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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시절 - 가장 안전한 나만의 방에서
임후남 지음 / 생각을담는집 / 2024년 7월
평점 :
숲노래 책읽기 . 책숲마실
책집지기를 읽다
26 경기 용인 〈생각을 담는 집〉과 《책방 시절》
책집이란 잇는 쉼터입니다. 책집지기가 쓰거나 엮지 않았어도, 속에 담은 이야기가 빛난다고 여기는 책을 마을이웃하고 두루 나누려고 잇는 쉼터입니다.
책집이란 속을 살피는 이음터입니다. 겉으로 번드레하게 꾸미는 책이 아닌, 속으로 흐르는 빛나는 씨앗을 살펴서 잇는 자리입니다.
책집이란 들숲메를 잊거나 잃은 자리에 푸른바람을 한 줄기 일으키는 나들터입니다. 모든 종이책은 들숲메에서 왔습니다. 들이 없거나 숲이 없거나 메가 없다면 종이를 못 얻고 책을 못 묶습니다. 어느 책이건 푸른별에 들숲메가 우거지기 때문에 태어나게 마련입니다. 글 한 줄마다 푸르게 일렁이는 이야기가 깃드는 줄 알아보는 책집지기가 마을사람한테 조그맣게 푸른바람을 잇고 펴는 책집입니다.
《책방 시절》은 경기 용인에 있는 〈생각을 담는 집〉에서 내놓은 조촐한 꾸러미입니다. 책집이면서 펴냄터인 ‘생각을 담는 집’이고, 시골에서 일구며 마주하는 하루를 자그맣게 담아냅니다. 책을 읽는 손과 책을 내려놓고서 일하는 손이 어울리는 길을 문득문득 옮겨적어요.
‘생각’이란 샘물처럼 새롭게 일으켜서 이곳에 생겨나는 씨앗을 가리키는 우리말입니다. ‘집’이란 너나없이 누구나 아우르면서 포근히 깃드는 곳을 나타내는 우리말입니다. 저마다 보금자리에서 생각을 길어올리기에 마을이 빛납니다. 누구나 어디에서나 생각을 잇기에 만나고 헤어지면서 삶을 헤아리는 마음을 느낍니다.
서울이라면 북적대는 사람들이 바쁜 일손을 쉬는 책집이 있을 만합니다. 시골이라면 철마다 어떻게 해바람비가 다르게 흐르는지 읽고 느껴서 나누고 누리는 책집이 있을 만합니다. 그리고, 종이책에 담은 삶이 아니더라도, 눈으로 담는 삶과 손으로 짓는 삶과 다리로 누비는 삶과 온몸으로 맞이하는 삶을 이야기로 들려주고 들을 만합니다.
마을에 책집이 있기에 마을사람으로서 스스로 가꾸는 하루를 차분히 돌아보는 실마리를 나눕니다. 마을에 나무와 숲정이가 있기에 아이들이 숨을 돌리고 어른들은 일손을 쉴 수 있습니다. 마을에 이야기가 있기에 아이어른이 함께 자라면서 배우는 나날을 일굽니다.
《책방 시절》(임후남, 생각을담는집, 2024.7.5.)
ㅍㄹㄴ
무는 아주 작은 씨앗 하나가 큼직하게 자라 허연 몸통을 드러내지요. 그 모습을 보다 보면 헤벌쭉 입이 벌어집니다. (11쪽)
그런데 궁금한 것은 왜 스스로도 즐겁지 않았던 그것을 또 자식에게 시키는가 하는 일입니다. 그 자식 역시 즐겁지 않은 일을, (33쪽)
저는 책방에 있을 때가 가장 좋습니다. 책방은 모두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저만의 공간이기도 하니까요. (41쪽)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렇게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낯선 세상에 혼자 태어났지만 가족을 만나고 사는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나 그들로부터 음으로 양으로 영행을 받아 삶을 만들어나가는 것처럼요. (106쪽)
아직 서울에서 일하는 친구가 그러더군요. 심심해서 어떻게 사느냐고. 서울이 그립지 않으냐고. 저는 그냥 웃었습니다. (145쪽)
돌아가신 후에야, 제가 나이들고 나서야 엄마의 삶이, 아버지의 이야기가 궁금해졌습니다. 내 부모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어떤 삶을 살았을까.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149쪽)
+
시골의 밤은 캄캄합니다
→ 시골은 밤이 캄캄합니다
→ 시골밤은 캄캄합니다
4쪽
밝은 햇살이
→ 밝은 해가
5쪽
사실 제가 먹는 것보다 다른 사람 주는 게 훨씬 더 많거든요
→ 막상 제가 먹기보다 다른 사람한테 훨씬 많이 주거든요
→ 정작 저보다 다른 사람한테 훨씬 많이 주거든요
12쪽
몸을 움직이며 일하는 것을 좋아합니다만
→ 몸을 움직이며 일하기를 즐깁니다만
→ 몸을 움직이며 일하면 즐겁습니다만
12쪽
손톱 끝이 새까매집니다
→ 손톱 끝이 새까맙니다
17쪽
초겨울 햇살이 참 좋습니다
→ 첫겨울 해가 참 따뜻합니다
35쪽
긴 설 연휴 중입니다
→ 설에 길게 쉽니다
→ 설말미가 깁니다
41쪽
누군가가 농사짓는 밭은 조심스러워
→ 누가 짓는 밭은 거리껴서
49쪽
타인에 대해 말을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 남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 남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59쪽
“늙은 오이 먹어요?” … 큼지막한 노각 네 개를 받아들고
→ “늙은오이 먹어요?” … 큼지막한 늙오이 넷을 받아들고
74쪽
이렇게 쓰는 것이 좋다, 라는 식의 강의가 아닌 첨삭을 하다 보니
→ 이렇게 쓰면 낫다고 들려주기보다 손질을 하다 보니
76쪽
단감일까 대봉일까 아님 토종감일까
→ 단감일까 불퉁감일까 아님 텃감일까
→ 단감일까 장두감일까 아님 텃감일까
84쪽
이제 평지가 된 길을 따라
→ 이제 반반한 길을 따라
→ 이제 고른 길을 따라
90쪽
심폐소생술을 한참 하자 검붉었던 입술이 회복됐고
→ 숨살리기를 한참 하자 검붉던 입술이 살아나고
→ 숨을 한참 불어넣자 검붉던 입술이 낫고
133쪽
무를 뽑을 때의 쾌감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아요
→ 무를 뽑으며 이루 말할 수 없이 즐거워요
→ 무를 뽑으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신나요
137쪽
그 김치를 다 먹을 리 만무합니다
→ 그 김치를 다 먹을 수 없습니다
→ 그 김치를 다 못 먹습니다
139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