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젠더 수업 창비청소년문고 27
김고연주 지음 / 창비 / 2017년 11월
평점 :
일시품절


다듬읽기 / 숲노래 글손질 2025.8.3.

다듬읽기 266


《나의 첫 젠더 수업》

 김고연주

 창비

 2017.11.10.



《나의 첫 젠더 수업》을 보면, 겉모습을 따지지 말자고 하면서, 또한 ‘서양사람처럼 뜯어고쳐야 예쁘지 않다’는 줄거리를 다루면서, 정작 책겉에 넣은 그림에 ‘서양사람 같은 예쁜 얼굴’이다. 게다가 ‘서양 서울사람 같은 얼굴’이고, 시골사람이나 땀흘려 흙과 세간을 만지는 일꾼은 아예 못 낀다. 아홉 사람 가운데 시골사람은 그냥 없다. ‘다 다르게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쁘게 차려입고 마실을 다니는 서울사람 모습이다. 그야말로 ‘젠더감수성 제로’이지 않나?


‘사계절의 기원(91쪽)’을 왜 서양 옛이야기에서 찾아야 할까? 우리는 우리 철이 있다. 우리가 봄·여름·가을·겨울이라 이르는 수수한 말결에 깊넓게 우리 삶이야기가 흐른다. 또한 철눈에 따라 오랜 살림얘기가 있다.


‘남자들은 얼마나 가사 노동을 나누어 맡고 있을까?(138쪽)’를 처음부터 다시 짚을 노릇이다. 요즈음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갓사내 모두 집안일을 할 줄 모른다. 이제 우리는 ‘집일’을 아예 안 하고서 셈겨룸(시험공부)에만 사로잡힌 온나라 어린이하고 푸름이를 다시 바라보아야 한다. 스무 살까지 집일을 해본 적조차 없는 아이들이 스무 살에 이르면 저절로 ‘집일을 어질게 나누거나 맡는 어른’이 될까? 어림도 없는 일이다.


‘양성 쓰기 문화 운동(150쪽)’을 말하지만, 앞으로 이름이 끝없이 길게 늘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은 어떡할 셈인가? 더구나 ‘엄마씨’는 ‘엄마를 낳은 아빠씨’이지 않은가? 고작 서른 해나 쉰 해 앞도 못 내다볼 뿐 아니라, 엄마아빠를 나란히 헤아리는 이름이 아니기까지 하다. 엄마씨이든 아빠씨이든 하나만 쓰면 된다. 아예 새롭게 ‘내 씨’를 지어도 된다. 엄마씨랑 아빠씨를 다 안 써도 된다.


‘가부장제에서는 남자도 고달파(161쪽)’ 같은 자리에서 정작 사내가 어떻게 무엇이 얼마나 고달픈지 짚지 못 하거나 않는다. 왜 숱한 아버지는 집에 와서 말을 못 섞었을까?


‘여성을 혐오하는 말들(176쪽)’은 다루되, ‘사내를 미워하는 말’은 아예 안 건드린다. 미움말은 어느 한켠에서만 쏘아대거나 내뿜지 않는다. 둘이 싸우기에 둘 다 똑같이 내뱉거나 윽박지르는 미움말이다.


181쪽을 보아도 마찬가지. “애꿎은 순이와 싸울 까닭이 없는 돌이”이듯, “애꿎은 돌이와 싸울 까닭이 없는 순이”이다. 싸워야 한다면 ‘나랏놈’과 ‘나라’와 ‘벼슬아치’와 ‘감투꾼’하고 싸울 노릇이다. 2025년 ‘장관 후보자’를 보라. 이진숙·강선우는 겨우 끌어내린 듯하되, 이들을 ‘순이’라서 끌어내리지 않았다. 골때리는 짓을 한참 해온 막짓꾼이기 때문에 끌어내렸다. 그런데 강선우 같은 사람은 ‘박원순 성추행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 일컬으면서 막말을 일삼기도 했다.


우리가 지난 발자국을 제대로 짚거나 톺는다면, 모든 ‘웃사내질’은 ‘나랏일·벼슬·글을 거머쥔 사내’가 했고, ‘웃사내’는 ‘시골사람’을 똑같이 억누르고 짓밟으면서 갈라치기를 일삼은 줄 알 테지. 지난날 임금붙이는 중국 한문을 ‘수글’이라 여겼다. 그들 임금붙이는 오늘날 우리가 쓰는 우리글(한글·훈민정음)을 놓고는 ‘암글’이라 여겼다. 이 뿌리는 아직 고스란하다. 중국 한문과 ‘일제강점기 일본말’과 ‘해방 뒤 영어’가 온통 수글이다. 《나의 첫 젠더 수업》은 겉보기로는 한글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온통 수글밭이다. ‘나의 + 젠더 + 수업’이라는 말씨조차 죄다 수글이다. 앞으로 모든 아이들이 어깨동무하고 서로돕기로 새롭게 피어나는 사랑을 익히는 길에 이바지를 하려면, 부디 제대로 배워서 풀어낼 수 있기를 빈다. 함께 일하면 되고, 쉽게 말하면 된다. 서울에 갇히지 않으면서 시골하고 동무할 노릇이다. 부디 들숲메바다를 품고 바라보기를 빈다. 들숲메바다와 살림살이가 없이 입(지식·이론)으로만 읊는 글은 언제나 부질없고 덧없더라.


