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5.4.


《젊은 날의 초상 1987-1989 소대장님은 사진가》

 장종운 사진, 눈빛, 2023.4.25.



바야흐로 어린이날이 낀 쉼날을 잇는다. 오늘은 두바퀴를 달려 논두렁을 가른다. 볕을 쬐고 봄바람을 쐰다. 들이며 마을에서는 새소리가 확 줄었되, 우리집만큼은 아직 새소리가 그득하고, 개구리소리를 누린다. 해마다 시골에 죽임더미(비닐·농약·화학비료)는 늘기만 한다. 죽임더미를 걷어치우려는 길을 세우지 않는다면, 서울에서 굳이 시골로 옮길 이웃도 적을 테지만, 정작 시골 벼슬꾼은 이 대목을 생각조차 않는다. 죽음일터(비닐공장·농약회사·비료공장)와 군청과 도청이 한통속이지 싶다. 《젊은 날의 초상 1987-1989 소대장님은 사진가》를 보며 아쉽고 아쉬웠다. 왜 ‘소대장님’이어야 할까? 왜 ‘젊은 날의 초상’이어야 할까? 언제나 느끼는데, 사진가·사진평론가 가운데 땅개(총알받이·육군보병 소총수)로 뒹군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 글쟁이나 벼슬아치 가운데 땅개로 밑바닥에서 구르면서 노상 얻어맞고 시달리며 추레질로 괴롭던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 남긴(기록) 대목은 훌륭하되, 바라본(시각) 눈길은 너무 멀다. ‘소대장님’이 아닌 ‘하사관’이었더라도 아주 다르게 바라보면서 찍었을 테지. ‘땅개’라는 자리에서 보았다면 “얼차려로 시달리는 앳된 젊은이들”이 아니라, “똑같은 젊은 또래인데, 막말과 발길질을 일삼으면서 노려보는 ‘조교’ 주둥이와 눈매”를 찍었을 테지.


돈도 이름도 힘도 없기에 땅개로 뒹굴면서 얻어맞으면서 젊은날을 ‘버려’야 했던 사람들 자리에서 바라보려는 마음을 잊는다면, ‘손에 쥔 것이 없어서 젊은날을 버림받아야 하던 이웃’을 마주하려는 마음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이렇게 ‘위에서 내려다보는 작은권력자’ 손끝에서 멈추고 만다. 1980해무렵에도 개죽음(군대의문사)이 흔했다. 개죽음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한테 《소대장님은 사진가》라는 이름은 너무나 높다란 담벼락이다. ‘우리(땅개·육군보병 노예생활)’를 ‘써먹지(소비)’ 않기를 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