이자 몸짓이자 발걸음이자 하루이다. ‘좋은책’을 읽으려고 애쓰는 사람은 언제나 ‘좁은책’에 사로잡힌 채 ‘좋은글’을 남기려고 용쓰는 터라 끝내 ‘좁은글’에 스스로 갇힌다. “좋은- = 좁은-”인걸.


  ‘좋다·나쁘다(싫다)’를 제대로 알거나 가르거나 살피는 사람이 대단히 적다. 낱말뜻부터 모르기 일쑤이고, 쓰임새를 차분히 짚는 길을 못 알아보곤 한다. ‘좋다’란, “마음에 들다”이니, “마음에 드는 것·곳·길을 고르려고, 마음에 안 드는 것·곳·길을 쳐내면서 좁히다”를 가리킨다. ‘좋은책’을 고르면, 이 좋은책을 뺀 나머지는 ‘나쁜책·싫은책(안 좋은책)’인 얼거리이다.


  아이는 엄마만 좋거나 아빠만 좋을 수 없고, 어느 쪽이 더 좋을 수 없다. 아이는 엄마아빠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아이한테 “엄마가 좋아, 아니면 아빠가 좋아?” 하고 묻는다면, 아이를 괴롭혀서 마음을 죽이려는 철없는 짓이다. 아이가 “엄마가 좋아.” 하고 고를 적에는 “아빠가 나빠.” 하고 고르는 셈이고, 아이가 “아빠가 좋아.” 하고 고를 적에는 “엄마가 나빠.” 하고 고르는 셈이다. 아이는 ‘즐기는’ 놀이가 있을 뿐, 아이로서는 ‘좋아하는’ 놀이가 없다. 그러나 둘레 어른들이 자꾸 아이한테 ‘좋은·좋아하는’을 묻거나 시키느라, 아이는 어느새 ‘처음에는 아예 없던 마음’인 ‘좋다·나쁘다(싫다)’라는 금긋기(구분·차별)에 길들어버린다.


  ‘좋은글(좋은 서평·비평)’이 있을까? 터무니없다. ‘좋은글 = 좁은글’이다. ‘좋은 서평 = 좁은 서평’이다. 온누리에 태어나는 가없이 너른 책을 두루 품으려는 마음이 아니기에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책만 다루려고 좁히려는 뜻”에서 ‘좋은글(좋은 서평)’에 갇힌다.


  우리는 좋은책을 읽어야 할 까닭이 없다. 우리는 좋은글을 써야 할 까닭이 없다. 우리는 ‘좋은말’을 해야 할 까닭이 없다. 우리는 ‘좋은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고, ‘좋은일’이란 함부로 안 해야 할 노릇이다.


  우리는 어느 책이든 읽으면 된다. “스스로 새롭게 배워서 스스로 기쁘게 익히는 길동무로 삼는 책을 스스로 반갑게 손에 쥐고서 찬찬히 누리”면 된다. 우리는 어느 글이든 쓰면 된다. “스스로 새롭게 되읽으면서 스스로 이 삶을 익히는 밑거름으로 삼을 글을 스스로 참하고 착하고 곱게 쓰”면 된다.


  ‘좋은일(좁은일)’이란, 몇몇 사람과 무리한테는 이바지할 테지만, 이들을 뺀 모든 사람을 괴롭히거나 따돌리는 끔찍한 막짓이기 일쑤이다. ‘좋은말(좁은말)’이란 ‘허울좋은’ 말이다. 그래, 좋은일이란 ‘허울좋은’ 일이다. 좋은글이란 ‘허울좋은’ 글이다. “좋은 서평 : 허울좋은 서평”이라고 할 만하다. ‘허울·허우대’만 멀쩡하거나 커 보이는 글이기에 ‘허울글(허우대글) = 허물글 = 헛글 = 좋은글’이라 하겠다. 겉치레에 겉발림에 겉꾸밈에 얽매이기에 ‘겉책 = 허을책(허우대책) = 허물책 = 헛책 = 좋은책’인 셈이다.


  우리가 어느 한 사람을 좋아하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무슨 짓을 해도 봐주거나 좋게 여긴다. 그래서, 우리가 안 좋아하는 다른 사람이라면, 어떤 아름일과 착한일과 사랑일을 펴더라도, 하나부터 열까지 안 좋게 여긴다. 벼슬판(정치세계)을 안 봐도 알 수 있다. 글판(문학세계)만 보아도 또렷하다. 집과 마을만 보아도 아주 환하다.


  좋은글(좋은 서평)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라면, 좋은글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라면, 부디 얼른 집어치우기를 빈다. 좋은책을 누가 알려주기(추천) 바라지 말자. 좋은책을 장만하거나 읽으려고 하지 말자. 스스로 새롭게 배울 책을 읽으면 되고, 아름다운 책과 숲빛으로 푸른 책과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길을 밝히는 책을 읽으면 된다. 아름책은 아름다운 책일 뿐이니, 좋은책이 아닌 아름책이다. 숲빛을 밝히는 푸른책은 숲빛에 푸르게 우거진 책일 뿐이라서, 좋은책이 아닌 숲책에 푸른책이다. 사랑과 살림을 다루는 책은, 좋은책이 아닌 사랑책과 살림책이다. 아무 데나 ‘좋은책’이라는 ‘허울·껍데기’를 붙이지 않아야 눈뜰 수 있고, 깨어날 수 있고, 배울 수 있고, 살아날 수 있다.


  그래서 ‘좋은책’을 다루거나 들려주는 책이 있다면, 그야말로 ‘좁아터진 책’이다. 외려 좋은책을 솎아내고서 안 읽을 적에 이 삶이 빛날 만하다. 나를 나답게 바라보면서, 나부터 내 눈빛을 틔우고 싶다면, 이제부터 좋은글과 좋은말과 좋은책과 좋은일을 모두 사르르 내려놓고서, ‘살림글·살림말·살림책·살림일’을 찾아나서면 넉넉하다. ‘숲글·숲말·숲책·숲일’을 품고서, ‘파란하늘을 담은 글과 말과 책과 일’을 누리고 나누면 즐겁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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