ㅍㄹㄴ


설득해야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일 수도 있어요. 슬픈데도 억지로 눈물을 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내가 가진 고정관념을 부수려고 노력해야 하지요. ‘눈물을 참을 필요는 없어.’ 하고요. 애꿎은 여자들과 싸울 문제가 아니랍니다. (181쪽)


+


- 나의 첫 젠더 수업 → 나는 첫 둘 . 둘을 처음 배우다 . 나와 너를 처음 보다 . 나너를 처음 보기 . 몸을 처음 배우기 . 갓사내 처음 배우기 . 몸빛 처음 배우기


우리는 언제쯤 우리말로 우리 몸을 짚고 살피고 말할 때를 맞이할까? ‘성(性)’도 ‘젠더(gender)’도 그저 ‘힘말(권력용어)’일 뿐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몸’을 서로 다른 줄 받아들이고, 어떻게 다르면서 한마음으로 어울리는 사랑을 찾아나서면서 함께 즐겁게 빛날는지 생각하고 이야기할 노릇이지 않은가?


다른 몸이 ‘다른’ 줄 알아보고 받아들이는 길은 따돌림(차별)이 아니다. 다른 몸이니 다른 줄 살펴보고 받아들이는 눈길이란 어깨동무요 ‘한우리(하늘빛으로 하나인 우리)’이다.


+


《나의 첫 젠더 수업》(김고연주, 창비, 2017)


다른 사람과의 동행을 통해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배척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를 말하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 다른 사람과 어울리며 나를 찾지 않고, 등돌리며 내가 누구인지 말하려는 사람이 늡니다

→ 이웃과 함께 나를 찾기보다, 고개돌리며 내가 누구인지 말하려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5쪽


누군가가 혐오를 담은 말과 함께

→ 누가 미움말로

→ 누가 막말로

→ 누가 말주먹으로

5쪽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책을 꾸준히 쓰기란 정말 어렵더군요

→ 내도록 일하면서 책을 꾸준히 쓰기란 참말 어렵더군요

→ 일을 도맡으면서 책을 꾸준히 쓰기란 아주 어렵더군요

→ 일을 떠안으면서 책을 꾸준히 쓰기란 몹시 어렵더군요

6쪽


지난한 시간 동안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 고되어도 참고 기다려

→ 버거워도 견디면서

7쪽


여러분이 그런 저의 마음을 느끼면 좋겠어요

→ 여러분도 이런 마음을 함께 느껴 봐요

→ 여러분도 이 마음을 같이 느껴요

7쪽


그 이후에야 사람들은 색색깔의 옷을 취향대로 골라 입을

→ 사람들은 그 뒤에야 여러 빛깔로 옷을 골라 입을

→ 사람들은 그 뒤부터 온갖 빛깔 옷을 골라 입을

18쪽


그런데 남녀의 성차에 대해 실제로 연구를 해 본 학자들은 그런 고정관념에 대한 근거를 별로 찾을 수 없었다고 해요

→ 그런데 갈래빛을 헤아린 사람들은 그런 틀이 낡을 뿐이라고 말해요

→ 그런데 두빛을 찬찬히 따진 사람들은 그런 굴레가 알맞지 않다고 해요

26쪽


자신에게 주어진 젠더, 즉 성 역할을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느낄

→ 내 몸, 내 길을 가만히 가볍게 느낄

→ 우리 몸빛을 맑고 넉넉히 느낄

32쪽


우리는 서구적인 외모를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 우리는 하늬나라 얼굴을 아름답다고 여겨요

48쪽


쉽게 상처받지 않는 튼튼한 심장을 만들어야 해요

→ 쉽게 안 다칠 튼튼한 마음이어야 해요

→ 쉽게 안 멍들 튼튼한 가슴이어야 해요

60쪽


이 세상에서 백설 공주가 제일 예쁩니다

→ 온누리에서 하얀눈이가 가장 예쁩니다

60쪽


그럼 낭만적 사랑은 어떻게 완성될까요

→ 그럼 달콤한 짝꿍과 어떻게 살까요

→ 그럼 따스한 님과 어떻게 지낼까요

69쪽


이렇게 조혼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결혼 연령이 늦추어지기 시작했습니다

→ 이렇게 미리꽃을 타박하면서, 짝을 맺는 나이를 늦추어 갔습니다

→ 이렇게 이른맺이를 나무라면서, 짝맺는 나이를 늦추어 갔습니다

72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